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후회없이 텍스트 조각 버리기 [문화 전반]

읽고, 생각하고, 써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텍스트 조각을 버리기
글 입력 2023.0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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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자리 잡은 지식 창고에는 작은 크기의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휴대용 게임기를 갖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평균 90점 이상을 받아오라는 부모님의 조건이 있었다. 시험만 마치면 휴대용 게임기를 가지고 노는 상상을 하며 다섯 개의 교과서를 빤히 들여다보던 것이 몇 시간이었지만, 시험지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교과서를 몇 번이고 읽으면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교과서 내용이 기억에 남는 것 절반, 블랙홀에 빠져 잃은 것이 절반이었다. 수능 결과가 발표되던 때면 뉴스에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라 말하던 수능 만점자의 조언에 따라 교과서만 보았는데도 수능 만점자와 나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읽는 힘이 달랐던 것을 깨달은 것은 더 후의 일이었다.


읽는 힘, 읽는 인간이라는 용어는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다. 두 용어는 읽는 것만으로도 뜻이 아리송하다. 말 그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인지 더욱 깊은 뜻을 요구하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읽는 힘 즉, 리터러시란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한다. 책보다 디지털이 가까워진 현대 사회에서는 읽는 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모바일 콘텐츠의 증가로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보다 짧은 시간 내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스낵컬쳐가 떠오르면서 현대 사람들의 읽는 힘은 점점 저하 중에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인간은 발전하지 못 하는 사회에서 ‘기계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기 쉬워질 위기에 처했다. 사는 것에 커다란 지장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읽는 힘을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리터러시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야만 한다.

 

 

 

“Read much, but not many books.”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많이 읽되, 많은 책은 읽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책을 많이 읽어라’였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에게는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고, 도서관에는 이 달의 독서왕이라며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에게는 1등의 자리까지 내어 주었다. 그런데, 많은 책을 읽지 말라니.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험 준비를 하던 때도 완벽히 교과서를 이해하기보다 모든 책을 읽는 행위에만 집중하였다.


그러나, 무작정 많은 책을 읽는 행위는 오답이었다. 양이 많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읽는 힘을 간과하던 때는 시험을 보기 전 교과서 한 권을 한 번이라도 읽었다는 것에 안도감을 가졌다. 한 번은 읽었으니 머릿속에 남아 걸리는 문제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정착되지 않은 지식은 블랙홀로 빠졌고, 나는 읽는 행위를 마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읽지 않았지만 읽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리터러시에서 중요한 것은 효과적 읽기다. 읽지 않았지만 읽었다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 영어 원문으로 된 책을 한 권을 읽어야 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가 있다면 영어사전에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고 있을 것이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검색하고 문장을 이해한 채로 다음 구절을 읽는 것이 순서인데, 한글로 된 책을 읽을 때는 간과한다.

 

한글로 되어 있어 읽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면서도 이해한 척 다음 문장에 시선을 옮긴다.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이해한 문장을 토대로 내 의견을 정리하여 주장할 수 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온전히 문장이 내 것이 된다. 텍스트를 넓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위는 인간을 발전시키는 것에 큰 역할을 한다.


우리는 멍청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로봇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과도한 상상이라 말하지만, 세상을 이해할 읽는 힘이 없는 인간에게서는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은 나의 미래 뿐만 아니라 사회의 미래를 위해 이바지하는 구성원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얇은 두께의 많은 지식을 쌓는 것보다 하나의 지식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패스트푸드에 중독이 되면 건강이 좋지 못하듯이, 지식 창고도 마찬가지다. 패스트푸드와 같이 단발성 지식만 머릿속에 가득 있다면, 시간이 지나서 전부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소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영화 <기생충>의 평론 논란이 일어났던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 하는 한국인의 문해력에 안타까움을 표현하였다. 어휘가 적은 사람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의 갯수가 적고 좁다. 상대방이 쓰는 용어나 지식이 대한 수용적이고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상을 좁은 창문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을 믿는다면, 감내하기 힘들 것이다.

 

 

 

블랙홀 없이 텍스트를 지식 창고에 가두기


 

사람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허나, 상상의 깊이는 저마다 다르다. A는 도심 속 풍경을 보며 야경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B는 지나가는 이들을 하나씩 보며 그들의 삶을 상상한다. 만약 A와 B가 국회의원 후보로 등장한다면, 더 이끌리는 사람은 B일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B는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속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B의 상상력은 리터러시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 무한한 의심과 상상은 관련 지식이 기반이 되었을 때 광활한 상상의 무대를 펼치게 만든다. 이러한 의심과 상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리터러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스마트폰식 읽기에 벗어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가장 빠른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생활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노출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난독 증상이 생겨났다.


SBS 스폐셜 <난독시대>에서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스냅숏처럼 빠르게 내용을 인지하는 스마트폰식 읽기에 버릇이 들어 읽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 하고 난독 증상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일단, 스마트폰을 멀리 한 뒤 책을 들어 한 문장씩 음미를 해야 한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검색해 보고, 문장을 충분히 이해한 뒤 다음 문장을 읽어야 한다. 이러한 연습이 지속이 된다면 스마트폰 속 문장을 읽음에 있어서 놓치는 문장을 한 가지도 없을 것이다. 경험은 나쁜 문장은 걸러내고 좋은 문장만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Literacy, Re trust!



리터러시 방법을 초등학생 때 배웠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한다. 자신의 주장을 근거를 뒷받침하여 효과적으로 내세우는 방법을 알았을 테고, 시험 공부를 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시험 성적에 눈물을 짓는 좌절이 아닌 휴대용 게임기를 가지고 웃는 행복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지식을 쌓는 지름길이라는 말만 곧이곧대로 믿었던 나는 의미 없는 읽기 행위만 지속했던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재는 학생들에게 ‘읽는 힘’을 알게 하고 기르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읽고 믿는 사람이 되자. 도전과 마음만 있다면 비로소 지식을 쌓아올리고, 후회 없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을 굳이 지식 창고에 담아두지 않아도 온전히 내 것이 되어 버리고 나서 다른 지식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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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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