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국현대미술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미술/전시]

송은 《지그: 중국 현대미술 울리 지그 컬렉션》 전시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5.0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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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미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까지 미술이라는 영역을 생각해 볼 때 서양의 르네상스 시기부터 근현대의 유화나 수채화, 드로잉 작품을 주로 떠올리곤 했다. 지금은 한국 미술사를 얕게나마 공부하면서 동양의 전통미술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간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중국 현대미술은 낯설게 느껴진다. 아마 예술계에 종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송은에서 진행중인 《지그: 중국 현대미술 울리 지그 컬렉션》 전은 중국 현대미술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는데, 울리 지그가 수집한 중국 현대미술 작품 컬렉션 중 50여 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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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지그는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국제위원회와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Tate Modern)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중국 현대미술 컬렉터로 알려져 있다. 명성 있는 컬렉터가 수집한 작품들이라는 점이 이번 전시의 포인트다.

 

한편, 중국현대미술이라는 다소 낯선 주제의 전시라서 그런지 도슨트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으며, 송은 홈페이지에서 전시 도록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섹션별 테마와 함께 모든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어 관람객들이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대신, 각 작품의 캡션은 오로지 작가의 이름만이 있을 뿐 제목조차 없기 때문에 안내 데스크에서 배포하는 유인물 한 장이 필수적이었다.

   

전시 도록에서 말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대략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70년대 후반, 중국에서 마오쩌둥의 독재 정권과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린 뒤 덩샤오핑식 시장경제 바탕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치 체제의 변화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적 표현을 가능케 하고 예술가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중국의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울리지그는 1990년대 이르러 중국 미술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울리 지그는 그의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을 중국에 기증하고자 했고, 2012년 홍콩에 M+ 뮤지엄에 1,463점의 작품을 기증하게 된다. 기증 이후에도 작품 수집을 지속해 온 그는 현재 600점을 넘긴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송은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은 그의 새로운 컬렉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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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섹션 "재료에 관한 이야기들 1" 은 인지도가 높은 중국 현대미술 작가 중 한 명인 아이웨이웨이와 장쿤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Safety Jackets Zipped the Other Way〉(2020)와 〈Upright(Ⅲ)〉(2018)는 일종의 레디메이드로서,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임의대로 해체, 결합한 작품들이다. 각각의 작품에서 '안전'을 상징하는 주황색의 재킷과 벨트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굳게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되며 동시에 그러한 결합을 다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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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섹션 "중국을 노래하라"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 공간인데, 극장과 같은 형태로 구성하여 음악을 주제로 한 두 점의 영상 작품을 보여준다. 주지우양의 〈The Declaration of the Blind〉(2015, 27분 12초)는 중국 북부 지방의 전통인 맹인 이야기꾼이 연주하고 불러주는 노래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노래는 1940년대에 중국 공산당이 선전을 위해 사용된 바가 있으며, 주지우양은 이를 1948년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서사적으로 풀어내어 연주와 노래를 부탁한 것이다. 예술작품과 제작자(혹은 실행자), 수용자와 사회 및 정치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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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순수 회화 - 추상을 향하여"는 추상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작품이 기계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기계 기술과 예술 작품의 관계가 대두되는 요즘, 시에몰린은 〈Jian 2〉와 같은 자신의 작업이 기계가 만들었으나 색과 패턴, 움직임을 비롯한 각종 사항은 작가의 의도 하에 놓인 것이라고 말하며 작품 속 작가의 창작성을 언급한다.

 

정교한 색채 배합, 정밀한 물결 무늬의 형태와 간격은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를 너무도 쉽게 뛰어넘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특이한 감각 경험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최근 떠오르는 AI를 활용하는 작가 레픽 아나돌과 같이 작업에 있어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경우도 있듯이 기계와 예술은 다양한 수준에서 서로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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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 여성의 복수”는 신체를 활용한 퍼포먼스 작업을 위주로 전시하였다. 다소 자극적이기에 아이를 동반할 시 관람에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첸저의 작품 〈Bees #054-06〉(2010)와 〈The Bearable: Birthday〉(2010)은 각각 벌에 쏘인 사타구니 사진과 날카로운 것에 베인 팔뚝 사진이다.

 

작가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예술을 통한 자기 치유의 과정”이라고 말하며 고통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조금은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신체의 감각이 고통이라는 점에서 분명 내가 여기 물리적으로 존재함을 단번에 알려주는 요소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개인적으로 가끔 슬픈 노래를 찾아 듣거나 우울한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생각해 본 바가 있다. 기쁨의 감정들은 보통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특정 상황과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우울함은 그러한 어떤 외부적 요인이 없더라도, 혼자임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와의 관계 속의 ‘나’가 아닌 ‘나’ 자체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고통,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각들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더욱 인지하게 해준다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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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자연을 모티프로 작업한 작품들을 전시한 “자연 – 문화에 동화하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담은 “억압과 해방”, 문화적 교류와 다양성을 암시한 〈세 개의 거울이 있는 파빌리온〉(2021) 등 각각의 특색으로 구분된 섹션과 작품들이 있었다.

 

한편, 송은 아트스페이스 건물 자체도 주목할 만한 요소인데, 건축가는 헤르조그와 드 뫼롱 듀오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리노베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지닌 특수한 사회 체제하에서 발전해 온 중국 현대미술에 대해 알아감과 동시에 송은만이 가진 건축적 특색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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