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달 그리고 사랑

[윤희에게] "달이 참 이쁘네요."
글 입력 2023.02.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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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도쿄에서 같은 동네 맨션에 사는 사람들끼리 겨울에 여행을 가자고 동네 카페에 모였다. 10월의 도쿄는 한국과 다르게 여전히 낮이 길고 여름의 기운이 곳곳에 묻어있다. 함께 진한 블랙커피, 라떼, 핫초코를 마시면서 겨울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 센다이...' 여러 지역들이 여행지 후보에 올랐고, 이 여행지들은 6명의 만장일치를 얻지 못했다. 서로의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니 어쩌지 모두가 말 꺼내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춥겠지만 홋카이도 삿포로 어때?" 라며 제안했고, 그 제안은 모두의 만장일치를 얻었다. 모임이 해산되고 내 작은 방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잔상이 머릿속에 둥둥 떠올랐다. 그 날 밤,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 잔상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그 영상은 쥰이 윤희에게 쓴 편지를 새봄이 읽는 나레이션을 담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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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눈이 많은 삿포로와 오타루로 여행갈 내 상황이 마치, 그곳에 살고 있는 전 연인, 쥰을 만나러가는 윤희같기도 했다. 진심으로 사랑해 본 옛 연인이 없는 나지만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람인 것처럼, 적어도 그런 척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월이 되고 도쿄에서 삿포로로 떠났다. 도쿄와는 확연히 다른 시린 공기와 차가운 바람, 길거리에 나란히 줄지어 크게 쌓여있는 눈. 내가 삿포로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감각적으로 예민한 나는 단번에 어둠의 다름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삿포로의 밤은 도쿄보다 더 흐릿하고 채도가 깊게 어둡다는 것을. 그렇기에 도쿄의 달보다 더 은은히 밝게 빛나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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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삿포로에서 하루를 지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나의 지레짐작일 수도 있겠지만, '윤희에게'의 촬영지가 왜 삿포로인지,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적든 많든 매일매일 내리는 눈은 일정하게 추운 날씨에 녹을 기미도 없이 쌓이기만 한다. 또 사진으로만 보던 삿포로는 그저 북극과도 같았다. 온 거리가 하얀 눈이었고, 거리에 쌓인 눈더미들은 내 키만 했으니까. 따뜻한 사랑과는 다른 차가운 이미지. 그러나 직접 가보니 내 짐작이 틀렸다고 깨달았다. 차가운 '눈'이 가득한 이 곳이 도쿄보다 더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길거리의 쌓인 눈은 어느 흔적, 더러움 하나 없이 그저 순수한 순백 그 자체였다. 순백의 포근함. 사랑의 순수함을 더 돋보이게 한다. 

 

영원하지 않은 눈, 눈이 녹기 시작할 쯔음엔 새 봄이 찾아온다. 사랑도 그렇다. 영원하지 않는 사랑의 끝은 성장을 가져다 준다. 쥰을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을 스스로가 벌했던 윤희가 20년만에 쥰을 만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새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 결심을 한 만큼 성장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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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일본의 유명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I love you." 라는 문장을 "月が綺麗ですね。달이 참 예쁘네요." 라고 번역한 일이다. 영화 '윤희에게'에서도 달을 비춰주는 장면은 잦게 나온다. 또 쥰과 료코가 둘이 데이트하는 장면에서는 대놓고 이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일본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달, 그리고 그런 달이 더 은은하고 밝게 빛나는 이 곳. 사랑하기 좋은 겨울 삿포로. 

 

윤희에게, 삿포로.

 

오래오래 사랑하기 좋은 장소로, 진정한 사랑을 담은 영화로 오래도록 내 뇌리에 기억되기를.

 

 

[유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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