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7.07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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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돈보다 더 귀한 게 있는 걸 알게 될 거야.”


이문세 노래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의 가사이다. 오래된 노래이기는 하지만 익살스러운 리듬과 솔직한 가사가 담긴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렵게만 생각했던 일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어서 소개할 작가의 책 또한 나에게 비슷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보통 잘 정돈된 글에 익숙해져 있고, 그러한 글들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잘 정돈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글로 나타내는 작가가 있다. 바로 2009년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솔뫼 작가다.


4권의 소설집과 6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박솔뫼 작가는 특유 의식의 흐름대로,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글을 써 내려간다. 때로는 아예 주제와 연관이 없는 대사가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박솔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산발적인 문체가 거슬리기는커녕 정돈해야만 할 것 같던 것들을 그대로 두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솔뫼 작가의 많은 소설 중에서도 특히 인터내셔널의 밤은 우리조차도 잘 몰랐던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해준다. 그래서일까 여러 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날의 내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곳에 밑줄을 치게 되었다.


인터내셔널의 밤은 여자에서 남자로의 트랜스젠더를 희망하는 한솔과 사이비 교단에서 도망쳐 나온 나미가 부산행 기차에서 만나며 시작된다. 서로에 대하여 잘 모르는 주인공들은 낯선 서로에게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이비 교단, 그리고 성별을 바꾸는 것에 대한 열망과 같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의식의 흐름으로 쓰여있다.

 

결코 우리 사회에서 가볍게 이야기될 수 없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서술되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과 질문 따위는 드러나 있지 않다. ‘그냥 그러면 되지 않을까?’라는 식이다. 부조리했던 사이비 교단에서 나온 나미는 교단에 있던 아이들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기차에서 처음 만난 한솔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뒤 나누는 대화는 위로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다.

 

 

“그 아이들도 언젠가 어른이 되어 만날 수 있을거야.”


“아니. 나는 지금 그 아이들을 못 보잖아. 그러면 그때 만났던 아이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게 아닐까? 나를 기억 못 하는게 아닐까?”


“그러면 다시 친해지면 되지.”

 

박솔뫼, 『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2018) 132.

 

 

기차에서 처음 만난 그들이 주고받는 건조한 위로들은 오히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어떠한 미사여구보다 부담 없이 툭 내뱉어진 말이 온종일 머리에 맴돌 때가 있다. 우리는 때로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더 좋은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점점 빨라지는 것에 맞춰 사람들은 계속 옮겨질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것이라면 중요한 것을 잃은 사람인 채로 길 위를 지나가고 기차가 멈춘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잃은 사람으로 길 위에 자신의 중요한 것들을 흘려버린 존재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잘 주우면 되지 않을까?”

 

박솔뫼, 『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2018) 132.

 


책을 읽기 전까지는 중요한 것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놓치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쟁취해야 한다고까지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하여 너무 힘을 주어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타인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일까지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인터내셔널의 밤>은 우리에게 일상을 조금 가볍게 바라보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한솔과 나미가 잠시 일상을 벗어나 부산행 기차를 타고 새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그들이 기차 안에서 주고 받는 위로처럼 우리의 일상이 오롯이 빨라지는 것에 대한 발맞춤으로는 가득 차지 않기를 바란다.

 

 

[오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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