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세히 알면 더 예쁘고, 아름다운 궐리사 -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

글 입력 2022.11.0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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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하면, 떠오르는 많은 수식어가 있다.


사도세자의 아들, 효심의 아이콘, 개혁 군주,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연 학자 등. 그의 인생 또한 드라마틱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조’만큼 소재로 많이 삼는 왕도 없을 것이다.


몇 주 전 수원 화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정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교통이 좋은 신도시의 거점으로 삼은 곳이 수원이다. 이를 위해 축조한 ‘수원 화성’은 과학적, 예술적으로도 위대함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지형에 맞게끔 시내를 유려하게 둘러싼 화성의 모습에서 방어적인 목적뿐 아니라 지역에 사는 백성들의 삶도 함께 고려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백성을 위해 단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정조, 당시 조정을 장악한 노론 세력에 대항해 왕권을 강화하려면 유림의 힘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공자의 충(忠) 사상을 통해 유림의 힘을 단합시키고자 했고, 정조는  화성 멀지 않은 곳에 공자의 사당 ‘궐리사’를 세웠다.


"오산 화성 궐리사 (烏山華城闕里祠)"


경기도기념물 제 147호로 지정된 궐리사는,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두 곳의 공자 사당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번에 수원 화성에 이어, 오산시의 궐리사를 방문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연치고는 꽤 필연이라고 느껴졌다.




조선시대 유교 사상의 중심지, 정조가 세운 공자의 사당 “궐리사”


 

[정지] 화성궐리사_포스터-01.png

 

 

오산시에서 주최한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에 초대되었다. 오산시 궐리사 내에서 진행되는 무료 행사로 다양한 부대행사와 현장극이 예정되어 있었다.


지하철 1호선이 지나는 오산대역에 내려 20분 정도 걸으면 궐리사에 도착한다. 오산시는 처음 방문해보는데 공자의 사당 ‘궐리사’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독산성 세마대지’가 유명하다고 한다. 근처에는 정조와 사도세자의 능인 융건릉도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주변의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다고, 문득 생각했다.


날씨가 좋아 걸었다. 가을의 끝자락에 뒤늦게 물든 단풍으로 가득한 거리였다. 지상으로 기차처럼 추추 추추 지나가는 지하철 소리를 배경 삼아 걷다 보니 어디선가 노랫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산등성이를 도니 빨간빛으로 칠해진 문과 궐리사를 둘러싼 돌담이 보였다. 기대한 대로 노란 물이 잔뜩 든 은행나무가 아름드리 펼쳐져 있었다. 200년도 더 된 은행나무, 궐리사의 터줏대감이다.

 

 

 

가을의 정취, 그리고 재미와 의미로 다채로웠던 행사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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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과 하마비가 함께 있는, ‘외삼문’이라고 불리는 궐리사의 정문이다. 주요 능, 원, 묘, 궁전 또는 관아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 ‘홍살문’ 그리고 누구든지 이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의 ‘하마비’ (사진 우측 아래 비석)가 궐리사라는 유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정조가 궐리사를 세우기 200여 년 전, 공자의 후손이었던 ‘공서린’ 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고 학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를 알고 정조가 화성을 축조하면서, 유교의 중심 공간으로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직접 글씨까지 써 ‘궐리사’를 만든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니 왁자지껄한 소리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아이들과 학부모, 어르신들이 은행나무 부근에서 가을날의 주말을 만끽하고 있었다. 공서린 선생이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 학생들의 학업을 응원했다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공연 전, 주요 건물과 정문 사이의 공터에서 여러 부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날씨도 좋았지만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정말 듣기 좋았다. 풍력 자동차 만들기, 우드버닝, 지역 술 시음회, 타투 붙이기, 가을향 테라피 주머니 등의 행사가 열렸고 아이들은 부스를 넘나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하고 있었다. 어른인 척하는 나는 오산 새마 쌀을 원료로 발효시켜 빚은 생주를 한잔 마시고, 야무지게 안주를 물며 아이들이 만드는 것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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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어진 건축물은 1900년도에 이르러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궐리사는 서원은 아니었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1971) 때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건축적 의미보다는 사료적 의미를 더 지니고 있다.


서원의 건축방식과 유사함을 알 수 있는데, 조선 후기 서원과 다른 점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간과 제향 공간의 배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서원의 전형적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학 공간이 앞에, 제향 공간이 뒤에 있다. 반면 궐리사의 경우에는 ‘동학서묘(東學西廟)’의 형태로, 강학 공간이었던 ‘행단’은 우측에 그리고 공자의 위패를 모신 ‘성묘’는 좌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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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삼문’을 지나면 여러 번 벼락에 맞고도 살아남은 향나무와 나란히 있는 ‘성묘’를 볼 수 있다. 공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향나무를 지나서 좌측으로 향하면 공자와 공자 제자들의 석상이 놓여있는 ‘성상전’(아래)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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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성현인 공자를 위한 사당이 지어졌을 만큼 조선시대 당시 유교에 대한 열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여기 세워져 있는 공자의 석상도 중국 산둥성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공자의 생애를 그림과 글로 목판에 새긴 ‘궐리사 성적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를 만날 수 있는데, 궐리사 내 ‘공자문화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자세히 알면 더 예쁘고 아름다운, 화성 궐리사



오후 2시가 다 되어가자, 하나둘씩 행단 옆의 공연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1부는 극단 정:지가 ‘궐리사’의 유래와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극으로 풀어냈고, 2부는 『리더라면 정조처럼』의 저자 김준혁 교수의 강의로 채워졌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과거 이야기를 해설자 역할이 맡은 정령이 등장해 알기 쉽게 풀어냈다. 아이들이 많았던 행사장이었는데, 정령 역할을 맡은 배우는 관중의 호응을 잘 이끌었다. 해설자의 재치 있는 호응 유도로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극의 열기는 뜨거워졌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죽음부터, 적과 싸우는 박진감 넘치는 정조의 액션, 공서린 선생의 이야기에 아름다운 선율의 첼로 연주까지 더해져 관객들의 집중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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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궐리사의 배경과 정조에 대해 좀 더 심도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강단에 서서 홀로 이야기하는 형식이어서 가끔 집중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지만, 재미뿐 아니라 지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구성이어서 좋았다.


오산의 궐리사는 정조 문화유산으로 세계유산 확장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공자를 모신 사당이지만, 정조의 개혁의지와 애민사상이 담긴 곳임을 알고 나니 궐리사를 방문하기 이전과 이후의 마음가짐은 크게 달라졌다. 몇 주 전 방문한 수원 화성에 이어, 화성의 융건릉, 오산의 궐리사까지 정조가 수원시 일대를 얼마나 중요한 거점으로 삼았는지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몰랐던 문화유산,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다. 오산에 처음 방문했던 낯섦이 궐리사를 방문한 이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뭉클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따뜻한 날, 좋은 날에 멀지 않은 곳으로 종종 걸음 해 우리 주변의 것에 대해 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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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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