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틀즈와 롤링스톤스, 두 개의 태양 [음악]

글 입력 2023.01.1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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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의 여러 로큰롤 뮤지션이 로큰롤을 그만두거나 추문에 휩싸였고, 비행기 사고로 세 뮤지션들이 세상을 떠나며 로큰롤은 침체기를 맞았고, 미국의 음악 산업은 철저히 상업적이고 정제된 뮤지션들을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영국의 여러 록 뮤지션들이 미국 땅에 발을 디디며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영국의 뮤지션들이 미국을 ‘침략’하며 그들의 음악이 미국의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것이다.

그중 비틀즈(The Beatles)와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는 쌍두마차처럼 미국을 마구 휩쓸고 돌아다녔다.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락 뮤지션의 라이벌 구도로 유명하지만, 서로 다른 성격과 음악 스타일은 그 시대의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 비틀즈, 음악에 수많은 실험을 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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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매니아(Beatlemania)’. 비틀즈의 거대한 팬덤 그리고 비틀즈의 선풍적인 인기를 일컫는 단어이다. 1964년부터 비틀즈의 인기는 미국에도 닿으며 본격적인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시작을 알렸다.

‘Let It Be’, ‘Hey Jude’, ‘Yesterday’와 같은 노래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비틀즈의 명곡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비틀즈를 팝 밴드에 가깝게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비틀즈는 그보다 더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실험적인 음악에까지 도전한 밴드이다.

비틀즈의 활동은 1966년을 기점으로 그 전의 라이브 밴드와 그 후의 스튜디오 밴드의 영역 두 가지로 나뉜다. 1966년에 라이브 밴드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기로 선언하고, 그 이후 스튜디오 녹음을 중심으로 진행하며 라이브로는 할 수 없었던 모든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쏟아 부었다.
 
 

 
 
‘Tomorrow Never Knows’는 그 전환점에 발매된 앨범 [Revolver]의 수록곡이며, 전위적인 녹음 기술을 총동원한 곡 중 하나이다. 처음에 들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당히 많은 소리가 섞여 들리기 때문에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난해함이 오히려 화려한 특색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는 비틀즈의 사이키델릭 록 장르 곡 중 하나이다. 곡 제목의 각 대문자만 두고 봤을 때, 마약 종류인 LSD를 연상케 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실제로 곡의 가사도 마약을 복용했을 때의 느낌을 묘사한 내용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비틀즈의 경쾌한 개성이 느껴지는 곡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크나큰 명성과 반대로, 비틀즈는 생각보다 그 활동 이력이 짧은 밴드이다. 비록 각 멤버의 개인 활동이 그 이후에도 길게 이어졌지만, 밴드로서는 1962년에 데뷔하여 1970년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굉장히 다양한 곡들을 발표했으며 그 곡들은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으니, 그들의 매력과 개성이 어떠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2. 롤링스톤스, 로큰롤의 정신을 계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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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스톤스는 비틀즈와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밴드이다. 비틀즈의 정제된 이미지와 다르게 롤링스톤스는 불량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오히려 실상은 비틀즈의 멤버들이 노동 계급 출신인 반면 롤링스톤스는 좋은 학력을 가진 중산층 출신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소소한 반전이기도 하다.

시대를 거치며 롤링스톤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지만,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성행하던 1960년대 당시에는 불량하고 반항적인 이미지와 함께, 직설적이고 거친 가사를 지닌 정통적인 로큰롤 스타일의 음악을 했다.
 
 

 
 
롤링스톤스의 대표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그 이전에 커버 곡이나 다른 작곡가들이 써준 곡들을 위주로 발표하던 롤링스톤스의 행보를 완전히 뒤집은 곡이다.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차드(Keith Richard)의 이 자작곡은 롤링스톤스의 첫 빌보드 1위 곡으로, 비틀즈와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합류하는 계기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1996년에 발매된 앨범 [Aftermath]의 북미 버전 트랙 리스트의 오프닝 곡인 ‘Paint It, Black’도 좋아한다. 시타르 악기 소리가 두드러지는 점과 음울한 가사를 지닌 이 곡은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실연당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과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반전(反戰)을 의미하는 가사라는 설도 있다.

비틀즈와 반대로 롤링스톤스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라이브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밴드이다. 비록 몇 번의 멤버 교체는 있었지만, 해체나 휴식기 없이 장수하고 있는 밴드이며, 음반 수익보다 라이브 공연 수익이 더 큰 밴드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러한 면모는 자유로운 로큰롤 정신을 꾸준히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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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와 롤링스톤스의 비슷한 시기의 활동과 성과, 그리고 대조적인 이미지는 두 밴드를 라이벌 관계로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 밴드가 앨범을 발매하면 그에 대한 답가식의 앨범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두 밴드는 서로 음악적 교류를 활발히 했었다.

이제는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나 다양한 음악 산업과 수많은 밴드가 등장하였지만, 그 두 밴드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은 끝없이 생겨나고 대중들도 여전히 두 밴드의 노래를 즐겨듣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밴드는 불멸의 라이벌이자 ‘두 개의 태양’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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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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