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름밤을 수놓은 클래식 - '힉엣눙크 페스티벌'의 '갈라콘서트'

여기 그리고 지금의, 기분좋게 낯선 음악
글 입력 2022.09.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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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엣눙크!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현악 오케스트라, 세종솔로이스츠가 2017년부터 선보인 뮤직 페스티벌이다. 낯설게 들리는 힉엣눙크라는 이름은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라틴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름의 뜻처럼 오직 지금, 이 장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혁신적인 곡을 연주한다.


8월 16일에 시작해 9월 6일에 막을 내리는 22일간의 여정의 중간에, 갈라 콘서트가 있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8월의 마지막 날 공연되어, 약간은 더위가 가실 무렵 귀와 마음을 한 번 더 시원하게 해주는 새로운 음악의 향연이었다.

 

 

Gala_Poster.jpg

 

 

 

탄둔 | '엘레지: 6월의 눈'



갈라 콘서트는 3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첫 번째로 탄둔의 ‘엘레지: 6월의 눈’이 연주되었다. 중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탄둔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영화 ‘와호장룡’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래미상과 그라베마이어 작곡상 등 권위 있는 상을 다수 수상했다.


‘엘레지: 6월의 눈’은 13세기 중국 극작가 관한친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젊은 여성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되자 자연이 이상 현상을 일으켜 그녀의 결백을 호소한다는 내용이다. 그녀의 피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며 6월에 폭설이 내리고 3년간 가뭄이 일어났다. 본 곡은 연민과 순수, 미와 암흑을 노래하는 동시에 모든 희생자를 위해 부르는 비가인 셈이다.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첼리스트인 사라 산암브로지오와 네 명의 퍼커셔니스트(타악기 연주자)가 합을 맞췄다. 독특한 타악기를 사용해 이색적인 리듬을 더했다. 북, 징 등의 일반적인 타악기뿐 아니라 돌과 캔을 흔드는 소리까지 악기로 사용되었다. 특히나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종이를 찢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다 보면 아래에서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악보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악의 중간과 곡을 마칠 때즈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종이를 갑작스레 찢어 주의를 끄는 것이다.

 

타악기와 첼로의 대립과 연합이 반복되는 식으로 음악이 흘러갔는데 난타 공연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서로 이리저리 탐색하더니 갑자기 음악을 주고받다가 또다시 서로를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치는 순서와 타이밍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박자를 쪼개고 쪼개 작은 호흡까지도 서로에게 맞춘 것이 느껴졌다.

 


 

피아졸라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두 번째 곡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로 여름, 가을, 겨울, 봄을 연주했다. 사계절이라 하면 봄부터 시작할 거란 일반적인 추측과 달리 콘서트의 이름을 다시 한번 짚어주듯 ‘지금 여기’의 여름으로부터 경쾌하게 시작했다.


피아졸라의 사계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비발디의 ‘사계’와는 달리 처음부터 조곡(연결된 연주곡)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한다. 오히려 따로 각 곡이 만들어진 후에 러시아 작곡가에 의해 4악장의 곡으로 묶이게 된 것. 실제 만들어진 순서가 여름부터였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그곳에 있는 항구의 사계절을 강렬한 탱고 선율을 빌어 표현했다.


세종솔로이스츠는 미국의 CNN이 ‘세계 최고 앙상블 중 하나’라고 극찬한 국내 악단이다. 이와 그래미 노미네이션에 빛나는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가 합을 맞췄다.


스무 명의 호흡이 어우러져 첫 곡만큼 특별했다. 더블 베이스의 옆구리를 쳐 박자를 맞추며 시작된 음악은 강하게 이끄는 바이올린 소리로 점차 옮겨갔다. 앙상블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동안 정말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듯한 필립 퀸트의 연주가 귀를 사로잡았다. 번갈아 가며 연주하는 현악기들의 소리는 대단했다.


곡마다 임팩트 포인트가 있다고 느껴졌던 건 곡이 끝나갈 무렵 호흡이 빨라지더니 태엽을 감는 소리를 내며 곡을 마쳤다. 얼핏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는 듯한 소리이기도 했다. 곡의 마지막에 이목을 집중시켜 넋을 놓고 음악에 빠져 있던 관객들을 현실로 다시 끌어오는 마침표였다.

 

 

 

차이콥스키 | ‘현을 위한 세레나데’


 

인터미션 후 시작된 세 번째 곡은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로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노래였다. 기승을 부리던 솔로 바이올린이 사라지고 세종솔로이스츠의 노련한 합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작품의 1악장은 ‘소나티네 형식의 소품’으로 벅찬 느낌을 자아냈다. 활의 움직임들이 마치 하나의 장기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2악장은 보통 빠르기의 ‘왈츠’로, 어쩐지 소곤소곤 서로 주고받다가 다정하게 춤추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셋 넷씩 짝지어서 연주할 때는 그 우아한 선율에 마음마저 따라가는 것 같았다.

 

느리고 우울한 ‘엘레지’가 3악장이었는데 상당히 부드럽고 여리게 진행되었다. 현이 주는 아득하고 선명한 슬픔이었다. 4악장의 ‘피날레’는 초반엔 느렸다가 빠르고 생생하게 바뀌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박자를 아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쪼개기의 연속이었다.

 

*


이렇게 모든 곡이 끝나자 앙코르를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들어왔다 나가며 인사를 하던 연주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브람스의 ‘왈츠’를 연주했다. 익숙한 선율과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경쾌한 움직임에 관객들도 함께 즐겼던 시간이었다.


힉엣눙크 페스티벌은 9월 6일로 끝이 났지만,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움을 불어 넣으려는 다양한 시도는 절대 잊히지 않을 듯하다. 앞으로도 진행될 여러 연주회와 기분좋게 낯선 음악을 기대한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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