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느린 걸음으로 나아갈 수많은 키키야,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조윤지 작가 겸 연출, 홍지원 PD

면도칼 대신 얼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리다
글 입력 2024.02.09 13: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키키_poster_ver1수정.jpg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뮤지컬 <실비아, 살다>를 제작했던 공연제작소 작작의 신작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이번에는 또 어떤 가슴 아픈 이야기와 감동적인 넘버로 관객들을 웃고 울릴지 기대되었다. 역시나 기대에 부응하듯 공연 내내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망의 커튼콜 때는 배우와 관객 가릴 것 없이 눈가가 촉촉했고, 서로 마주 보며 대화 없이도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듯 보였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원형의 토크 콘서트장 안, 주인공 ‘키키’가 황금 같은 시간에 이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며 시작된다. 이때 ‘키키’를 도와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 5명의 호스트가 등장한다. 그들은 분홍, 노랑, 연두 등 귀여운 색감의 옷을 차려입은, 개성 있는 스타일과 입체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이윽고 변증법적 치료의 단계에 따라 ‘키키’가 가진 과거 속 트라우마, 고통과 맞닥뜨린 현재,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펼쳐진다.

 

평소 약한 자극에도 불에 쏘이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자신을 탓했던 ‘키키’. 처음 진행한 “마음관찰”에서는 어떤 감정도 흘려보내지 못하던 그가, 마지막 “마음관찰 reprise”에서는 온갖 감정을 훌훌 털어 버리는 모습은 가위 감동적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했던 ‘키키’는 살기 위해 벼랑 끝에서 한 걸음씩 내디디고, 거기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의 도움에 힘입어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다채로운 색을 활용한 조명 연출이 돋보인다. 빨간 조명과 화염 방사기, 파란 조명과 차가운 얼음 등 ‘키키’의 감정 변화를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구세주들이 다 씨가 말랐나” 같은 부드러운 가스펠부터 “난 할 수 있어! vs 난 할 수 없어!” 같은 강렬한 록까지 폭넓은 장르의 넘버가 쏟아지다 보니 귀가 심심할 틈이 없었다.

 

지난 2월 2일, 공동 기획을 맡으신 조윤지 작가 겸 연출님과 홍지원 PD님을 만나 ‘경계성 인격장애’를 소재로 다룬 기획 과정부터 관객들의 따끈따끈한 후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질문에 대해 정성껏 답해주신 두 분을 보면서 촘촘하고 탄탄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깨달았던,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관객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뮤지컬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극 중 인물로 본인을 소개한다면, 누구와 닮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조) 안녕하세요. 극본 쓰고, 연출하고, 기획하는 조윤지입니다. 주인공 ‘키키’의 이야기가 제 이야기기도 해서 조키키라고 하고 싶네요. 지나가는 것을 슬퍼하고, 그래서 공원에서 술도 마시곤 하는 사람입니다.

 

홍)홍지원 PD입니다. 기획을 맡고 있고요. 항상 ‘테일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상 ‘키키’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테일러’는 신경 쓰지 않아도 건강하고 단단한 인물이거든요. ‘키키’처럼 불안정한 인물도 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기획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홍) 흔히 알려진 일을 다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기획이라는 게 모든 제작사에서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거든요. 보통 기획자를 프로듀서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제작자 대표로 칭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에는 제작사 대표 두 분이 계시기도 해서 ‘기획’이라는 단어로 들어갔어요.

 

기획자는 창작 이외의 모든 것들을 해요. 하지만 또 하나의 창작자로서 작품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이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기획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사전 대본열람, 수어 통역, 터치 투어, 릴렉스드 퍼포먼스 등)

 

홍) 접근성을 높인 데 엄청나게 큰 뜻이나 목적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CKL스테이지가 잘 안 알려졌지만, 되게 좋은 극장이거든요. 휠체어 출입도 자유롭고, 공간도 넓어서 새로운 형태의 극을 올릴 수 있어요. 예전부터 다양한 관객분들이 편하게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지원받아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초기에 작품 회의보다 접근성 보안 회의를 많이 했어요. 이게 생각보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들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예산 내에서 시간과 노력만 쓰면 되니까요. 사전 대본열람은 공간과 대본을 제공할 마음만 있으면 되고, 수어 통역이나 터치 투어는 원래 관심이 있어서 공부했던 거라 시도한 것 같아요.

 

릴렉스드 퍼포먼스는 아직 안 해봐서 잘 모르겠어요. 그냥 봤을 때는 크게 티가 안 날 수도 있거든요. 어떤 특정한 소리나 움직임을 낼 때 제지를 하지 않고, 조금 자극적일 수 있는 음향이나 조명 효과를 줄이는 정도라서 눈에 띄지 않으면 못 느끼실 수도 있어요. 다만 직원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하우스 팀과 협업해서 공연 관람 에티켓과 관련된 것들을 최소화하는 거죠.

 

아무래도 자율 입 퇴장이 가능하니까 평소에 공연을 많이 보셨던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요소가 생겨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연출님이 허락을 해주셨고, 공연에 방해가 되더라도 이건 꼭 하고 싶다고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릴렉스드 퍼포먼스를 하는 날은 사전에 배우나 스텝에게 공지해서 어떤 우발적인 상황이 와도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24키키) 공식 공연사진_수어통역사수정.jpg

자료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조) 세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지원사업을 받아서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들었고, 극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이 있고, 홍지원 PD님이 함께하자고 제안도 주셨죠. 처음에는 잘 모르고 올렸다가 괜히 욕먹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근데 안 하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하고 욕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죠.

 

항상 작가 입장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데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어려움에서 출발하고, 그걸 느끼는 다양한 사람들과 공연장을 통해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해요. 그게 공연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이러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5년 전에 1인극으로 올린 적이 있어요. 그 과정이 '저'를 미워하던 '저'와 화해하고 맞닥뜨리던 과정이었죠. 시간이 흐르고 나서 『키라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잘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전체적인 색감을 핑크과 그린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홍)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고 부정적이잖아요. 이러한 느낌을 가지지 않게 귀엽고 통통 튀고 부담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죠. 키치한 ‘핑크’처럼 가벼운 이야기로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명상적인 이미지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연이 담긴 ‘그린’을 더했죠. 이러한 컨셉을 포스터나 무대로 뻗어 나갔던 것 같아요.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다양한 호스트를 배치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런 방식의 진행을 원안에서 가져온 건지 아니면 새롭게 연출한 건지 궁금합니다.

 

조) 원안은 본인의 일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에요. 제가 5년 전에 했던 방식이 이제 사람들과 이야기했다가 어떤 상황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형식이었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구성했어요.

 

특이하고 이상한 인물들을 호스트로 배치한 이유도, 젠더 프리 캐스팅하면서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이도록 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에요. 사실 여자와 남자가 커플이 되면 이성애고, 여자와 여자나 남자와 남자가 커플이 되면 동성애잖아요. 그래서 호스트들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희한한 존재가 돼서 무작위로 '키키'를 도와준다면, 무엇이 되든 별로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어 독특한 ‘키키’보다 더 이상한 사람들을 만들어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이유로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하게 되었네요.

   

 

(2024키키) 공식 공연사진_무대사진2수정.jpg

자료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전작 <실비아, 살다>와 다른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만의 매력 포인트는?

 

홍) <실비아, 살다>는 아주 훌륭한 작품인 게 서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하게 갖춰져 있어요. 이걸 그 누구도 풀거나 헤칠 수 없죠. 물론 현대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긴 하지만 과거 190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반대로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훨씬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이제 관객들과 대화와 소통을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이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어떤 이야기잖아요. 그 대신 서사가 좀 더 헤쳐져 있지만, 덕분에 극에 다가가기는 쉽다고 생각해요.

 

조) 가장 큰 차이는 형식적인 면이라고 생각해요.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간증 콘서트잖아요.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런 뮤지컬을 보신 적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러닝타임이 2시간인데 1시간 30분처럼 느껴진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그만큼 재밌게 흘러가지 않았나 싶어요.

 

 

 

넘어져도 한 발 한 발 느린 걸음으로


 

작품에 등장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 중 가장 애정하시는 넘버가 있나요?

 

조) “우리는 터벅터벅 느린 걸음으로”랑 “잘못된 감정은 없어요” 중에 고민되네요. 먼저 “우리는 터벅터벅 느린 걸음으로”는 ‘키키’가 본인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면서 어린 시절과도 화해하고, 더 나아가서 이런 고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넘어져도 한발 한발 느린 걸음으로 나아간다는 넘버에요.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보니 조명, 음악, 안무 모든 걸 엄청 신경 썼죠. 배우들한테도 감정의 단계가 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디테일하게 디렉팅했어요. 예를 들어 눈물을 닦아주는 타이밍이 조금만 달라져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니까 신경 써달라고 했죠.

 

그리고 “잘못된 감정은 없어요”는 음악은 아름답고 신나는데, ‘키키’는 거기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거든요. 내 감정에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배우지 못하는 것뿐이구나. 나는 모든 걸 느껴도 되는구나 깨닫는 흐름이 감동적일 때가 있어요.

 

홍) 저도 “우리는 터벅터벅 느린 걸음으로”가 제일 좋아요.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 ‘터벅터벅’을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원래 공연 보면서 잘 안 우는 편인데도요. 저는 연출님이랑 얘기하면서 느낀 점이 비슷한 사건을 겪어도 이렇게까지 표현을 잘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이 작품은 솔직하게 모든 걸 보여준 다음에 해피엔딩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나아가 보자고 말하잖아요. 그게 이 넘버에서 딱 드러나니까 정말 좋은 작품인 게 느껴져서 같이 작업하고 싶었어요.

 

또 “유일한 탈출구”라고 ‘키키’가 ‘테일러’랑 싸우고 면도칼과 얼음 중에 선택하는 넘버가 있어요. 결국, 유일한 탈출구는 얼음을 놓는 거죠. ‘키키’가 외부적인 도움 필요 없이 스스로 성장해야겠다고 느끼는 장면이라 좋아요.



'키키'의 내면을 위협하는 물체를 화염 방사기로 비유한 이유에 관해 설명 부탁드려요.


조)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시각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였어요. 피부가 벗겨졌는데 불을 쏘는 느낌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걸 정서적으로 느낀다고 표현한 거죠.

 

-차가운 얼음을 쥐는 행동이 어떻게 분노를 가라앉히는지도 궁금합니다.

 

얼음은 안전과 관련되었어요.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다 같은 양상을 가지고 있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키키’의 포인트는 본인을 자책하고, 나는 왜 이러는지 생각하면서 자해하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감정을 느끼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를 잊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거죠. 그런데 변증법적 치료는 위급상황에서 면도칼 대신 얼음을 잡으라고 얘기하거든요.

 

사실 얼음을 잡는 것도 굉장히 차갑지만, 그래도 면도칼을 잡는 것보다는 덜하니까 그런 고통을 대체한다고 볼 수 있어요. 깜짝 놀랄 만한 차가움으로 고통을 해소하는 거죠.

 

 

(2024키키)공식공연사진_장면사진_2-6.이휘종,문지수,이민규_출처^공연제작소작작.jpg수정.jpg

자료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호스트가 지목당하는 방식으로 ‘틴더’를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만약 원안에서도 그렇다면 국내 정서에 맞게 각색한 건지 궁금합니다.

 

조) 네, 원안에서 나오긴 하는데 국내 정서에 맞게 반영했죠. 이제 무작위로 표현한 방식이 애인을 만나는 통로이기 때문에 이성이나 동성 가리지 않고 아무나 될 수 있다는 분위기를 깔아준 거예요. ‘테일러’는 ‘키키’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해도 네가 노력하고 있으니까 나도 이해해 본다고 해요. 하지만 틴더에서 만난 사람들, 그러니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키키’를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버리죠.

 

홍) 여기에는 틴더를 해봤다면 만날 법한 사람들이 나와요. 종교가 있는 사람, 헬스에 빠진 사람,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데 되게 극화해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키키'가 다니는 회사는 가상의 재활센터인지,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인지 궁금합니다.

   

조) 일단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 사람들도 말투는 굉장히 무섭지만, 사실 따뜻한 사람들이거든요. 겉보기와 실제로 말하는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들은 되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만, 자세히 보면 좋은 사람들은 아니에요. 일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거든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무심한데 자기 선에서의 친절을 베푸는 거죠. 근데 항상 겁먹어 있던 ‘키키’한테는 그 한마디가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온 거죠.

 

홍) 사실 서점 직원들도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키키’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을 나쁘다고 느끼는 거죠. 사실 거기나 지금 회사나 무심한 사람들인 건 똑같아요.

 

조) 그래서 배우들한테 서점 직원을 연기할 때 친절하지도 나쁘지도 않게 하라고 했어요. 그래야 ‘키키’가 여기에 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2024키키)공식공연사진_장면사진_2-10.이휘종 외_출처^공연제작소작작.jpg수정.jpg

자료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엄마X키키(딸)와 아빠X키키(아들)의 대본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또한, 딸을 맡은 이수정 키키와 아들을 맡은 이휘종 키키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조) 엄마와 아빠가 대본 자체는 같아요. 그런데 두 배우의 차이는 굉장히 다르죠. 이휘종 배우는 정말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수정 배우는 날것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둘이 어려워하는 부분도 달라요.

 

이수정 배우는 상황에 들어가서 '키키'에게 몰입하는 건 잘하지만, 다시 밖으로 나와 관객들한테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죠. 그리고 이휘종 배우는 밖에서 관객들한테 진행하는 건 잘하지만, 상황에 들어가서 '키키'의 감정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했죠. 저는 그게 장단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연기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홍) 모녀와 부자 관계에 있어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근데 후기를 들어보니까 엄마와 딸 사이에는 싸우면서도 애정이 있으니까 달래는 것 같은데, 부자는 막 화내다가도 시원하게 화해하는 게 다르다 하더라고요. 특히 남자 관객분들께서 젠더리스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휘종 키키와 아빠의 장면은 많이 공감되었다고 해서 다행이었죠.

 

조) 둘이 화해하는 장면에서도 디렉팅을 약간 다르게 했어요. 예를 들어 모녀는 손을 자연스럽게 잡지만, 부자는 어색하게 잡는 느낌을 현실적으로 재현하려고 노력했죠.

 

 

 

붙잡고 있던 걸 흘려보내다 


 

배우들의 온갖 감정을 끌어내고 흘려보내기 위해 어떤 디렉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 제가 배우이기도 하다 보니 무슨 작품을 하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들이 무엇을 하든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끼도록 하는 거예요.이번 작품은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면서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마치 굿판이 벌어지듯 해서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과정을 넘버 하나에 담아야 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내용 자체가 쉽지 않은 장면이다 보니 배우들이 많이 울기도 했어요. 그래서 만약 해소가 안 되고 통증으로만 작용하면 이 장면은 과감하게 빼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변증법적 치료 중 명상을 관객과 함께하도록 연출한 이유가 있을까요?

 

조) 사실은 영상에서 나레이션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무작위로 한 문장씩 읽어 볼까 했어요. 끝까지 고민하다가 영상을 틀어놓고, 자유롭게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했죠. 혼자 하는 것보다 다 같이 “내가 붙잡고 있는 게 뭐지”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게 더 힘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홍) 사실 이 작품이 관객 입장에서 보면 되게 롤러코스터 탄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주인공은 갑자기 울었다가 화냈다가 또 괜찮아지고, 음악도 엄청 다양한 장르가 등장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느낀 게 ‘키키’의 세상이었다면, 그래서 관객들은 어떠냐고 물어보면서 해소하고 나가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암전하면서 목소리를 듣는 과정 자체가 뮤지컬에서 흔치 않아서 더 특별한 것 같아요. 


 

 

경계성 인격장애를 제대로 인정하고,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갈 것


 

(2024키키)공식공연사진_장면사진_2-2.문지수,전성혜,이휘종,신진경,남경주,이민규_출처^공연제작소작작수정.jpg

자료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키키는 완치되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러한 결말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 부탁드려요.

 

조) 이 결말은 제 취향이기도 하고, 그게 사실이기도 해요. 글을 쓰고 연출할 때 장점이자 단점이 너무 솔직한 건데요. 배우들한테도 마지막 대사를 너무 “짜잔!”하고 표현하지 말자, 오히려 씁쓸하게 얘기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실제로 완치 여부가 중요하기보다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맞닥뜨리고 인정하고 용기를 내서 나아가고, 그걸 응원하는 우리가 있다고 알려주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홍) 저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이 공연에서 ‘키키’가 완치되었으면 전혀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병이 완치되지 않아도 노력하면서 스스로 사랑하기로 한 게 진짜 힘든 일이잖아요. 원안에서도 그렇고 공연에서도 그 과정까지 가기 되게 힘들었거든요. 나는 누군가와 싸우고 집착하면서 힘들어하지만, 이제 그런 나를 알게 돼서 앞으로 나아지겠다고 생각하는 게 더 희망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했어요.

 

조) 거기서 대사가 “저는 저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 인데요. 여기서 “너무”를 꼭 넣은 이유가 앞으로 계속 미워는 하겠지만, 너무 미워하지는 않을 것을 강조하고 싶었죠.

 

 

자신도 모르게 ‘경계성 인격장애’를 겪고 있을 현대인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홍) 저희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수면 위로 올렸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이번 공연에 정신건강의학과 분들께 연락을 취해서 많은 분이 보러 오셨거든요. 우리 생각으로만 만들어서 가짜 같으면 어떡하냐고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너무 좋은 말씀과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경계성 인격장애는 가지고 계신 분들도 그렇지만, 그 주변 사람들과 이걸 연구하는 의사들도 직접적인 고통을 분담하는 형태가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나 상담사의 이야기를 다룰 때 희화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죠. 그런 노력이 의사분들이 봤을 때는 되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러면서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 환자들, 그리고 환자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셨죠.

 

대다수 관람 후기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몰랐는데 왜 내가 생각나지” 또는 “내 가족이 생각나지” 같은 얘기를 많이 하세요. 이게 저희가 의도한 바였죠. 세상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있는데 한번 이해해 보라는 게 아니었어요. 사실 우리가 느끼는 불안, 우울, 분노를 종합한 어떤 대표적인 인물(키키)을 보고 있을 뿐인 거니까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들 조금씩 고통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 함께 나아가자, 스스로 사랑하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결론적으로 넘버에 나오는 “이제 흘려보내요”나 “이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봐 미워하기엔 너무 아름다워” 같은 가사가 메시지고, 우리 공연을 보러온 현대인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예요.

 

조) 저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을 분들에게 진단받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병원을 잘 찾고, 자기가 어떤지를 잘 들여다보고 노력해라. 이게 본인도 힘들고, 주위 사람들도 힘든 성격이거든요. 사실 ‘키키’를 살린 건 상담사 ‘에단’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그게 직업이니까 언제든 전화해도 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제대로 인정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주위 사람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공연제작소 작작’의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설명 부탁드려요.

 

조) 글 쓰면서 연출과 기획을 같이 하다 보니 과부하가 와서 이제 쉴 때가 된 것 같아요. 발리 같은 데 가서 요가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다도 보고 그러고 싶네요.

 

홍) 저도 여행을 가고 싶어요. 전작부터 쉬지 않고 일했기도 하고, 다음 작품에 가기 위해 다른 관점이 필요할 때가 되었거든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 같아요. 잘하고 싶은 욕심과 열정은 크지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할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돈을 벌 목적으로 작품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자.jpg

 

 

[최수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