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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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최선을 다했던 시기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머리가 복잡하고 숨이 막혔다. 이유 없는 눈물까지 흘리고서야 책상에서 일어나자고 결심했고, 그렇게 산을 찾았다.
2021년 12월부터 모든 달을 빠짐없이 산을 올랐다. 그중 금정산은 사계절, 일출, 일몰, 우중산행까지 모든 걸 다 해본 산이다. 옹기종기 쌓인 돌계단을 오르며 흐르는 물줄기 소리를 벗 삼아, 호흡의 흐름을 따라 금정을 느꼈다.
책상에 앉아 목표치를 해내는 것만이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자연은 계절에 맞춰 성장하고 피워내고 벗어내고 다시 시작한다. 그저 묵묵히, 호흡하고 자라난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취해 살아갔지만 그들을 보니 결국 나를 위해 살아간 시간은 없었다는 걸 깨닫곤 미세한 충격에 머리가 울렸다.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를 위한 시간이란 거창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지만, 그렇기에 이 시간을 자주 보내야 한다. 자연이 만들어준 공백에 그저 내 호흡과 소리, 시선에 집중하면 된다. 들이마시고 내쉬며 내는 숨소리, 작은 자연부터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시야라면 충분하다.
침묵과 공백을 슬기롭게 이용하니 감사의 마음도 자연스레 싹트게 되었다.
살아갈 수 있는 오늘, 하루, 지금 이 모든 것이 감사하고, 어떠한 날씨에도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가는 스스로가 만들어낸다. 필자는 산행을 통해 배웠지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호흡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부터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도 숭고하고 귀중한 존재임을 알고 보듬어 주길 바란다.
[배수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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