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를 경청하는 태도

최인수 조각전, 물질의 서사 Narrative of Matter
글 입력 2023.06.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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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로 올라가는 계단은 세월을 오랫동안 품었는지 나뭇결을 지르밟는 소리가 퍼졌다. 청각을 활짝 열고 전시장 문을 밀었다.

 

작가 최인수의 <물질의 서사 Narrative of Matter>라는 전시 주제는 꽤나 신선했다. 물체 이전 단계인 물질에게서 서사를 찾는다는 건 깊고 복잡하게 파고들었거나, 혹은 불필요한 건 덜어내고 본질을 위해 절제했다는 것이다. 전시장이 넓진 않지만 충만한 존재감을 뽐내는 조각들 사이를 돌고 도니, 작가는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감으로써 고독하고 치열한 사유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최인수.jpg

 

 

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물질은 나름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다.

 

작가노트 中

 

 

각자의 사정이 있던 나무를 쌓아놓고 그들에게 경청했다는 작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가 자신을 관찰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장소가 되다’ 연작에 쓰인 느티나무를 자연스러운 갈라짐 따라 가르고 톱질하고 끌로 깎아냈다. 어떠한 인위적인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던 대지, 일월성신,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 우주적 운행이 응축되어 있는 죽은 나무는 물질의 서사 그 자체이다.

 

데이트 갤러리

 

 

잘린 나무의 탄생부터 일화 구석구석을 살피며 자연에 스며들게 된다.

 

필자는 산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수많은 나무를 바라보고, 만져보았다. 우거진 초록이 하늘을 향할 때 시선을 내려 나무의 거친 피부를 쓰다듬기도 한다. 생의 순간에 그들이 내뿜는 호흡과 섞이려 집중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기에 전시장에서 본 생 그 이상의 나무는 필자에게 또 다른 나무, 또 다른 이야기가 된 것이다.

 

 

[꾸미기][포맷변환]최인수2.jpg

 

 

우리는 도시 속 치열한 순간들에 휩싸여 주변의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걸어가곤 한다. 자연스러운 곡선과 스스로를 조각하듯 느티나무를 깎은 작품을 감상하며 날리는 생각을 잠시 가라앉혔으면 한다.

 

세상이 정한 규정보다 자연과 인간의 호흡과 감각이, 진실한 사유와 여백이, 자신을 다듬는 수행이 중요하기에 나무의 느리고 깊은 서사를 읽으며 나의 서사를 한 장씩 넘겼으면 좋겠다.

 


[배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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