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잠자고 있는 소중한 나의 아가들 [미술/전시]

전시되지 않고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작품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3.1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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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되기 위해 존재하는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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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동차들은 평균 95%의 시간 동안 주차되어 있다고 한다. 5%의 시간 동안 운행하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주차장에서 보내는 것이다. '언젠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고 나면 내 차를 꼭 사야지' 하는 꿈도, 알고 보면 아주 잠깐 동안 차를 끌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위해 거금을 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예술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되지 않고 작가의 집이나 작업실에, 또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수장고에 포장된 채 저장되어 있는 작품의 수는 얼마나 될까? 일단 내 작업물 중에서는 약 90%가 발포지에 싸인 채 작업실 구석에서 잠자고 있다. 나머지 10%는 집과 작업실 벽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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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저장된 작품


 

몇몇 미술관에는 고가의 작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전시된다. 이런 미술관의 상설전에도 늘 같은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작품을 교체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작품들이 수장고에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작품들은 다행히 철저한 온·습도 관리하에 있지만 내 작업실에 놓아둔 작업물들은 언제 변색이 될지, 언제 곰팡이가 슬지 모르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미대생 또는 미술 유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슬픈 이야기를 해 보자면, 유학을 할 당시에 했던 설치 작업들은 귀국 준비 중에 모두 부숴서 버렸다. 그마저도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분리배출을 철저히 해서 말이다. 규모가 있는 작업들은 국가 간 이동이 까다롭고 어떻게 가져온다고 한들 놓아둘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양혜규 작가는 이런 현실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둘 곳 없는 작품들을 상자에 담아 포장한 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 놓은 것이 바로, 그의 작품 <창고 피스(2004)>이다.

 


 

카 셰어링, 작품 셰어링


 

자동차를 구입하기에는 부담스럽거나,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가끔씩 자가용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카셰어링 서비스가 꽤나 대중화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구독료를 내고 3개월마다 작품을 교체해서 원하는 공간에 걸어둘 수 있는 미술품 렌털 서비스가 등장했다.

 

예술의 미적인 기능만이 부각된 것 같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 집이나 사업장의 분위기도 바꿀 수 있고 작가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포장된 채 작업실에서 잠자고 있는 작품들이 일어나 제 모습을 보일 기회인 것이다.

 

운전은 못 하지만 안에서 셀카를 찍으려고 슈퍼카를 수집한다는 미국의 래퍼 카디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를 구입한다. 자동차는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인데, 그렇다면 '작품'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전시 형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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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전시 형태는 벽과 천장까지 작품을 가득 채우는 방식이었다. 당시의 전시는 작품을 주제나 흐름에 맞게 골라 큐레이팅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나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과시가 목적이었기에,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전시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나타난 것이 바로 화이트 큐브이다. 화이트 큐브는 모더니즘의 사상 아래 생겨났는데, 작품 감상에 최적화된 경험을 만들고자 최대한 단순한 공간 안에 작품을 눈높이에 맞게 걸고 작품 사이의 간격을 넓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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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화이트 큐브의 도래 이후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지며 가장 창조적이어야 할 예술이 보수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 중 하나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이다.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모두가 드나들 수 있는 곳에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과 친밀하게 하는 프로젝트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들이 사람들의 삶과 더 가까운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예술의 가치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아직까지 정답이라고 나온 것이 없다. 내가 나름대로 내린 답을 말해보자면, 사진기의 발명 이후 예술은 재현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박물관에서 옛사람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며 그 시대의 생활상을 추측해 볼 수 있듯, 미술관에서 오래된 작품을 보면 그 시대의 예술관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술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냐고 묻는다면, 예술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소통을 위해 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사진기의 발명 이전에도 예술을 통해 소통했다. 시각 예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건축, 문학을 통해 인간은 상호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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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예술 감상에 있어 전례 없이 자유로운 시대이다.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작품도 휴대폰을 통해 감상할 수 있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VR을 통해 침대에 누워서 모나리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의 가치에 대해 논함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보수적인 시대가 아닐까 싶다. '점 하나 찍었는데 17억'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의 값을 매긴다. 예술품을 소비하고 수집하는 많은 사람들은 감상보다는 투자의 목적으로 예술품을 구매한다. 전시회를 소개하는 SNS 게시물에서는 예쁘게 치장한 모델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얼마 전에 아는 작가님 전시회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구석에 놓여 있던 작품을 보고 "이건 뭐예요?"라고 했더니, "오랜만에 바람 쐬라고 갖다 놨어요."라고 하시기에 웃었던 기억이 있다. 작품을 판매해 본 적이 없다는 어떤 분은, 작품들이 모두 '소중한 나의 아가들'이라 팔 수가 없다고 하셨다.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는 이름 없는 누군가의 작품도 작가에게는 소중한 자식과도 같다.

 

수치화될 수 없는 예술의 가치에 대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써의 예술에 대해 한 번쯤 말해보고 싶었다.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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