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노래 <Talk Tonight>
글 입력 2023.03.0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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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잊고 있었던 작은 버킷 리스트 하나에 우연히 성공했다.


올해 나는 교환 학생 신분으로 독일에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고, 지난 3월 1일, 인천 공항에서 출국했다.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긴 항공편이라, 인천에서는 여섯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밤하늘을 날았다.


바깥을 잠깐 구경하고 기내식을 먹은 뒤에는 노래를 들었다. 특별히 듣고 싶은 노래가 없는 날에는 항상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의 노래를 랜덤 재생한다. 이번에도 그랬고, 그렇게 오아시스 Talk Tonight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Talk Tonight은 처음 들었을 때부터 어쩐지 밤 비행기에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해, 언젠가 꼭 밤하늘에 떠 있을 때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곡을 알게 된 뒤로 비행기를 탈 일이 없어 이 작은 바람은 잊고 지냈는데, 이날 마침 Talk Tonight이 첫 곡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Sleepin' on a plane, you know you can't complain

비행기에서 잠을 청해야 한대도 불평할 수는 없을 거야

You took your last chance once again

마지막 기회를 또 한 번 얻었잖아

I landed, stranded

공항에 내려서도 갈 곳이 없어

Hardly even knew your name

난 네 이름도 잘 모르는걸

 

 

멜로디나 가사도 그렇지만, 곡이 만들어진 뒷배경을 알고 나면 밤 비행기와 잘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Talk Tonight은 오아시스의 메인 작곡가 노엘 갤러거가 미국 투어를 돌다 지쳐 잠시 밴드를 떠났을 때 만든 곡이다.


깜깜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는 내가 어딜 향하는지 모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긴 여정에 몸과 마음은 지쳤고, 앞은 보이지 않고. 하지만 지금은 되돌아갈 수 없다.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일단 떠나고 보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당장은 앞으로만 날아간다. 설렘보다는 걱정, 걱정보다는 피로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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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우리의 인생은 참 이상하게 흘러가서, 무작정 떠난 길에서 지도를 주워 오기도 한다.


 

I wanna talk tonight

오늘 밤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Until the morning light

아침 햇살이 들 때까지

'Bout how you saved my life

네가 내 삶을 구해준 이야기를 할래

You and me see how we are

너와 난 서로를 바라보네

 

 

밴드에서 도망쳐 노엘 갤러거가 향한 곳은 이전 공연에서 짧게 만났던 어느 여자분의 집이었다. 그는 그 도피처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오아시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Talk Tonight을 포함해 많은 명곡을 또다시 쏟아낸다. 노엘 갤러거와 여자분의 인연은 꽤 길게 이어지며, Talk Tonight의 가사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슬쩍 담겨 있다.


전체 노래 가사를 읽어봐도 상대방이 특별한 위로의 말을 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딸기 레모네이드를 주고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게 전부다. 흔한 위로 한마디 없는데도 이 노래를 들으면 편안해진다.

 

위안을 얻는 데 거창한 게 필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그걸로 족하다. 이 세상 어딘가 나의 안식처가 딱 하나만 있으면 된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에는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오전 비행기였다. 새하얀 구름 위에서 보는 햇빛이 너무 강해 눈이 멀 지경이라 대부분의 비행시간에 블라인드를 쳐놓고 있었다. 그래도 착륙할 때가 가까워질 즈음에는 다시 블라인드를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프랑크푸르트는 우리나라보다는 여덟 시간, 싱가포르보다는 일곱 시간 느리다. 오전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 보니, 열세 시간이 넘도록 하늘에 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비행기는 밤을 마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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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 사위가 밝아졌어도 나는 여전히 내가 어딜 향해 날아가는지 잘 모르지만,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피곤함을 제치고 다시 기대감이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아예 새로운 곳을 향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여전히 내 집은 한국에 잘 있고, 또 다른 집이 될지도 모르는 곳과 첫 대면을 하러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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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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