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인도 쇼가 되는 도시, 1920년대의 시카고 - 뮤지컬 ‘시카고’ 내한 공연

글 입력 2023.06.12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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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기][크기변환]포토존.jpg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접하고 좋아하게 된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럼에도 아직 내한 공연을 보거나 해외에서 뮤지컬을 관람해본 적은 없다는 점이 항상 아쉬웠는데, 최근 <시카고> 내한 공연 관람은 오랜 아쉬움을 해소하고 새로운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뮤지컬 <시카고>는 1975년 ‘밥 파시’에 의해 처음 무대화된 이후 1996년에 연출가 ‘월터 바비’와 안무가 ‘앤 레인킹’에 의해 리바이벌된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롱런하고 있는 미국 뮤지컬로 기록되고 있는 스테디셀러 공연이다.

 

 

[2023시카고내한]Roxie_록시 하트(케이티 프리덴)_컬러.jpg

사진제공: 신시컴퍼니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재즈 특유의 농익음이 묻어나는 세련된 음악, 그리고 뮤지컬의 신화적 존재인 ‘밥 파시’의 관능미 넘치는 안무이다.


화려한 무대 장치 대신 무대의 절반이 넘는 자리를 가득 채우는 것은 14인조 빅밴드의 연주 공간이다. 이러한 무대 배치는 작품에서 음악의 중요도가 높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은 근육들의 움직임을 시각화하는 것이 특징인 <시카고>만의 섬세하고 절도 있는 안무 스타일에 더욱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2023시카고내한]When You_re Good to Mama_벨마 켈리(로건 플로이드), 마마 모튼(일리나 일리 커빈)_컬러.jpg

사진제공: 신시컴퍼니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 격동기를 지나고 있는 미국 시카고이다.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했던 시대상은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적나라하게 부각 된다. 살인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 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벨마 켈리와 록시 하트는 오히려 언론의 관심을 이용하여 스타가 되고자 하고, 교도관 마마 모튼은 뇌물을 받고 이를 돕는다.


변호사인 빌리 플린은 ‘All I Care About’ 넘버를 통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거액의 돈과 이익만을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다. 


언론 역시 진실보다는 화제가 될 만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에 관심을 둔다. 1920년대 시카고의 사회상을 다룬 작품이라서 정서적으로 거리가 멀게 느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회와 언론의 속성을 예리하게 꿰뚫은 풍자와 비판 의식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모든 이슈와 관심사가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자극적인 것뿐이다. 사건이나 현상의 본질을 깊게 생각하려는 이들이 적어지는 사회에서 진실과 도덕이 결여되기란 얼마나 쉬운가. 



[2023시카고내한]All That Jazz_벨마 켈리(로건 플로이드), 앙상블_컬러 (1).jpg

사진제공: 신시컴퍼니


 

"시카고에서 살인은 쇼"라는 대사처럼, 뮤지컬 <시카고> 역시 범죄와 부패, 욕망과 배신 등의 암울한 주제를 하나의 쇼처럼 풀어낸다.


가장 잘 알려진 메인 테마곡 ‘All That Jazz’는 서곡이 끝나자마자 등장하며 시작부터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6명의 죄수들이 각자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노래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Cell Block Tango’는 폭발적이고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자신의 테마곡인 ‘Roxie’를 부르며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스타가 될 생각에 마냥 들떠있는 록시를 보고 있자면 발랄한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범죄를 쇼비즈니스 삼으려는 작품 속 인물들의 꾀임에 그대로 넘어간 군중들처럼 말이다.


작품의 끝에서 더욱 흥미로운 새로운 살인 사건에 언론의 관심이 옮겨가며 벨마와 켈리는 혼자 남는다. 하지만 그들은 팀을 이뤄 삶의 즐거움에 대해 노래하는 ‘Hot Honey Rag’ 무대를 선보이고, 관객들은 그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한바탕 쇼가 지난 후 이에 흠뻑 녹아들었던 관객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2023 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 공연_포스터.jpg

 

 

신랄한 풍자가 담긴 스토리 외에도 <시카고>에는 다양한 매력 포인트들이 있다. ‘When You’re Good to Mama’, ‘Mr. Cellophane’ 등 인물들의 특징을 잘 담아낸 넘버들은 관람에 재미를 더하고, 무대 위 지휘자가 끈적한 재즈풍 음악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모습도 매력적이다.


또한, 내용에 맞게 글씨체와 크기 등을 변형하여 재치 있게 표현한 한글 자막은 언어적 이해를 돕는 것을 넘어 또 다른 무대 장치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관능적이고 농염하면서도 센스와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은 그야말로 ‘Classy, Funny, Sexy’라는 문구와 잘 어울린다. 8월 6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무대에 오르는 6년 만의 <시카고> 내한 공연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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