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함께 봄에 활짝 피어나자는 약속 - 뮤지컬 '비밀의 화원'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선물 같은 이야기
글 입력 2023.03.2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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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비밀의화원-포스터.jpg

 

 

어느새 해가 길어지고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완연한 봄이다. 길가엔 노란 개나리와 곧 터질듯한 벚꽃의 꽃망울이 가득하다.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과 설레는 봄바람까지. 길거리 연주가의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도착한 국립정동극장에서, 선물과 같은 뮤지컬 ‘비밀의 화원’을 만났다.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선물같은 이야기



극장에 입장해 무대를 바라보자마자 눈에 띄었던 것은 오른쪽에 자리한 라이브 밴드었다.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드럼까지,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가득 채우는 선율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고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곳은 1950년대 영국 요크셔의 성 안토니오 보육원. 여기엔 곧 퇴소를 눈앞에 둔 네 명의 아이 에이미, 비글, 찰리, 데보라가 있다. 보육원에선 반년에 한 번 아이들의 후원자이자 입양희망자가 찾아오는 ‘오픈데이’가 열리는데 이제 곧 퇴소를 앞둔 이 네 명에게 이번 오픈데이는 마지막 기회이자 희망이다. 


마지막 오픈데이를 앞두고 청소를 시작한 아이들, 그 중 말괄량이 꼬마아가씨인 에이미의 제안으로 이들은 아주 오랜만에 어린 시절 하던 ‘비밀 연극’을 시작하게 된다. 마지막 오픈데이가 끝나고 마지막 보육원에서의 밤을 보내면 이 넷은 더 이상 전처럼 함께할 수 없다. 그걸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만남 뒤엔 언제나 이별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은 내 오랜 벗일수도 있고, 순수했던 어린날의 어떤 꿈일수도 있으며, 어느 순간의 ‘나’ 그 자체일수도 있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어른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해 보였던 마법의 돌이 길거리에 널린 돌멩이 중 하나가 되고, 환상적인 동화 속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될 때. 아이는 내 세상의 전부였던 것들과 작별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 ‘비밀 연극’을 통해, 이 네 아이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각자의 성장의 열쇠를 마주한다. 

 



혼자 서는 법



내 귀를 가장 사로잡았던 넘버는 ‘혼자 서는 법’이라는 넘버였다.


‘비밀연극’에서 에이미는 부모를 잃고 고모부 집에 맡겨진 꼬마 아가씨 ‘메리’, 찰리는 고모부의 몸이 약한 아들 ‘콜린’, 데보라는 수다쟁이 유모 ‘마사’, 비글은 유모 마사의 남동생 ‘디콘’이 된다. 


혼자 겉옷 하나 입지 못했던 아이 메리는 어느날 갑자기 부모를 잃고 홀로 서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런 메리에게 유모 데보라는 ‘혼자 서는 법’이라는 노래를 들려준다. 


 

혼자서도 노는 법을 배워갈 나이

햇빛아래 혼자 크는 나무들처럼

황무지를 쏘다니며 하늘을 보고 

어린 조랑말을 친구 삼는 아이들처럼

 

- 혼자 서는 법 중

 


우린 모두에겐 혼자 서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나아간다는건 때론 너무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단계를 거쳐야만 우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뛰어놀고 장난치며 아이들은 홀로 노는 법을 배운다. 푸르른 자연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좋은 보호자이자 장난감이 된다. 메리는 그렇게 들판을 뛰어다니며 활짝 웃을 수 있는 건강하고 쾌활한 아이가 되어간다.

 

 

[국립정동극장] 뮤지컬 비밀의화원 프레스콜 간담회 (2).jpg




괜찮아, 우리의 마음에 비밀의 화원을 가꾸자


 

무대 뒤 비밀의 문이 열리고 숨겨져 있던 꽃밭이 펼쳐질 때, 그와 함께 무대를 가득 채우는 꽃향기는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비밀 연극은 점점 결말에 다다르고 동시에 네 명이 퇴소를 해야 할 시기도 다가온다. 마지막 오픈데이 날,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착하고 똘똘하고 쓸모있지만 말 잘 듣는 아이’를 연기한다. 하지만 찰리의 돌발행동으로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던 기회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찰리에겐 과거 후원을 약속했던 후원자가 찰리 대신 더 어린 아이를 데려갔던 상처가 있었다.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종종 성장통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기도 없이 어른이 되고 사회에 던져져야 했던 아이들의 처지를 찰리는 알고 있었다. 


에이미 또한 아무리 비밀연극을 해도 자신이 동화 속 부잣집 상속녀인 ‘메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동화같은 이야기 속으로 도망쳤던 것은 아닐까. 비밀 연극을 하는 동안만큼은 고아에 말괄량이 취급 받는 보육원 꼬마 에이미라는 것을 잠시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은 의미가 없었을까?

 

끝내 찰리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아이들은 결국 ‘비밀연극’의 마지막 장에 다다른다. 평생 몸이 아파 집에서 지내왔던 소년 콜린을 우연히 만난 메리는, 그를 자신이 발견한 ‘비밀 정원’에 초대한다.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진단에 평생 체념하고 절망하며 살아왔던 소년 콜린은 막 새싹이 움트고 꽃향기 가득한 정원의 한가운데에서 난생 처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주변의 격려와 자신의 의지로 꽃밭에서 우뚝 일어서서 걷는 콜린과 함께 비밀연극은 마무리된다.


마지막 연극이 끝난 후 아이들은 깨닫게 된다.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왔던 ‘비밀연극’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그들이 매료되었고 사랑했던 이야기는 곧 희망이었다는 것을. 반복되었던 ‘비밀연극’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안에 고이 담겨있던 이야기는 곧 희망의 씨앗이 되어, 어른으로 도약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힘이 되었다. 그 에너지로 아이들은 더 이상 후원자에 기대지 않고, 그들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기로 결심한다. 




우리 함께 봄에 활짝 피어나자는 약속



연극을 마치고 극장 밖을 나왔을 때,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불쑥 찾아온 봄을 느꼈다.

 

긁히고 베이고 찢긴 상처의 모양은 각자 다르더라도 우린 모두 같은 연고를 바른다. 언제나와 같은 따뜻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이자 희망이 되는 이유 또한 그것 아닐까.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울고 웃으며 희망을 노래하는 네 명의 아이들은 우리 안의 어떤 마음과도 닮아있다.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 어디 있으랴. 성장통 없이 갑자기 훌쩍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린 모두 우리 안에 각자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산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안에 비밀의 화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결국 자신의 의지로 그들만의 길을 찾아낸 네 명의 아이들처럼, 삶 속에서 희망의 꽃을 피워낸 그들처럼 말이다. 


<비밀의 화원>과 함께 이번 봄, 우리 함께 활짝 피어나자는 약속을 해 본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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