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걷잡을 수 없는 마음 속의 불꽃 - 육쌍둥이

연극 “육쌍둥이”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7.05 09: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3 육쌍둥이 포스터.jpg

 

 

TV나 스마트폰, 버스나 길거리의 광고판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에 의한 것일 때,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유감스러운 감정은 자연스럽게 ‘왜 저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것일까’와 같은 본질적인 이유로의 질문을 끌어낸다. 연극 “육쌍둥이”도 이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육쌍둥이”는 동시대의 현상과 흐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자 한 단체 “즉각반응”의 ‘현대시리즈’ 중 하나다. 2009년 있었던 용산 참사 속 화재를 모티프로 하여 한 고물상에게로 그 불이 옮긴 상황을 가정하였다.

 

이후 그 고물상의 죽음으로 그의 밑에서 자랐으나 가출했던 여섯 쌍둥이가 모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육쌍둥이 공연사진_10.JPG

 

 

쌍둥이는 함화자, 이기라, 최고야, 신기해, 박수처, 조진내와 같이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다. 어떤 개인으로 특정화되는 이름이 아닌, 동사형 혹은 감탄사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나 행동 양식을 나타내는 듯하다.

 

먼저 여섯 인물과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이 등장하고 나면, 연극은 마치 평범한 사람들이 수다를 떨 듯 정신없이 이루어진다. 명확한 서사의 흐름을 파악하거나 다음에 어떤 장면이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다.

 

이는 “육쌍둥이”가 고전 비극을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구축한 데에서 온다. 영웅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전통적인 비극과 달리, “육쌍둥이”는 우리의 삶에 더욱 밀접하게 다가가도록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를 바탕으로 구성하였다.

 

 

육쌍둥이 공연사진_3.JPG

 

 

여섯 쌍둥이의 얼굴에는 제각기 다른 붉은 반점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섯 쌍둥이의 얼굴의 경우이며, 조진내는 붉은 머리를 갖고 있다.

 

극에서 이 붉은 반점은 주요 소재인 불과 연결되는데, 고물상 아버지의 토지 상속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부터 반점은 더욱 켜졌다. 뜨겁고 활활 타오른다는 점에서 욕망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불은 육쌍둥이를 연소시키며 재산 분할에 대한 분쟁을 일으켰다.

 

불은 계속해서 켜졌으며, 언어적으로 문제가 있던 조진내가 입을 떼어냈을 때 가장 강렬했던 말은 불을 꺼달라는 외침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은 결국 쌍둥이를 죽음으로 몰아갔으며, 양어머니마저 불을 지른 뒤 그 속에서 삶을 끝내게 된다.

 

비록 작품 육쌍둥이가 영웅적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전통적인 서사에 반하여 평범한 개인들의 사소한 이야깃거리가 뭉친 구조를 추구하였다고 하였지만,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정보의 편차와 살인이라는 결정적 행동으로 조진내의 인물의 위상은 다른 인물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특히 조진내는 다른 쌍둥이들과 달리 유일하게 불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계속 불안해하며 사탕을 빨았다. 마치 계속 커지는 불꽃을 달콤한 사탕으로 잊으려고 하듯 말이다.

 

 

육쌍둥이 공연사진_7.JPG

 


극에서 불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지속해서 나타나며 언급된다. ‘불을 누가 지폈을까’라는 질문이 등장하기도 하고, 조진내의 불을 꺼달라는 절규와 같은 외침은 너무도 간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욕망으로서 불은 꺼질 수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져온 불은 훔친 불이듯, 불은 욕망 자체를 상징하면서도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 욕망의 대상이 존재하는 한, 곧 삶을 이어나가는 한 인간에게 불은 본연의 것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 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다. 불은 우리에게 따뜻함과 빛을 주는 동시에 무엇이든 태울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처럼 생명을 유지하기도, 앗아가기도 하는 불의 속성은 극에서 불은 ‘착한 불’과 ‘나쁜 불’로 나뉘어 언급된다.

 

결국,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어 행동으로 이어지는가에 따라 다른 결말을 초래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욕망을 인정하되 그것을 삶의 원동력으로써 사용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도록 하는 것을 고민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아가 그 불꽃을 따스한 온기로 승화시켰을 때 비로소 불길의 확산이 아름다운 번짐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육쌍둥이 공연사진_6.JPG

 

 

[정충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