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춤의 맥 [공연]

과거와 현재의 사이에서 계승한다는 것
글 입력 2024.01.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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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2월 22일 양재 M극장에서 무용공연 <한국춤의 맥>을 관람했다. 보는 내내 감탄이 이어졌던 연말 선물 같은 공연이었다.

 

 
이 작업은 오랜 기간 한국 무용을 전공해온 안무자 민희정이 전통춤을 배우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친 불편함의 감각을 포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민희정은 '나의 뿌리'로 느껴지는 한국 전통춤의 깊은 정서, 그리고 이에 동반되는 경계인의 감각에 대해 스스로 질문한다. 한국무용만을 오랜 시간 전공한 안무자의 몸에 다양한 장르의 춤이 들어오는 경험을 하며 느꼈던 새로운 신체 경험들이, 그동안 몸에 쌓여온 전통춤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각을 부여한다. 동시대에서 전통을 말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옛 것을 이어간다'라는 의미로 이야기한다. 민희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무용수들이 옛것과 옛춤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으며, 전통의 어떤 측면을 이어가고 동시에 변화시켜나가고 있는지 묻는다. 또한 그렇다면 '내가 출 수 있는 전통춤'과 '내가 추고 싶은 전통춤'이란 무엇인지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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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춤의 맥>은 한국 무용 전공자인 민희정 안무가의 고민을 중심으로 세 명의 무용수가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안무가와 마찬가지로 하지혜, 박지수, 임예지 무용수는 한국무용을 해오면서도 다양한 장르의 춤을 마주하면서 몸과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한국 무용을 하는 무용수로 겪어온 전통춤, 다양한 움직임이 누적된 몸을 지닌 무용수로서의 정체성 등 그들의 고민은 동시대 무용수로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보였다.


이들은 한국 무용의 전통과 개념을 쉽게 전달하면서도, 그들이 겪은 고민과 생각을 흥미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전개했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말하는 방식도 택했다. 한국춤에 대한 설명은 개인의 서사를 통해 물 흐르는 듯 전개되었으며 이들의 발화는 연극에서의 대사처럼 호흡과 발성, 표정 등 많은 부분이 완벽에 가깝게 느껴졌다. 말하는 동시에 그것을 표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을 섞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소품도 적재적소에 활용되었다. 가장 상징적이라고 생각했던 소품은 짚으로 엮인 대형 돗자리였다. 큰 돗자리는 무용수들이 개인의 서사를 펼쳐놓는 새로운 공간이 되기도 했고, 춤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환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에서 한 무용수가 돗자리를 끌고 나온다. 그녀는 조용한 가운데 돗자리를 펼치고 그 위에 서서 입을 연다.


”한국춤의 맥.”


돗자리는 또 다른 공간이 되어 새로운 장을 연다. 동시에 무용수는 또렷한 목소리와 안정감 있는 호흡으로 움직임을 이어나간다. 전통적인 것을 계승하는 한국춤. 그렇다면 전통이란 무엇일까. 그녀는 정의를 읊고, 전통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직접 발화하며 움직임으로 보였다.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전체적인 맥락을 보이는 상징적인 부분이었다. 이후로 돗자리는 여러 공간으로 변화하며 그곳에서 세 무용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된다.


마네킹처럼 서있는 한 사람. 두 사람은 인형처럼 서 있는 그녀의 몸에 한복을 입힌다. 속치마부터 저고리, 버선 하나까지 전부. 전통의상을 고루 갖춘 무용수 머리 위로 책받침이 얹힌다. 그러자 그녀는 피그말리온의 조각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평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한국무용의 기본동작이 이어진다. 넓은 치맛자락 안으로 숨겨진 발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그 춤은 한복에 의해 더욱 크고 신비롭게 보였다. 한편으로 그 무용수의 움직임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처럼 딱딱해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그녀의 옆으로 두 명의 무용수가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고 상의는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이들 또한 머리 위에 얇은 책을 얹고 같은 춤을 이어나간다. 돗자리 위에서 어우러지는 세 명의 무용수. 흰색의 한복과 검정, 빨강, 파랑에서 태극기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복을 입은 무용수는 돗자리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그 순간 무용수의 얼굴에서는 봉인이 해제된 것처럼 웃음기가 사라진다. 그녀는 진절머리가 난 듯 옷을 하나하나 벗어 던지고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돗자리 위 빨간 바지를 입은 여자가 혼자 남았다. 그녀는 돗자리를 접어 다양한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한국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15년간 현대무용을 했다. 자신의 몸에 쌓인 다양한 춤의 역사를 설명하며 한국춤에서 사용되는 8자 호흡을 소개하고 방식의 핵심을 짚는다.


파란 바지를 입고 퇴장했던 남자는 갓과 두루마기를 입고 나와 춤을 춘다. 흥과 멋에 대해 고민하는 듯하는 무용수. 그는 자신의 연습 과정을 보여준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것처럼 옷을 벗어 가지런히 두더니 스스로에게 말한다.

 

“너의 춤을 춰야지.”

 

그러고는 자리를 빠져나간다.


다시 민희정 안무가가 등장했다. 그녀는 붓으로 호흡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과감하게 붓을 몸에 대고 그리며 호흡과 함께 공기의 흐름을 따라간다. 거친 붓의 흔적은 호흡의 횟수에 따라 겹치고 또 겹친다. 흰옷은 검정 획으로 가득 찬다. 너울의 과정과 동그라미. 그렇게 붓 퍼포먼스는 공연의 정점을 찍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모든 무용수가 나와 돗자리를 다시 둘둘 말아 옮기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역사를 지닌 네 무용수가 돗자리를 옮긴다. 그들이 천천히 커다란 돗자리를 옮기는 과정은 마치 대를 잇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대 무용수들이 이어나가는 한국춤의 맥. 공연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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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춤의 맥>을 감상하면서 이전에는 들여다보지 않았던 한국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무용수들의 춤과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공고히 쌓아온 춤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안무가가 고민했던 ‘내가 출 수 있는 전통춤’과 ‘출 수 있는 전통춤’은 공연 속 다양한 연출과 퍼포먼스로 묘사되었다. 덕분에 그들의 진심은 아름다우면서도 완전하게 전달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아 인상 깊었고, 친절하여 공감할 수 있었던 공연. 2023년 마지막에 좋은 기운과 영감을 얻는 시간이었다. <한국춤의 맥>을 만드신 모든 분께 감사의 박수를 전한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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