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유사 비평가로 쓰기 ― 아마추어리즘 비평

글 입력 2024.02.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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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이들에게 ‘글 쓰는 방법과 노하우’는 언제나 잘 팔리는 히트 상품이자 다른 주제에 비하여 큰 품 들이지 않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는 극상의 가성비 상품이기도 하다. 인터넷 서점에 ‘글쓰기’를 검색해서 무한한 스크롤을 내려도, 거장의 글쓰기 책을 읽어도, 읽고 또 읽어도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 ‘있는 것’같은 어림뿐이다. 그러니 알 수 있는 건 나만 모른다는 무지의 메타적 인지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글쓰기 ‘비법’을 배우고 있다고 여기는 데에서 기인한 숨 가쁜 불안이다. 진시황의 불로장생의 꿈이 쉰 살의 단명으로 끝난 것처럼, 글 쓰는 비법을 향한 꿈이 내년의 피동적 절필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이 겨울밤 찬바람에 기생한 채 의자에 앉은 나의 발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글 기고 노하우’를 이곳에서 시작해 본다. 보일러가 돌지 않는 찬 강화마루에 간신히 닿아 있는 발 앞꿈치의 층위로 내려가서. 물리적으로 시공간을 점유한 신체의 바닥과 실재한 세계의 바닥이 맞닿는 저 밑의 순간으로. 어떻게 되었던 실재로서 신체가 ‘있기’는 하고, ‘차가움’이라는 감각을 주는 ‘세계’가 ‘있기’는 한 곳의 밑바닥이다.

 

1. 등단 경험 없음.

2. 비평 관련 학위 없음.

3.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학위 없음.

4. 수도권에 거주하지 않음.

5.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문화자본 없음. 


그러므로 비평 장(場)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 전무함. 이곳은 아마추어의 세계다. 아마추어가 쓰는 것은 아마추어 비평이고, 아마추어 비평을 쓰는 자는 아마추어 비평가다. 결국 이 자격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유사 비평가’라는 칭호다. 이러한 자격은 수행 전부터 미리 하사받을 수 있다. 괄호 치기(유사)는 불허!

 

‘유사’의 영역에서 가능한 글쓰기란 “도둑질, 경박함, 가벼움, 정확하지 않음”¹이다. 그들의 글쓰기는 기존 제도권 내부에서 논의되는 언어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제도권에 입장 불가한 자격으로 언제나 유사 비평가의 수행 행위는 훔침이다. 유사 비평가의 손에서 기존 남성중심적-제도중심적 언어는 해체되면서 경박함과 가벼움을 얻는다. 유사 비평가는 해체된 언어를 어떻게든 뭉친 글로 만들려 애쓰는 까닭에 그들의 글은 조악해지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다. 남의 언어를 빌려 사용해야 하면 할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학술적이고 현학적인 용어는 유사 비평가의 글 안에서 비웃음거리 혹은 제도권 편입을 위한 볼썽사나운 구애가 되기도 한다. 구애가 볼썽사나워지는 까닭은 그 자격에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등단을 한다. 그러니까 글 못 쓰는 사람들은 사실 등단을 못 하는 사람들이다.”²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기에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으면 등단 제도를 비판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적 문제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제도 진입과 배제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악령을 만나 손쉽게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소설의 분야에는 신춘문예의 대안으로 독립출판 혹은 크라우드 펀딩, 온라인의 1차 창작 플랫폼(조아라, 문피아 등)이 존재한다. 비평 분야에서 제시되는 탈제도권 영역은 트위터(현 X), 블로그, 왓챠 100자 평과 같은 SNS다.³ 신춘문예의 대안보다 훨씬 접근성이 낮아 모두가 사용하며 텍스트로 소통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 공간은 언젠가 벗어나야 할 것, 전문가 이전 비전문가의 준비 공간으로 여겨진다.

 

아마추어리즘은 언제나 프로페셔널리즘의 이전의 영역이며 남성-여성, 전문가-비전문가, 고급문화-대중문화의 이분법과 동일한 문법 속에서 열등과 결핍을 본질로 가진다. 그러하다면 ‘유사 서평가’ 자격을 상징 투쟁의 공간에서 ‘훔쳐’ 오면 어떨까?


아마추어 비평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은 비평의 행위성에 존재한다. 윤아랑 평론가의 비평집 제목인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은 무언가를 쓰고자 하는 열망을 내장감각으로 체화한 경험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세상도 알고 진리와 이치와 관습도 모두 그러하다고 하는데, 당장 잡아 뜯고 싶은 거스러미를 감각하는 경험이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순식간에 볼과 귀 끝에 열이 오르고, 등에 진땀이 맺히고 숨을 재촉하게 만드는 거스러미.

 

비평의 영역은 언제나 창작자의 의도에 무지한 것에서 시작한다. 내장감각으로 시작된 직관에서 출발한 이론의 각주와 인용은 자기 자신이다. 아무것도 모름을 전제하며 기존의 원칙과 해석에 무지의 베일을 씌운 채 열 손가락으로 구석구석을 더듬거려 자신이 획득한 촉감을 믿으며 나아간다.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되어 ‘왜냐하면’과 ‘그리고’로 체계화되는 이론은 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에 맞설 수 있는 자력이 있다.


‘유사 비평가’라는 칭호가 프로패셔널리즘의 반대항에 존재하는 아마추어리즘 영역에서 수행 이전에 주어지는 자격이라면, 지금의 유사 비평가는 더듬어 가는 비평작업의 행위성에서 쟁취한 수행 이후의 자격이 된다. 아마추어적 작업이 실제로 허접하고 질이 낮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잘 아는 세계의 완벽한 재현이란 결국 현실 자체일 뿐이다.

 

아마추어리즘 비평을 목표로 삼는 일은 이미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 현상을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절하하는 일을 잠시 멈춰보자는 온건한 제안에 가깝다. 그리고 비평 장에 입장할 권리가 애초에 없는 ‘유사 비평가’가 제도권에 편입하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해 글 쓰는 일을 멈추는 것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는 작은 의문이다.

 

어쩌면 장 밖의 존재로서 능동적으로 아마추어리즘 비평을 목표할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비평 권력 장에서 상징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주체로서 부족한 아마추어가 아니라, 전문가와 대중 사이 매개자로서 제도권 기반의 비평 권력 장의 순환 시도로 의미를 확장한다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마추어리즘 비평이 ‘문학, 예술, 문화’가 무너지고 ‘문학성 없는 문학, 예술성 없는 예술, 가치가 없는 문화’가 실재하는 현실을 톺아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아마추어가 된다. 그리고 그 아마추어리즘 영역에서 자신을 시발점으로 삼은 창발적인 사유가 등장한다. 앎 사이에 미세한 거슬림을 손끝으로 감각하고, 뒤틀림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자신의 무지를 전제로 읽는다. 그리고 유사의 영역에서 약탈하여 전유에 성공한 이론을 이용하여 사이보그적 이종어(異種語)로 쓴다. 이것이 바로 유사 비평가의 쓰기이며, 유사 비평가로서 독자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글쓰기 노하우다.

 

감각하고 추적하고 읽자. 그리고 쓰자. 결국 모든 건 쓰는 일뿐이다.

 

 


각주

1. 이동휘, 이여로,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 미디어버스, 2022. p.129

2. 강덕구, 이여로, 이연숙,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2.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3. 윤아랑,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민음사, 2022

4. 이여로, <아마추어리즘의 사회, 그리고 예술>,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1년 가을호)》, 문학과 지성사, 2021,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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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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