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절대 나와 사랑에 빠지지 말아주세요! -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연극 <하얀 밤..그리고 까만 아침>을 향유하며
글 입력 2023.06.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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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을 떠돌며 고독을 느끼는 한 남자가 위험에 처한 한 여자를 마주하게 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4번의 백야가 지나갈 동안 그들은 4번의 만남을 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 절대 나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약속해 주세요!


 

쉽게 사랑하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기엔 이미 우리의 경험치가 말해주고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는 일은 매우 위험해!’라고 말이다. 그 대상이 설령 가족 혹은 애인이더라도 쉽게 사랑할 수 없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린 슬픔을 배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신뢰와 사랑은 우리가 되찾을 수 있는 가치일까.

 

누군가를 쉽게 사랑할 수 있는 용기, 그 답을 당장 찾기는 어렵지만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기 위해 이번 연극 <하얀 밤.. 그리고 까만 아침>을 감상했다. 문래 극장에서의 마지막 연극.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모르게 문래 극장에 정을 들인 것인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발걸음이 더 무거웠다. 이상하게도 사람에게 쉽게 빠져들지 못하지만 공간이 주는 사랑스러움엔 쉽게 빠져드는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달까.

 

이번 연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야>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게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몽상가인 '나'는 오늘도 거리를 걸으며 혼자임을 느낀다. 쓸쓸한 도시, 모두가 나를 떠나가는 느낌이 든다. 운하를 따라 걷던 중 강을 바라보는 여성을 발견한다. 그녀를 지나쳐 걷는 순간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에 나의 마음이 미어진다.

 

문득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나를 지나쳐 강가를 걸어간다. 그녀를 천천히 뒤쫓던 나는 그녀에게 집적거리려는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혼내준 뒤 그녀와 마주 보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나스첸카’, 소설 상에서는 바로 등장하지 않는 그 이름. 연극에서는 브로셔를 통해 관객이 먼저 그녀의 이름을 깨닫게 된다.

 

실제 소설에서는 네 번의 밤 동안 나눈 그녀와 나의 대화 속에서 이름을 알게 되고,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정말 충격적인 것은 그녀가 결국 결혼을 약속했던 다른 그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에게 보인다는 것이다. 기존 소설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마지막 결말의 부분을 각색하여 새로운 장면을 볼 수 있을지 기대했지만 소설과 같은 전개로 흘러가는 모습에 아쉬움이 들기도 하였다.

 

그에게 달려가는 나스첸카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 흔히 말해 ‘삼각관계’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나’의 마음은 기존 드라마 주인공들과 다르다. 이런 결말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바라는 ‘나’의 모습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말 그대로 하얀 밤, 백야인 것이다.

 

한 마디로 멋있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포기할 줄 아는 주인공의 모습이 용기로 가득 차 보였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달까. 쉽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믿었기에 내가 사랑했던 누군가의 행복을 쉽게 빌어줄 수 있었던 주인공의 모습. 물론 그 과정이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그들도 서로를 사랑했기에 갈등을 겪고, 아픔을 겪었다. 그 과정 자체가 주는 힘듦이 결코 작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사랑의 크기가 쉽고 작았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숭고하며 커다랗다. 물론 잘못된 방향의 사랑을 제외하고.

 

하지만 소설과 다른 점이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 숨어 있었다. 나스첸카의 ‘편지’가 그녀와의 관계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그의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랑이 끝나고, 믿음이 식을 때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경험을 흐릿하게 하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는 그녀와의 기억을 고독 속에서 선명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까만 아침.. 밝고 행복한 기억이지만 어쩔 수 없이 고독 속에 다시 갇혀진 주인공의 모습. 하지만 오히려 슬프지 않았다. 그의 솔직하고 까맣지만 밝은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을 뿐. 그 맘이 내 진심의 전부였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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