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은 언제나 경계를 노래한다 [문화 전반]

뒤샹의 '샘' 그리고 김근의 '바깥에게'
글 입력 2024.01.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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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관례의 관계


 

예술의 정의에 대해 생각할 때면 '부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현실에 완전히 순응하는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은 각자의 나름대로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영민한 시각이 바로 예술의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기존 현실 및 관례를 벗어나려 하는 저항적인 작품들은 항상 예술계와 빈번하게 충돌해왔다. 과거 예술 업계는 대부분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에 보수적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예술계가 저항적인 예술을 견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 예술을 기존의 예술 관례 속에 포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잘 설명하는 사례가 뒤샹의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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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은 남자 소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출품함으로써 예술성과 비예술성을 나누는 부르주아의 이분법적 예술 관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놓인 작품을 통해 기존의 예술계를 무너뜨리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술계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물론 처음에는 뒤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었으나, 이내 이들은 현대미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뒤샹의 작품을 포함시켜서 기존 예술 관례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그 결과 뒤샹의 '샘'이 지닌 기존 예술에 대한 비판적 기능은 무력화되었고, '샘'은 예술계로부터 저항하는 작품이 아니라 예술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예술은 항상 경계에서 대립하고, 그 결과 외연을 넓혀간다. 이러한 예술의 발전 과정을 잘 설명하는 또다른 사례로 김근의 시 하나가 떠올랐다.

 

 

너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안이다 아니다

꽃도 피지 않고 죽은 나무나 무성한

무서운 경계로 간다 정거장도 없다

꽃다발처럼 다글다글 수십 개 얼굴을 달고 거기

개들이 어슬렁거린다 그 얼굴 하날 꺾어

내 얼굴 반대편에 붙인다 안이 아니다

내 몸에서 뒤통수가 사라진다 얼굴과 얼굴의

앞과 앞의 무서운 경계가 내 몸에 그어진다

너와 헤어지고 나는 무서워진다

 

너를 죽이면 나는 네가 될 수 있는가

모든 안은 다시 바깥이 될 수 있는가

 

- 김근, 「바깥에게」

 

 

이 시는 김근 시인의 시집 『구름극장에서 만나요』에 수록된 작품으로, 앞서 제시한 뒤샹의 사례와 동일하게 경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해당 시는 안과 밖의 경계를 통해 단지 이별 상황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세계에 관해서도 역설한다.

 

 

 

'안'과 '밖'이라는 메타포


 

이 시는 반복적으로 '안'과 '밖'이라는 공간적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화자는 이별이라는 현실적 고통에 직면해 무서움을 느끼며 ‘안’이라는 공간을 마주한다. 그런 화자가 선택한 것은 ‘안’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바깥’이라는 공간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때의 ‘바깥’은 ‘안’과 상반되는 공간으로, 뒤통수에 개의 머리를 붙이는 등 비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안’이라는 공간은 화자가 수용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바깥’이라는 공간은 화자가 현실로부터 도피해 도달하고자 하는 비현실적이고 탈속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는 ‘안’과 ‘밖’의 대조를 바탕으로 시상이 전개된다. ‘너’와 헤어져 ‘안’이라는 현실에 직면한 화자는 안과 바깥의 ‘무서운 경계’를 향해 간다. 이때 시인이 그려내는 경계의 모습은 ‘꽃도 피지 않고 죽은 나무나 무성’하다는 점에서 생명력을 잃었다. 이는 현실 세계의 질서와 비현실 세계의 질서가 지니는 불연속성을 보여준다. 경계에 놓은 사물들은 더 이상 ‘안’의 세계에 적용되었던 법칙들에 예속되지 않으며, ‘안’과는 다른 정체성을 지닌 독립적 공간으로 자리한다.

 

그 결과 '안'과 '밖'의 경계에 존재하는 생명들은 마치 새로운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잎사귀가 돋아날 준비를 하는 겨울처럼 삭막한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변화의 과도기에 존재하는 경계에 대하여 시인은 '무서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행갈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경계'에서의 대립


 

화자는 경계에 도달했으나, ‘개들이 어슬렁거’리기에 바깥을 향해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결국 화자는 안과 밖 그 어떤 영역에도 소속되지 못한 상태에 머무른다. 이는 다시 말해서 ‘너’와 이별한 현실로부터 벗어나지도, 그렇다고 현실에 적응하지도 못한 화자의 현재 상태를 보여준다. 생명력이 없는 주변 환경과 화자를 가로막는 개의 존재는 화자를 무력화시키는 시적 장치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에 맞서 바깥으로 가기 위해 개의 ‘얼굴 하날 꺾어’ 자신의 ‘얼굴 반대편에 붙인다’. 여기에서 시인이 설정한 ‘다글다글 수십 개 얼굴’이 달린 개는 독자로 하여금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케르베로스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지하세계의 개로, 하데스의 지하 공간과 지상 공간의 경계를 유지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이때 ‘지하’에 ‘비현실적인 탈속 세계’가 대응되며 ‘지상’에 ‘현실 세계’가 대응되기 때문에 시인은 케르베로스를 제시하여 ‘안’과 ‘밖’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시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화자가 바깥 세계를 지향할수록, 화자가 바깥으로 도피하려 노력한 흔적들이 화자의 몸에 낙인처럼 새겨진다. 시인은 이를 ‘무서운 경계’라고 표현하여 화자가 현실을 수용하지 못해 느낀 두려움과 불안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에 순응하고자 하는 ‘안’의 세계와,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바깥’의 세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 화자의 사고방식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이는 ‘너를 죽이면 나는 네가 될 수 있는가’라는 시행해서 잘 드러난다. 화자는 ‘너’와 조우할 방안으로 현실 세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규범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떠올리지 않고, ‘너를 죽이’는, 다시 말해서 비규범적이고 현실 질서에 어긋나는 방법을 떠올린다. 이는 화자가 더 이상 ‘안’의 세계에 적용되는 규칙에 연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현실 세계에 정해져 있는 규범의 지배를 받는 수동성으로부터 탈피하여, 규범이 부재하는 바깥의 세계에서 자유로이 행동하려는 욕망을 표출한다.

 

 

 

'현실'에의 순응


 

그러나 시는 ‘모든 안은 다시 바깥이 될 수 있는가’라는 구절을 통해 시적 상황에 회의적인 어투의 질문을 던지며 종결된다. 이와 유사한 분위기의 다른 시행으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속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연상해볼 수 있다. 해당 질문에 봄이 오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포된 것과 같이, 김근 시인이 던지는 질문 또한 ‘너를 죽이더라도 나는 네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안은 바깥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암시하는 어조를 띤다. 결국 이 시 속의 화자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며 비현실적 공간에 도달하려 시도하지만, 그 시도는 여러 제약에 의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항의 의의


 

그러나 화자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점이 화자의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의미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상화 시인이 봄이 오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했음에도 시를 써서 저항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독자에게 전달한 것처럼, 이 시 또한 기존의 세계와 기존의 질서를 탈피하려는 도전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깨달음을 준다는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은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작용한다. 예술이란 다른 말로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사물을 관습이라는 틀로부터 독립시킨 후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재인식해야 한다. 김근 시인이 자신을 투영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시 속의 화자는, 사회가 바라보기에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기존의 질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에 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화자가 행하는 ‘예술의 정의에 충실한 행동’이 독자로 하여금 세계를 반추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에디터 고은샘.jpg

 

 

[고은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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