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오네스코 - 수업 [도서/문학]

외젠 이오네스코의 「수업」에 대하여
글 입력 2022.12.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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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시골에 사는 교수의 집에 한 여학생이 수업을 들으러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의 바르고 명랑하며 활기찬 학생에 비해, 교수는 소심하고 신경과민한 모습을 보인다. 종합 박사 획득을 바라는 학생에게 교수는 우선 수학을 가르치기로 한다.


교수: 일 더하기 일은?

학생: 일 더하기 일은 이죠.

교수: (학생의 지식에 놀라서) 허, 맞습니다. 학문의 깊이가 대단하시군요. 종합 박사는 문제없겠어요.

학생: 어머, 고마워요. 선생님께서 그러시니 더욱이요.

교수: 좀 더 나가볼까요? 이 더하기 일은?

(...)

교수: 훌륭해요. 훌륭합니다. 최고예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만해도 되겠어요. 덧셈은 통달했으니까. 이제 뺄셈을 해보죠. 자, 아직 안 지쳤으면 한번 대답해 보실까요? 사 빼기 삼은 뭐죠?

학생: 사 빼기 삼? ..... 사 빼기 삼이오?

교수: 네. 사에서 삼을 빼보라고요.

학생: 음.... 칠인가요?

교수: 정말 죄송합니다만, 사 빼기 삼은 칠이 아닙니다.

「수업」,75p


간단하고 쉬운 질문을 하던 교수는 뺄셈에서 가로막히자, 말이 빨라지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산술의 논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채로 암기만 하는 학생, 화가 난 교수에 의해 수업 분위기가 과열될 무렵, 하녀가 방에 들어오며 수학 수업은 형편없게 마무리된다. 허탈한 교수는 언어학 수업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하녀는 “정말 언어학은 안 돼요. 언어학은 재앙의 지름길이에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교수를 말린다.


15분 동안 신스페인어의 일반 및 비교언어학적 기본 원리를 터득 시켜주겠다는 교수의 장담은 무언가에 도취된 듯한 장광설로 이어진다. 극이 진행되며 학생의 동작이나 태도의 활기찬 리듬은 점점 사라지고, 미소 짓던 표정도 차츰 슬프고 침울해지다가 급기야 학생은 이가 아프다고 호소하기 시작한다.

 

신스페인어군의 구별, 음성, 연음, 발음, 단어의 어근, 문장 번역 등 숨 가쁜 강의의 진행 속에서 학생의 “이가 아프다”는 고통의 표현이 잦아진다. 이에 교수는 “조용히 해요. 머리통을 부숴버리기 전에” “이가! 이가! 이가! .... 내가 뽑아줄게요” 라며 극도로 흥분한 채 폭력적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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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eçon, 에사이온 극장, 파리

 

 

고조된 긴장감 속에서 교수는 하녀에게 식칼을 가져오도록 시키고 제정신이 아닌 듯 학생의 주위를 돌며 가상의 식칼을 휘두르는 춤을 춘다. 교수는 ‘식칼’이라는 단어의 번역을 알려주겠다며 학생에게 이를 발음시킨다.

 

교수: 자, 따라 해요. '식칼‘ .....‘식칼’ .... ‘식칼’ ....

학생: 목구멍이......아파요. 식··... 아 ..... 어깨가....가슴이.... 식칼......

교수: ‘식칼' ...... ’식칼' ...... '식칼' .....

학생: 엉덩이가 ......식칼.... 허벅지가 ...... 식.....

교수: 정확하게......'식칼' ...... '식칼'....

학생: 식칼...... 목구멍이.....

교수: '식칼' ...... '식칼' .....

학생: 식칼 ...... 어깨가.... 팔이, 가슴이, 엉덩이가 .... 식칼..... 식칼....

「수업」,106p


교수의 현란한 말은 유혹과 에로틱한 침입으로 향해 가고, 결국엔 성적 제의에 해당하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수업이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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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sson, Memorial hall, 1965

 

 

하녀 : 자, 됐죠? 갈까요?

교수 : 그래요, 갑시다. (하녀와 교수는 학생의 시체를 든다. 한 명은 어깨를, 또 한 명은 다리를 잡고 오른쪽 문을 향한다.) 조심해요. 다치지 않게.

 

모두 나간다. 무대는 잠시 비어 있다. 왼쪽 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하녀의 목소리: 네, 나가요

처음 시작할 때처럼 하녀가 등장하여 문 쪽으로 간다. 두 번째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하녀: (방백) 되게 급한 아가씨로군. (큰 소리로) 기다려요. (왼쪽으로 가서 문을 연다.) 안녕하세요? 새로 온 학생이죠? 수업 들으러 오셨죠? 지금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오셨다고 말씀 드릴게요. 금방 내려오실 거예요. 자, 들어오세요. 어서요.

「수업」,112p


이후, 교수와 하녀는 죽은 학생의 시체를 처리하고 다시 새로운 학생을 맞이하며 그렇게 극은 막을 내린다.

 

 

 

폭력의 수단이 된 언어, 혹은 폭력 그 자체로서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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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1909~1994)는 지속적으로 반연극을 주창하며 조리의 끝판왕인 언어의 해체를 통해 사상의 해체, 조리 세계의 부조리함에 대한 폭로를 말해왔다.

 

앞서 발표된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La Cantatrice Chauve」(1950)가 말의 무작위 한 남발을 통한 언어의 상실을 노정했다면, 「수업La Leçon」(1951)에서는 보다 강력하게 언어 그 자체에 대해 고발하고자 한다. 「수업」에서의 언어는 보다 통일성 있으며 단정하고 현학적인 듯 보이지만, 그 언어는 점진적으로 난폭해져 결국 부조리해지고 종국엔 식칼이 되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학생은 초반의 생기를 상실하며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객체화되어 간다. 교수의 손아귀 안에서 한낱 가련한 사물이 되어버린다. 이오네스코는 이러한 교수-학생, 주체-객체, 지배-피지배의 서열 관계를 통해 언어가 현유한 특징을 암시한다. 또한 모든 것을 논리의 틀 안에 집어넣으려는 수학과 언어학의 말을 일종의 폭력으로 규정하는데, 이를 확장하여 해석해 본다면 학생의 “이가 아프다”는 호소를 합리주의가 야기하는 정신적 고통, 결국 합리주의의 폭력에의 폭로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업」에서의 말은 논리를 앞세워 점잖은 체 하지만 결국엔 광기의 칼이 되어, 인간 존재를 파괴하는 수단이 된다. 언어의 위력, 폭력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개인을 넘어,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유지한 채 극이 순환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죽음까지도 고려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오네스코가 「수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말의 허위성, 폭력성과 같은 특성은 결코 그의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그에 붙어있는 수많은 위계와 그들의 수호자, 논리. 이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칼이 되고 있으며, 누구를 배척하고 동시에 어떤 부조리를 폭로하고 있는지. 더하여 나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칼자루를 쥐고 있지는 않은지.

 

이오네스코의 「수업」은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언어의 의미와 고장 난 세계, 그 속의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참고 문헌

안병순,민들레, “이오네스코의 작품 <수업>에 나타난 폭력적 의미와 움직임의 표현분석”, 『한국무용학회지』, 한국무용학회, 2008

김찬자, 『이오네스코 읽기』, 세창출판사, 2015

외젠 이오네스코, 『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2003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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