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중심을 단단하게 다지기 -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도서]

우리 삶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글 입력 2024.01.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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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이유


 

철학이라고 하면, 괜히 어려운 문장부터 떠오른다. 형이상학적이어서 뜬 구름 잡는 소리로만 느껴질 때도 있다. 종종 철학책을 사서 보긴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고 거리감이 느껴진다. 마음을 두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철학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자연히 알게 될 것 같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려 노력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친해지기 위해 꾸준히 접하고자 노력한다.

 

아무래도 순수 학문이다보니, 혹자는 굳이 알아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것이란 곧 쓸모 없음을 시사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렇지만 삶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있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 세상 만물의 아름다움이 그렇다. 돈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돈 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철학이 대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토록 명징한 진리가 옅어지는 세상일수록, 철학은 더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존재함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답을 찾기를 원하는 존재인데, 철학은 삶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기회를 선사한다. 유한함의 아름다움에 대해 고찰하도록 한다. 알다시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영원하지 않다. 유한하다는 것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유한하기 때문에 밀도 있는 삶을 꾸릴 수 있는 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철학은 자기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돌아보게 만들어 능동적인 태도로 갖게 만든다. 자아를 탐구하며 갈고 닦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만의 논리와 이성적 감각을 키우면서 삶의 중심을 단단히 세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코어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나은 인간으로 가는 길은 철학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좋은 질문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다. 질문이 결여된 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산 탓이다. 자, 지금부터 이야기할 책은 좋은 질문을 40가지 담고 있다. 책을 살펴보며, 자기 삶에 어떤 질문을 더할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40가지 질문을 삶에 던져보기 -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책 소개에 앞서 저자를 먼저 살펴 보도록 하자.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기획하고 인생학교가 지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영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철학적 아이디어를 현실적 이야기에 녹여, 소설적 재미와 철학적 사유가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판 스탕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프로젝트 학교 <인생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인생학교>란 어떤 곳일까?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모토에서 2008년 시작된 이곳은 전통적 학문의 경계를 넘어,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까?’, ‘관계는 어떻게 맺고 유지할까?’, ‘돈은 어떤 의미일까?’ 등 인간의 일상적인 문제와 삶의 본질에 연결된 다양한 질문을 묻고 토론하는 곳이다. <인생학교>가 펴낸 전작 『안전 이별』 또한 무척 잘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번 책도 틀림없이 좋은 시선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

 

지금부터 이야기할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Philosophy in 40 ideas)』은 다양한 사람들이 손쉽게 읽고 생각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책이다. 쉽고 재밌게 철학을 소개하며, 독자 스스로가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 입문서로, 또 흔들리는 삶에서 중심을 잡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표1]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jpg

 

 

이 책을 한 줄로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누구의 손에 쥐여줘도 차분한 시간을 선물하여 스스로 사색할 수 있게 돕는 책”

 

숨가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잃곤 한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하는 생각까지 닿곤 한다.

 

일례로, 숏폼 콘텐츠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극도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내용이 가득한, 자극적인 많은 영상에 점철된 하루. 그 끝에 우릴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허무함이다.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씩 그것들을 감상하는 동안에, 아마도 ‘진정한 당신’은 없었을 것이다. 시각에 의존하여 그저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을 테니까. 그래서 보고 난 다음에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전무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콘텐츠도 더러 있겠지만, 짧은 영상이 주는 위험성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과도한 도파민에 노출시켜 결과적으로 집중력을 저하시킨다는 사실, 표면적인 이야기만 다루기에 편협한 시각을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가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콘텐츠나 플랫폼에 대해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필자는 현대인들이 스스로의 삶에 조금 더 진지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하지 않고 깃털처럼 가벼운 삶은 자유로울 수는 있으나, 자유 이면의 책임감은 결여된 채로 평생 허공에만 머물다 어디 한 곳 정착하지 못한 채 삶을 떠도는 방랑자로 남게 될 지도 모르니까. 아, 그렇다고 방랑하는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말하는 방랑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것들을 주워 담기만 하고,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진지한 사람들의 향해 ‘진지충’이라는 속된 말로 그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코로나를 기점으로, 우리의 삶에 다양한 변화들이 찾아오면서 사람들은 생각을 전보다 조금 더 자주 하게 되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지는 않으니 말이다. 무언가를 보거나 읽고 들으면서, 오히려 생각의 힘을 기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시간 속에서, 진지한 논제들이 오갔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다시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지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기조가 다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하거나, 삶의 본질에 맞닿아있는 대화를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기가 무거워졌다고 느끼거나 약간의 무시를 곁들인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하고는 하니까.

 

쓰면서 든 생각은, 앞서 말한 숏폼 콘텐츠가 주목받는 것과 진지한 것을 불편해하는 마음의 기저는 어쩌면 같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어려운 숙제로만 느껴지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 않은가. 그냥 피하기보다는 쉴 때도 무언가를 본다는 것과 지나치게 진지한 것보다는 가벼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훨씬 유머러스하다고 느끼는 지점들이, 이 어려운 숙제를 덮어두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삶과 질문을 던지는 삶 중, 진짜라고 여겨질 만한 것은 후자의 삶이다.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사유지 싶다.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 가장 명료한 지점이 이성의 존재 여부니 말이다. 필자 역시 사유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사건에 대해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문장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설명한다.

 

인생학교의 신간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은 그러한 점을 꿰뚫고 있는 듯하다. 동서양의 철학을 망라하여 쉬운 질문으로 엮은 다음, 살면서 한 번 씩 겪을 수도 있는 문제를 짚어준다. 우리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또 자신의 삶에 대입해 보며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1. 「나는 누구일까? -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그 문제란 우리는 불행히도 우리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보통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해법은 우리의 마음을 꾸준하고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질문하기를 권했다.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삶은 죽을 때까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연속이지 않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르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더 다르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자주 세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은 우리 스스로를 잘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일을 잘 하기 위해서나 관계를 잘 이어나가기 위해서도 정말로 중요한 지점 중 하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지 않는가. 나를 아는 자만이 상대를 알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또 나를 안다는 것은 인간이 살면서 해야 할 중요한 과업 중 하나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아 실현 혹은 통합을 이루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해당 단계까지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 나 자신과도 친해지지 못한 채 떠난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중요한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2. 「빈틈없이 완벽할 수는 없을까? - 임마누엘 칸트

“인간을 구성하는 굽은 나무로 완전히 곧은 것은 결코 만들 수 없다”

 

 

(・・・)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어딘가 허술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현명한 사람은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에 완벽을 기대하지 않는다.

(・・・)

 우리의 굽은 본성을 인정하는 것은 낙담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관대한 마음과 씁쓸하지만 멋진 유머가 생겨난다.

 

 

내게 미운, 그러니까 고치고 싶은 면이 몇 가지 있다. 이를테면, 완벽한 결과물을 낼 거라는 핑계를 대며 미루는 습관이나 마음을 너무 쉽게 주고 상처받기 등이 그런 것이다. 이상한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까지 정보 수집을 하고 실력을 갈고 닦으려 노력한다. 사실 그렇게 해도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지금은 마음을 많이 내려 놓은 탓에 조금 나아졌지만, 이 고집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나 또는 타인의 결점을 발견했을 때다. 특히, 내게 있어서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던 모습을 가장 가까운 상대방에게서 볼 때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럴 때 칸트의 문장을 알았더라면 화가 누그러졌을 텐데! 굽은 본성. 내 안의 미운 점을 인정하고 조금 더 포용력 있는 자세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거듭 수정하는 삶이 오히려 건설적이니까. 실수하니까 인간이지. 실수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 아닐까? 나와 타인의 약점 혹은 실수를 인정하고, 다독여주는 마음. 그것이 인류가 가진 가장 최고의 자산인 인간다움이지 않을까?

 

 

3. 「내면을 단단히 만드는 법 - 도교 <대나무의 지혜>

 

 

(・・・)

대나무는 나무가 아닌 풀로 분류되지만

숲과 삼림을 이룰 정도로 키가 크고 튼튼하다.

나무의 몸통과 달리 대나무 줄기는 속이 비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나무가 지닌 강인함의 원천이다.

대나무는 세찬 바람이 불면 때로 땅에 닿을 듯이 휘지만

다시 튀어 올라 원래의 모습을 찾는다.

노자가 우리에게 “대나무와 같아져야”한다고 말한 이유다.

 

 

‘대나무와 같아져야 한다’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아, 밑줄을 쫙쫙 그으며 읽은 대목이다. 대나무가 지닌 강인함의 원천은 바로 비어있는 줄기라는 말에서 최근 들어 자주 쓰이는 “회복탄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회복탄력성은 어떠한 부정적 사건을 겪었거나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이것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장이겠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삶. 오늘 즐겁다가도, 내일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 삶이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 어떠랴. 내 뿌리가 잘 내려져 있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조금 휘어져도 괜찮다. 휘어진 모습은 당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잠시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내면의 단단함,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자존감과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4. 「왜 자꾸 남 일에 관심이 갈까? - 블레즈 파스칼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혼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혼자 가만히 있기’는 말 그대로 침대에 가만 걸터앉아 있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작은 기쁨에 감사하고,

자기 내면을 살피며,

마음속에 조용히 침잠해 있는 부분이 떠오르게 하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이다.

 

 

언젠가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속이 너무 시끄러울 때면 평정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요한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데, 도심에서는 그게 힘드니까. 스트레스를 받던 때에 곧장 추천받은 명상이 테마인 숙소를 예약했다. 강원도 어딘가로 훌쩍 떠나 나무와 물, 새소리만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면 상태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고서 설렘에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토록 갈증을 느끼던 쉼에 가까운 일정을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 당일 오전, 드디어 서울에서 강원도에 가는 기차에 올랐다. 사람의 관성이라는 게 참 무섭지.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기차에 앉자마자 펼쳐 들었다. 기차에서 책 읽는 것은 나의 소소한 낙이었기에, 이것도 쉼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창 너머를 보았을 때, 나는 이전과 사뭇 다른 풍경 속에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맥과 시원하다 못해 시린 공기. 파란 하늘과 푸르른 상록수, 그리고 벌거 벗은 낙엽수의 조화.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작은 새들의 지저귐. 자연 사이에서 나는 아주 작은 존재였다. 이대로라면 풍경만 바라봐도 즐겁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반나절을 못 갔다. 생각보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숙소에 들어와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산책을 하고, 정갈하게 차려진 밥을 먹었다. 조용하고 느릿한 삶의 템포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지만, 숙소 테마에 맞게 가만히 앉아 숨에 집중하는 일은 10분도 하기 어려웠다. 그날 나는 결국 함께 갔던 지인과 책을 읽고 도란도란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 거기서 명상을 엄청 오랫동안 했는데, 계속 눈이 뜨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다. 자꾸만 몸이 흔들렸다. 스님께서 생각을 비우고 움직임에만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때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5. 「감정은 고정불변한 것일까? - 불교 <자애>

 

 

인도 팔리어 ‘메타’는 자애 또는 친절, 다정을 의미한다.

자애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 중 하나다.

(・・・)

연민은 배워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못지않게

무시하고 싶고 싫은 사람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베풀 필요가 있다.

 

 

유교에도 불교에서 말하는 자애와 비슷한 개념이 있다. 바로 “인(仁)”이다. 유교의 최고 덕목 중 하나인 인(仁)은 어질다는 뜻의 한자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뜻한다. 유교의 학자 맹자는 물에 어린아이가 빠지려는 모습을 보면 모두가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하며 ‘측은지심’을 설명했다. 유교에서는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이 마음이 있어야, 결과적으로 인이라는 사덕을 좇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측은지심은 비단 동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DNA에 측은지심이 이미 내재되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주 어린 아이의 행동을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여기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우리가 자라오면서 자연스럽게 이 개념을 학습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던 시절의 DNA가 지금까지 이어져, 남을 사랑하고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육을 통해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을 떠올려 보면 자애로움은 온데간데없는 듯하다. 각박한 세상에서 여유 부릴 틈도 없이 살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애로움은 걸림돌이 되기 일쑤이므로, 설령 이러한 마음이 든다고 하더라도 흐린 눈 하고 지나가기 바쁘다.

 

생각해 보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문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왜 타인을 사랑하라는 말은 없을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만큼 타인에게도 온정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움이고,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마음, 그것을 가진 자들이 살아 남는다. 이 차이점이 바로 기계와 인간의 차이니까.

 

 


오롯하다 : 모자람 없이 온전하다


 

대나무.png

 

 

오롯하다는 단어에서부터 풍겨지는 단단함과 당당함이 좋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 봤을 때 오롯이 홀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롯하게 홀로 있을 수 있는 자만이 함께 할 수 있고, 현명한 태도를 지닌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롯이라는 부사는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고요하고 쓸쓸한 사람은 속이 깊을 테니까. 깊이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일 거니까.

 

그렇다면 오롯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먼저 좋은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한다. 모자람 없는 사람 없고,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도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내일을 맞기 위해서는 꾸준함으로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질문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본 사람이, 해당 주제에 대해 고민을 했을 때 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찰과 고찰은 우리를 오롯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삶의 가장 핵심에 다다르기 위한 여정에 꼭 필요한 것이니까. 핵심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먼저 삶을 살았던 그들의 발자취를 이렇게나마 좇다보면 혹시 모르지. 책에서 나온 대로 멋진 대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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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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