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런 이유 없이 좋은 영화가 있다 [영화]

영화, <운디네>
글 입력 2022.08.2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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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홍보하는 게 아니라, 가끔 네이버 시리즈온 무료 영화 카테고리에서 괜찮은 영화들을 건질 때가 있다.

 

이번에는 독일 영화인 <운디네>가 그랬다. 항상 국내, 미국, 영국 영화를 주로 봤고 유럽 영화라고 해봤자 프랑스, 가끔가다 독일, 그것도 대부분 나치 얘기를 다룬 영화라서 이렇게 현대 배경인 독일 영화는 거의 처음이었다.


보면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감상평에 그대로 나타나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운디네에 대해 찾아보지 않고 영화를 봤다면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야?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운디네는 19세기 독일 문학에 등장하는 물의 정령으로, 인간과 결혼하면 인간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이 물가에서 운디네를 모욕한다면 인간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되고 남편이 다른 사람과 재혼까지 한다면 영혼을 잃어버린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남편을 죽이고 다시 물로 돌아가야 한다.


물의 정령이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옛날부터 흥미로운 소재였나 보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가 떠오르기도 하고 인어와 사랑에 빠진 인간 남자가 인어와 키스를 한 후 바다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돼서 인어와 함께 바다로 들어간 <스플래쉬>, 반대로 물에서 사는 생명체와 사랑에 빠진 인간 여성이 아가미가 생겨 바다에서 함께 할 수 있게 된 <셰이프 오브 워터> 등등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의 원조가 운디네였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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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와 도시개발 전문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관광 가이드인 운디네의 강의를 들은 산업 잠수사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와 전 연인인 요하네스가 자주 가던 카페를 다시 찾은 운디네에게 호감을 드러낸다.

 

카페에 있던 큰 어항 속 잠수사 장식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던 운디네는 크리스토프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크리스토프는 거절의 의사로 생각하고 미안하다는 듯 말하며 뒷걸음을 치는데 카페가 협소해 어항이 있는 장식장과 부딪힌다.

 

그때 어항 속 물이 흔들리는 것을 본 운디네는 곧 어항이 깨질 걸 알아차리고 크리스토프를 잡고 옆으로 넘어진다.

 

결국 어항은 깨지고 크리스토프와 운디네는 물을 맞고 깨진 어항 파편들 사이로 넘어진다. 작은 파편 두어 개가 운디네의 몸에 박힌 걸 빼주면서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가며 웃는 여유까지 부리는 둘의 모습은 전형적인 예술영화 장치 그 자체였다.


운디네 설화를 미리 찾아보고 감상했음에도 구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사랑에 빠진 걸까. 어항이 깨진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둘의 관계는 운디네 설화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납득하고 봤다. 그런데 중간에 등장하는 거대한 메기는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좋은 영화라고 쓴 제목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것 같겠지만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영화의 분위기, 특히 홍채를 소재로 한 영화 <아이 오리진스>를 떠올리게 하는 오묘한 홍채, 대충 묶은 머리, 딱딱하고 거칠다고 알려진 독일어를 신비로울 정도로 조곤조곤하게 말하던 파울라 베어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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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도 딱히 없고 그마저도 클래식에 맥락 없이 뚝 끊기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 약간 공포스럽기도 하면서 뭐라 설명할 수 없이 그냥 좋았다.

 

후반부에 운디네가 자신의 운명대로 자신을 배신한 요하네스를 죽이고 온몸이 다 젖은 채로 맨발로 호숫가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운디네가 다시 물로 돌아갔을 때 뇌사상태에서 운디네의 이름을 외치며 일어난 크리스토프까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서 목발을 짚으면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미친 듯이 운디네를 찾던 크리스토프는 2년 후 동료 잠수사와 아기까지 가지지만 여전히 운디네를 잊지 못해 새벽에 운디네와 함께 수영을 했던 호숫가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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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안에서 크리스토프는 운디네를 봤지만 혼자 물에서 나온 크리스토프는 처음 운디네를 만난 날 어항 안에 있던 잠수사 장식을 손에 쥐고 이상함을 눈치채고 따라 나온 파트너를 다독이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물처럼 푸르스름한 새벽을 배경으로 끝난 영화는 평생 운디네를 잊으며 살아갈 수 없는 크리스토프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헤어질 결심>의 엔딩이 생각나기도 하면서 계속 곱씹게 되는, 그런 영화였다.

 

어쩌다 보게 된 영화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또 이런 보석 같은 영화를 발견할 수 있길.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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