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 연극 '보존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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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은 무엇이고,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의 지망생으로 살아가면 정말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이다. 성실히 준비한 공모전의 결과를 기다릴 때, 면접 보고 온 회사의 연락을 기다릴 때, 나는 내가 한 일들의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정확히는 '쓸모'있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투자한 시간과 열정이 쓸모 있었다는 증명은 ‘합격’, ‘수상’ 단 두 글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탈락은 일상이고, 합격은 희박하다. 나는 이 탈락에서 어떤 쓸모를 찾아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말로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위안 삼을 수 있지만 그 배움이라는 것은 금새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쓸모 없는 것’이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하루종일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세 딸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방황 중이다. 첫째는 집을 나가 살다가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러 가끔 찾아오고, 셋째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다 공사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가족들을 바라보며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둘째처럼 보인다. 대학을 나와 예술을 하겠다고 불타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자신의 예술도, 이 삶도 다 부질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삶과 생각에 나를 대입하게 되었고, 많은 순간 공감했다.
“모든 건 다 쓸모 없다”는 생각은 사람을 참 우울하게 만든다. 한편 “모든 건 다 쓸모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의 연속인 삶 속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이딴 거 다 쓸모 없다는 방패 같은 마음만이 유효한 위안책이다.
연극 속 이야기는 쓸모를 찾는 여정이다. 다시 말해, 일상의 잃어버린 쓸모를 ‘되’찾는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세계관이 무대에 겹쳐진다. 아주 먼 미래, 인간도 물건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도시가 그곳이다.
유일하게 이 시대에 살아 있는 인간은 보존가로, 과거의 유물을 찾아내 복원하는 일을 한다. 하루는 그가 TV를 찾아온다. 그녀에게 자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쓸모 있는’ 것만을 복원해야 한다. 그녀는 그 TV가 백남준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했고, 보존해 전시한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원 이후에야 깨닫는다. 그것은 백남준의 예술작품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은 오래 전 한 가족의 유물이었고, 그 가족의 아버지는 하루종일 TV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 이렇게 이야기는 긴 시대를 넘어 TV를 매개로 겹쳐진다.
연극에서 주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예술의 존재와 쓸모’였다.
박물관의 복원가들은 온 정성을 들여 과거의 예술 작품이나 건축물들을 복원하곤 하는데 그들의 손길이 닿은, 다시 만들어진 예술은 누구의 예술일까. 즉 만약 이들이 발견했던 TV가 백남준의 예술작품이었다면 다시 미래에 복원된 TV는 보존가의 예술일까, 백남준의 예술일까. 예술의 존재는 모호해진다.
하지만 재미있는 지점은, 모든 것이 사라진 시대에 이들이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 첫 번째로 예술이었다는 점이다. 돈이 되는 ‘쓸모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쉽게 쓸모 없다 치부되는 예술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 재미있다. 예술은 무엇일까, 쓸모와 쓸모 없음의 영역으로 설명 불가한 이것은 한 마디로 ‘이야기’다.
작년에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무대로 연극하기였다. 주제는 괴담 이야기였지만 핵심은 잃어버린 것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는 일이었다.
박물관 구석구석에는 승자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지만 사실 그 속에는 약자들의 숨은 목소리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다. 연극에서는 박물관 속 수많은 유물들을 통하여 역사에서 소외된 소수자, 약자들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과정을 겪으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복원하려고 하는 것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백남준의 TV가 아닌 평범한 TV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시대를 건너온 아버지는 위로한다. “이것이 쓸모 없다고요? 정말로?”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TV에 얽힌 가족의 이야기를, 자신만이 아는 바로 그 TV만의 가치와 특별함을.
이 위로의 목소리는 다시 보존가의 목소리를 타고 미래에서 현재로 건너와 세 자매에게 닿는다. 시대를 건너 서로는 서로를 위로한다. 그것은 단순히 세상 모든 것이 쓸모 있다는 낙관이 아니다. 모든 것이 쓸모 없을지라도, 분명 어떤 것은, 당신이 찾은 그것만은 쓸모 있을 거라는 희박한 응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야기를 끝내는 방식도 새로운데 무대 위에서 “연극이 끝난다”라는 사실을 관객과 이 시공간의 이별처럼 표현한다는 점이다. 관객은 스스로 깨닫게 된다. 무대는 끝나지만 이것이 실제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어떤 파편으로 마음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존재하고, 더 넓고 깊게 뻗어나갈 수 있다.
이 글 한 편을 쓰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의 쓸모도, 내 경험의 쓸모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서사라는 것이다. 나의 서사는 예술과 같이 쓸모 있거나 없다는 영역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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