[Review] 화가는 왜 그토록 바다를 사랑했을까? - 화가가 사랑한 바다 [도서]

글 입력 2023.07.07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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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시를 쓰는 수업을 들을 때, 나에게 바다가 무슨 존재인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쓰는 시에서 바다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무의식 속에서 바다는 이런 존재였다.

 

자꾸만 부서지는 어릴 땐 흐르는 대로 사는 바다가 부러웠고, 때론 깊은 바다에 잠기기도 했으며, 밀려오는 파도에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거대하고 푸른 바다를 꾸준히 그리워하고 염원했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 바다란 그런 존재지 않을까? 마치 그리운 고향처럼. 여름이고 겨울이고 우리는 바다를 찾는다. 우리의 작은 영혼도 품어주길 고대하면서.


그 바다를 보는 화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는 그 마음을 화가가 그린 바다를 통해 헤아릴 수 있다.

 

 

 

정우철 '도슨트'


 

이 책을 집필한 ‘정우철’ 작가의 직업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의 직업은 바로 그림에 이야기를 입히는 직업 ‘도슨트’다.  그는 단순히 작품을 분석하는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과 예술을 한 편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시 해설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화가들이 어떤 시대에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정도는 궁금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화가의 마음이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나 그리워하는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그렸을 때의 화가들의 심정. 정우철 도슨트가 전해줄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들에 두근거리며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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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운 책이었다.

 

마치 전시회를 그대로 책에 옮겨둔 것 같은 고화질의 작품들.

 

어느 곳을 펼치든 인테리어 소품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책이었다. 다른 책들보다 조금 큰 크기였지만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는 정도였다.

 

호아킨 소로야의 발렌시아의 해변 이야기 부터 에드워드 호퍼, 라울 뒤피 등 18인의 거장들의 이야기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도슨트의 매력이 작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처럼 너무 많지 않은 글이 가볍게 읽히며 작품을 오래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중간중간 삽입된 바다에 관련된 짤막한 글은 작품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다음은 유독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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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 무한한 자연 앞에 선 유한한 인간

 

늘 죽음과 함께였던 프리드리히의 삶. 어머니와 두 누이의 죽음, 그의 남동생은 그를 구하려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이 고통을 종교적 신념으로 승화하고자 했고 자연의 영적, 종교적 의미를 작품 속에서 드러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주로 뒷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인물이 바다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작품을 바라보기에 광활한 바다와 고요한 세상을 마주한다. 책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프리디르히의 바다를 마주 서보는 걸 제안한다.

 

 

“나는 폭풍우가 두렵지 않다. 나의 배로 항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_루이자 메이 올컷, <작은 아씨들>

 

 

화가에 대한 설명 없이 작품만 존재하는 부분도 있었다.


윈즐로 호머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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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센테 로메로 레돈도 <무제> 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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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도 보일 것만 같은 높은 퀄리티의 인쇄가 삽입된 그림을 오래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저 슥 지나가는 참고용의 그림이 아니었다. 정말 작은 전시 그 자체였기에, 어쩌면 나는 실제로 보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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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 어린 시절의 추억을 품은 해변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이 유명해지는 당시 여성 화가는 활동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이 책에서는 동시대의 화가를 다룬 다른 책과 달리 그 당시의 여성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는 부분이 좋았다.

 

여러 비난 때문에 본인을 드러낼 수 없었던 여성 화가. 메리 카사트는 꿋꿋이 자신만의 그림을 이어갔고 덕분에 그녀만의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을 현재 우리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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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아이바좁스키 - 영원한 미완성의 바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거장 ‘이반 아이바좁스키’. 왕실 해군 소속 화가였던 그는 60여 년의 기간 동안 약 6,000점의 작품을 남겼다. 작가는 그의 바다가 매력적인 이유는 함께 그려진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고.

 

아이바좁스키는 자신의 작품을 ‘미완성의 바다’라고 했다고 한다. 매 작품이 미완성이었기에 다음 작품을 이어나갈 힘이 생겼던 것이다. 끝내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고야 말리라는 거장의 고집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우철 도슨트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내일의 힘이 되어줄 미완성의 바다는 무엇인지.


 
“나의 삶은 해변을 걷는 것과 같아서, 나는 가능한 바다의 가장자리에 가까이 다가간다.”

 

_헨리 데이비드 소로

 

 

18인의 화가의 101가지 바다에 관한 작품들.

 

정우철 도슨트는 프랑스 화가들이 유독 작품으로 많이 남긴 ‘브르타뉴 해변’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도쿄에서 열린 ‘브르타뉴의 화가들’이라는 전시에서 그 당시 연인과 전시를 즐겼던 기억과 함께.

 

그는 이 책을 쓰는 절반을 그분과 함께했고 나머지 절반을 이별하며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브루타뉴 해변은 사랑의 바다이자 이별의 바다로 남았다.


책의 글머리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건넸던 문구가 떠오른다. “101가지 바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102번째 바다가 그려지길” 바란다고.


아름다운 그림과 따스한 글이 함께한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정우철 도슨트의 일화는 화가의 일생과 작품에 더 이입하게 해주며 나아가 우리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였는지를 떠올려보게 한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바다에 대한 향수.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그 향수를 느낀다. 화가가 바다를 사랑한 방식을 통해 우리가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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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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