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겨울 편지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초대한 적 없는 데도요.
글 입력 2023.11.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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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초대한 적 없는 데도요. 저는 지금 학교 앞 카페에 앉아있습니다. 잠시 머무를 곳이 필요해서 가까운 곳으로 들어와 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았건만. 제 앞에는 달린 건 미니전구뿐인 조촐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이건 이번 겨울 처음 마주한 크리스마스. 앞에 놓인 따뜻한 카페라떼. 잔잔히 흘러나오는 피아노 재즈. 몸을 감싸는 두터운 스웨터. 문득 둘러보니 모든 것이 겨울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물어본 적 없는 데도요.

 

무심히도 겨울은 깊어만 갑니다.

 

괜히 겨울에게 투덜거리게 됩니다. 겨울은 다 받아줄 것만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고는 목도리를 매고 나오지 않은 걸 후회하며 교정을 가로질렀습니다. 목도리를 잊은 이유는 다소 민망합니다. 어제는 겨우내 입을 패딩의 밑단 스트링이 끊어진 걸 발견했습니다. 수선을 위해 택배를 접수했습니다. 그 패딩 주머니에 들어있던 저의 지갑도 함께 말이지요. 지갑과 이별한 사람은 떠나간 것을 애처롭게 찾아다니며 아침부터 작은 방과 기억을 헤맸습니다. 그러던 와중 울리는 아이폰 알림. 구천오백원이 결제되었다니요. 예상보다 두 배가 넘는 택배비가 빠져나갔습니다. 왜지. 왤까. 박스 크기를 잘못 쟀을까. 겹겹이 감도는 혼돈 속에서 수업시간은 다가오고 우선 학교로 향했습니다. 할 일은 해야 하니까요.

 

하루하루가 수선스럽게 흘러갑니다.

 

바깥은 엉터리이고 제 안만 고요합니다. 사실 고요하진 않지만 고요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겨울의 서울, 밤의 길거리가 매섭게 발등마다 내려앉습니다. 뉴스에서는 오늘도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상처럼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피해 간신히 작은 방으로 숨어든 제가 있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저를 따라 들어옵니다. 어제 술을 꽤 많이 마셨지, 그 사람이랑은 어떤 관계일까, 안부를 건네야 하나, 과제해야 하는데, 밥을 잘 챙겨 먹어야 돼, 토익 공부를 해야 하나, 부모님께 연락드려야 되는데, 아참 미용실 예약해야지, 내일 약속은 몇 시로 잡을까, 돈은 언제 들어오려나, 오늘 밤에는 설거지를 꼭 하고 자야겠어, 지갑이 없어서 불편하네…

 

다시, 사는 일은 수선스럽습니다. 자꾸 무언가 놓친 기분이 듭니다. 홀로 앉아있는 적막한 방에서도요. 현재에, 그리고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상의 틀이 단순하고 명확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능한 일일까요. 세계에 올바르게 안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립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멀리 보기 위해 가장 가까운 곳을 응시하고 싶습니다. 방을 정돈하고 오롯이 저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선사 받고 싶습니다. 명상이라도 시작해야 할까요.

 

정신이 없었어, 너무 바쁘다 같은 말이 자꾸 튀어나옵니다. 느리게 살고 싶다고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빠르고 가득 채워 살지 않으면 훗날을 외면하는 기분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은 너무나 짧게만 느껴집니다. 불안은 증폭됩니다. 불안이 스며들 틈을 막기 위해 억지로 일을 벌리고 시간을 채웁니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요. 내년에는 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런 압박이 들 때쯤이면 잠시 멈춰 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먼저 제 마음을 깊고 차분히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 정말 그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실체 없던 갈망이 텍스트의 몸을 빌려 눈앞에서 춤을 춥니다. 어떤 빛이 환상적으로 점멸합니다. 글은 저를 지탱해 왔습니다. 젊은 삶은 어지럽게 휘몰아친다지만 글 안에선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습니다. 자주 글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꺼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쓰는 글은 어느 순간부터 색깔을 잃어가는 듯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듯 쓰는 게 얼마 만인지요.


삶에 있어서 짊어질 무게를 결정하는 건 순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가볍게 살고 싶고 덧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넘겨내야 남은 나날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세상이 낯설었을 때. 저는 저를 잘 몰랐기에 깊고 어둡게 고뇌하다가 머릿속에 온통 저 자신밖에 남지 않았을 때. 검푸른 새벽, 산사태처럼 와락 무너지다가 다음날 아침 여전히 저와 단 둘이 깨어났을 때. 무거울 때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보다 저를 조금은 더 아는 지금보다 그때의 기록이 저라면 더 저인 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오롯한 저 자신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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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저는 지금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순리처럼 세상과 연결되며 관계를 맺고 확장되었을 뿐입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저는 저를 넘어 세상에 대해서 글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당신에 대해서도, 굴러다니는 낙엽과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만큼 홀가분해졌습니다. 이건 오래전 제가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바닥처럼 무너지던 나날은 도리어 탄탄한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저를 밟고 우뚝 서 있습니다. 이제 어디로 발걸음을 떼어볼까요.

 

저를 스쳐 간, 혹은 아직 머무르는 관심사들을 떠올려봅니다. 광고가 주는 창의적인 즐거움이 좋아 광고홍보학을 전공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세상을 둘러보며 마음이 동했던 순간들. 문학, 커피, 공간, 패션, 브랜드, 음악, 디자인, 영화... 세상에는 아름답고 멋진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 중 하나를 고르기도 어렵습니다. 무엇이 저와 가장 밀접할지 고민하다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창의적이고 깊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일에 끌리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도 싶습니다. 아직 너무 모호합니다. 사실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느리고자 하지만 커튼을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면 세상은 쏜살같습니다. 동행하는 줄 알았던 시간은 언제나 앞서 걸어갑니다. 어쩌면 제가 나태한 걸지도요.

 

그런 와중에 불현듯 12월은 오는군요. 정말 불현듯.

 

어김없이 조급해지는군요. 우선 순순히 이 마음을 따라야 합니다. 조급하면 조급한 대로. 진정될 때까지 앞서가는 시간을 쫒아 달려가볼까요. 여전히 둘러보더라도 바삐 걸어 더 멀리까지 닿아볼까요. 마음이 저를 데려가는 곳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끄는 대로 이끌리고자 합니다. 이유가 없더라도 적어도 악의는 없을 테니까요. 방황이 아닌 탐색의 시간들이라 믿습니다. 저는 어디에 닿게 될까요.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는 가볍게 여기까지만. 글이 점점 고리타분해짐을 느끼거든요. 저의 존재가 조금이나마 느껴지시나요. 제가 어떤 사람으로 느껴지시나요. 글은 사람을 아름답게 속이곤 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며 살고 싶습니다. 글에서 우리가 솔직해진다면 글로 연결되는 관계는 첫눈처럼 애틋해집니다. 우리는 피부를 넘어 마음끼리 맞댈 수 있습니다. 대면보다 가까운 비대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 읽고 쓰는 걸 멈추지 않기로 다짐하며. 겨울은 아무래도 좀 쓸쓸하잖아요. 그러니 여기까지 다 읽으셨다면 이제 써보는 겨울밤 보내시길 바라요. 다 쓰시면 저도 좀 보여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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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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