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과거지향적 인간의 보물상자에 담긴 것

몇 조각 찰나의 힘
글 입력 2023.01.1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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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좋아하던 아티스트가 연달아 추억을 얘기하는 곡을 쓴 적이 있다.

 

나도 지금보다 어렸고, 그 뮤지션은 나보다 어려서 ‘어린 사람이 왜 자꾸 과거 이야기를 하지?’ 했는데 그 사람의 과거는 굉장히 반짝거려서 그런 일이라면 시간을 들여 몇 번이고 곱씹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추억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예전에 쓴 글이나 일기를 다시 읽어본다. 때로는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때의 설렘과 즐거움을 찾아본다. 그러면 마음이 안정된다. 나의 오늘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과거를 본다.


잘 생각해보면 그 과거도 행복하기만 한 시절이 아닌데도 기록할만한 순간 한 조각 떼어보면, 그런 것들만 모아보면 기록된 과거는 보물 상자가 되어있다.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찰나의 과거들.


어디선가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or 미래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봤다. 나는 미래에 갔다가 누군가의 존재가 없는 걸 확인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조건 과거. 내 미래는 밝고 희망찬 게 아니라 근심과 걱정이 어려있어서 이런 사고로 이어지는 것 같다.

 

미래는 불투명해서 불안한데 지나온 과거는 지금의 나를 불안에 떨게 하지 않으니까 앞을 보는 것보다 뒤를 보는 게 안전하다.

 

*

 

최근에는 10대 시절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고 있다. 다시 들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좋아하고 있어서 지난 반년 동안 의도치 않게 많은 돈을 썼고, 쓰는 중이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해외 음원을 들을 수 있지만, 이미 예전에 사라진 아티스트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서 CD를 다시 사 모으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음악을 듣기 위한 용도보다 소장의 의미가 강해진 CD를 나는 듣기 위해서 샀다.


돈을 주고 추억을 샀다. 그때는 용돈을 모아서 아껴서 하나 겨우 손에 넣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망설임이나 간절함 없이 손쉽게 카드를 긁는다. 추억은 추억이라서 낡아 있었다. 때로는 반짝이지 못하고 허름했다. 그런데도 말도 안 되는 프리미엄을 주고 손에 넣었다. 돈으로 해결되는 일은 차라리 쉬우니까.


그 시절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것. 과거의 나를 위로해주는 현재의 구매력. 과거의 결핍을 충족시켜 가는 현재의 삶. 이게 옳은 방향인지 모르겠는데 어딘가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자꾸 나를 맴도는 과거 그 시기를 잘 살고 싶단 생각도 든다. 미래의 나에겐 현재가 그런 시기가 될 수도 있겠는데 그보다는 지나간 과거가 자꾸 신경 쓰인다. 회복하고 싶고, 재건하고 싶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과거를 향해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때는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쉬운 일을 하는 것. 가진 것 없고 가질 것 없는 사람이 뭔가 충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다.

 

되돌아볼 만한 대단한 과거는 없고, 현재는 만족스럽지 않고 미래는 핑크빛이 아니다. 일종의 회피본능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도피해서 과거로 숨는 것. 그때 하지 못한 것들을 지금 실행하면서 과거를 위로하는 일. 어쨌든 현재의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그걸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며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성과없는 과거형 인간으로 산다. 구글 포토와 네이버 블로그가 알려주는 몇 년 전 오늘의 나의 흔적을 마주하고 추억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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