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화 속 사랑 이야기의 아름다운 재현과 희망의 노래 [공연]

뮤지컬 <하데스타운>
글 입력 2023.05.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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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취미 중 하나는 뮤지컬 관람 내역을 정리해 둔 티켓 북을 보는 것이다. 이때까지 어떤 뮤지컬을 관람했었는지 기록하기 위해 티켓과 함께 짧은 리뷰를 적어두고, 종종 펼쳐보며 감상 경험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며칠 전, 오랜만에 티켓 북을 펼쳐보다가 2년 전 감상했던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티켓과 메모를 발견하고 관람 당시의 여운에 젖어들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설정을 다룬다. 희망을 노래하는 몽상가 오르페우스와 그의 뮤즈 에우리디케, 그리고 하계의 신 페르세포네와 함께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가 극중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신화 속 인물들이 노래하는 사랑과 희망에 관한 극이다.


본 뮤지컬은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고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하고 토니 어워즈 8관왕을 기록하며 브로드웨이에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터라, 국내 라이선스 뮤지컬로 초연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렇게 2021년 8월, 라이선스 한국어 공연이 국내에서 최초로 상연됐고 관객들의 호평 아래 초연의 막이 내렸다. <하데스타운>에 대한 당시 감상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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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음유시인이자 리라의 명수인 오르페우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간다. 본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는, 오르페우스가 독사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향하는 데서 시작된다. 


슬픔에 잠긴 그는 그녀와 함께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기 위해 직접 만든 음악의 선율로 저승의 신들을 감응시켜 하데스에게 허가를 받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지상에 도달하기 전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결국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깊은 저승으로 다시 끌려가게 된다는 비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뮤지컬은 본 신화의 기본 구성과 서사를 따른다. 다만 뮤지컬의 배경을 근대 산업 사회로 연출하는 과정에서 음악 및 일부 설정을 재즈풍 및 현대식으로 각색하였고, 결말은 여전히 비극적이지만 관객들에게 희망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던져주기도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극중 오르페우스는 가난하지만 작곡과 노래를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으로, 아름다운 에우리디케에게 첫눈에 반한다. 둘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오르페우스는 여전히 가난했기에, 허기와 추위를 견디지 못한 에우리디케는 결국 혼자 하데스타운으로 향하게 된다.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는 지하 탄광의 주인이자 독재자로 묘사되며 하데스타운 속 일꾼들은 영혼을 뺏기고 자아를 잃은 채 마치 로봇처럼 노동을 수행하는 공장 노동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즉, 근대 사회의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상징한다.


억압과 착취를 나타내는 하데스타운으로 향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살리기 위해 음악으로 투쟁하지만, 역시나 신화처럼 그의 여정은 성공하지 못한 채 이야기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작중 이야기를 극 외부에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인물로 설정된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말하는 극 후반부의 대사는 비극의 전복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우리 모두가 신화를 통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임을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이 극이 근대 산업 사회를 배경으로 같은 이야기를 재현하고 다시 노래하는 이유는 저항과 희망의 가능성을 전하고자 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겨왔던 지난한 현실은 언제나 사람들의 희망과 투쟁으로 인해 변화해 왔기에, 멈추지 않고 저항을 노래하며 서로 연대한다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세상의 고난도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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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메시지뿐 아니라, 무대 연출 역시 <하데스타운>의 훌륭한 요소 중 하나다. 무대는 그리스 원형 극장을 연상시키는 중앙의 턴 테이블과 함께, 재즈 뮤직 바를 떠올리게 하는 세션들의 공간으로 미니멀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심플하지만 보다 극중 인물들의 연기와 넘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연출이었다고 판단된다. 


하데스타운으로 향하는 지하 세계의 문은 무대 뒤쪽의 벽면이 갈라지며 조명과 연기를 통해 연출됐고, 지하 세계의 일꾼들이 일하는 광산에서는 천장에 매달려 빠른 속도로 진자 운동을 하는 조명들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대사 없이 넘버와 음악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성스루 뮤지컬인 만큼 건반, 첼로, 트럼본 등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재즈풍 음악 역시 현장감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 Wait For Me | 기다려줘


"길을 보여줘,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길을 보여줘, 세상이 바뀔 수 있을지."

"기다려, 너와 함께 갈 테니."

 

 

# We Raise Our Cups | 잔을 높이 들어


"다만 어두운 밤에 노래하는 새들, 우리는 그 새들을 위해 잔을 높이 드네."

"다만 격렬한 눈보라 속에서 피는 꽃들, 우리는 그 꽃들을 위해 잔을 높이 드네."

 


하데스타운의 넘버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두 곡의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사랑’과 ‘연대’라는 가치에 집중하고자 한 극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오르페우스의 지친 영혼과 나약해진 마음이 믿음보다 의심을 불러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처럼 우리의 현실 역시 때때로 뜻하지 않게 좌절될 수 있지만, <하데스타운>은 희망의 노래를 통해 비극을 극복하고 다시 함께 노래를 시작하자고 손을 건네는 작품이다. 사랑과 연대의 힘을 이야기하며 용기와 희망을 건넨다.

 

결말이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보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화 속 오래된 사랑 노래들에 담긴 믿음, 소망, 그리고 연대의 가치가 지금까지 이어져, 과거든 현재든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희망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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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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