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스러운 모험기 - 도서 '집이라는 모험'

글 입력 2022.12.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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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있다. 1부에서는 저자의 전원생활에서 발생한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현실적인 고충을 가볍게 묘사한다. 3부에서는 자연과의 관계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지막 4부와 에필로그는 1~3부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던 현실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룬다.

 

외부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상상력을 표현하는 빨간머리 앤처럼, 1~3부에서는 발랄하고 활기찬 저자의 좌충우돌 모험기가 묘사된다. 하지만 앤은 고립과 불안을 해소하기위해 자신의 내적 자원을 풍부하게 사용했을 뿐이다. 그녀가 가진 창의성과 감수성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어린아이가 쌓아올린 모래성은 언젠가 가차없이 무너지길 마련이다.

 

최소한 1~3부를 읽는 동안, 낭만적이고 유한 문체 사이에서 필히 숨겨진 것들로 인해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책은 주거공간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이벤트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묘사하지만, 막상 이벤트의 주체가 되어야할 주체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술하지 않는다. 책은 전반적으로 주거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위주로 내용을 전개하는데, 자세히 읽다보면 책 전반에 저자의 주관적 감상만이 존재한다.

 

예를들어 또래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으로 오게 된 어린아이들의 심리변화, 희생을 감내하였지만 직장과 거리가 멀어진 남편과 필연적으로 있었을 갈등, 지나치게 과중해진 업무와 책임감에 짓눌린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저자의 묘사나 문체가 유하고 아름답다해서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드시 모든 책의 저자들이 무겁게 모든 것들을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낭만적으로 묘사될수록 방안의 코끼리는 더욱 거대해지는 것 같았다.

 

글쎄, 현대사회에서 규정되는 '집'이 자본과 계급의 상징이기에, 그러한 상징에서 벗어난 것 만으로도 이들의 모험기를 달콤하게 바라봐야 하는가? 무리하게 이사한 집-나의 집이지만, 결국은 문서상으로는 남의 집인 그곳-에서 낭만성만을 읽어내야 할까? 편안하게 전원생활의 낭만성을 상상하기엔 그물이 나라는 독자를 사정없이 끌어내렸고, 4인 가족의 행복한 생활을 그려보기엔 나는 가족과 관계에서 묵인되는 환상성에 지나치게 예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이러한 내 요구에 부응하듯 마지막 장에서 그 나름의 진실성을 주장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전 장들에서 묵인되었던 목소리가 드러난다. 아이들의 성장, 재개발 공사로 인한 집의 상실 등의 이야기. 저자가 앤과 같이 발랄한 상상력으로 집을 모험했다면, 그녀처럼 동네를 떠날때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입자였던 저자가 자신의 집에 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내집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기다리고 찾았던 내 집이고, 사는 내내 알뜰살뜰 손보며 정성 들인 우리 집이다. 이 집에서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글쓰는 사람으로 진한 시간을 살았다. 그것만으로고 감사해야 한다. 바라던 모든 것을 이미 받았고 누렸으므로 욕심 없이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모험의 날들로.

 

- p254~255

 


이러한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두가지 면에서 감탄했다.

 

첫 번째로는 그가 여전히 모퉁이 너머에는 새로운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앤의 낭만성과 순수성을 간직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내가 삐딱하게 보고 있었던 그녀의 순수성은, 그러니까 '이 집이 나의 집'이고, 이 곳에서 '엄마와 아내, 글쓰는 사람으로서' 삶을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 모습은 일종의 억압이 아니라 분명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가 글 사이가 아닌 현실에서 어떤 삶을 이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가 이 집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마침내 그곳에서의 경험을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것이야말로 작가로서 저자가 가진 강점이자,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사랑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모험'은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집을 찾아 가족 구성원들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또다른 모험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이상한 감동을 준다.

 

이 각팍한 세상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자본과 계급, 가족주의의 환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좀 순진해보이고 말이 안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집을 모험으로 정의하는 것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정말로 그 순진해 보이는 발걸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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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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