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른쪽 날개뼈 위의 고추잠자리 [사람]

글 입력 2022.08.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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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른쪽 날개뼈 위에는 고추잠자리가 그려져 있다. 타투가 오랜 시간 가져온 부정적 이미지 탓에 가족들 몰래 비밀리에 추진했다. 다행히도 평상시 잘 드러나지 않는 부위에 타투를 새겼기 때문에,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활동적으로 팔을 움직일 때마다 잠자리가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면 꼭 타투를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삶에 있어서 중요시 여기는 가치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타투로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한테 나를 설명할 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몇 살이고 생김새는 어떠한지 등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뭔가 허전하다. 인간은 이미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지만, 선천적으로 주어진 신체에 나의 의지로 특별한 메시지를 새기고 싶은 욕구는 어쩔 수 없나보다.

 

도안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꼭 의미 있는 도안을 몸에 새기고 싶었다. 단순히 미관상 보기 좋은 디자인은 금방 질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레터링 타투를 하자니, 문자에 담긴 직관적 메시지가 나를 단정 짓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잠자리 도안을 가져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추잠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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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날개뼈 위의 고추잠자리에게는 이름이 있다. 바로 '꿈쟁이'다. 꿈쟁이는 오랫동안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동화, 박성배의 <고추잠자리 꿈쟁이의 흔적>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작품을 접했던초등학교 시절엔 국어 과목이 말듣쓰, 읽기 교재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던 읽기 교재에서 해당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화는 여러 곤충과 새의 쉼터와 같은 존재인 고목나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어느 날 고목나무의 나뭇가지로 날아든 잠자리는 자신을 꿈쟁이라고 불러달라 말한다. 이름이 있어야 자신이 살다 간 흔적을 세상에 남길 수 있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는 흔적을 남기겠다는 집념으로 교실에 들어가 글을 배우려하지만, 곤충이 마냥 신기한 학생들에 의해 봉변을 당할 뻔한다. 언제는 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야심을 드러내 다른 고추잠자리들로부터 비웃음을 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고목나무 곁에 다시 찾아온 꿈쟁이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달에 다녀왔냐는 고목나무의 질문에, 꿈쟁이는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달에는 닿을 수 없었다며 실패를 고백한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어딘가 초연해보이는 꿈쟁이를 조우한 고목나무는 그에게 흔적을 남겼냐고 질문한다. 꿈쟁이는 세상에 자기가 남긴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사라지는 것이 진정 세상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지 못한 답변을 한다. 그리곤 순식간에 날아든 제비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꿈쟁이의 허무한 죽음은 당시의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행복한 결말이나 가슴이 쓰리는 슬픈 결말은 접해봤어도, 야망이 넘치던 존재가 한순간 허무하게 사라지는 결말은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결말과 동시에 꿈쟁이가 남겼던 말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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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꿈쟁이와 비슷한 야망을 가지며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매번 학급이 바뀔 때마다 자기소개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이름과 취미 등 자신에 관한 것을 돌아가는 익숙하면서도 매번 적응이 되지 않는 시간 말이다.

 

나는 다른 친구들이 장래희망을 말할 때 특히 귀를 쫑긋거리곤 했다. 과학자, 대통령, 화가처럼 다양한 직업들이 난무하던 가운데, 어느 한 친구가 자기의 장래희망이 직장인이라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직장인은 내게 너무도 진부하고 평범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가 사회적으로 각광받는 사람이 된 미래를 상상한다. 반드시 유명인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정신을 놓고 공상을 하다보면 문득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근거 없이 항상 돈과 명예가 확실하게 보장된 삶을 살거란 막연한 확신은 타투로 나를 조금 더 특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데에 도움을 줄 거란 믿음과 어쩐지 닮아 보인다.

 

그런데 세상을 상대로 주인공이 될거란 믿음은 모두가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말과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는 채 출발하는 것과 자신이 고유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출발하는 것은 비슷해 보여도 천차만별이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주는 것이 진정 세상을 위한 일이라는 꿈쟁이의 답변은 어떤 삶을 살아가면 좋은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꿈은 크면 클수록 무조건 대단한 것이라고 단정짓는 태도를 지양하게 되었다. 원대한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단순히 특별한 인간이 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처음으로 나의 태도를 성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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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쟁이는 세상에 자신의 표시를 남기는 건 실패했지만, 고목나무의 마음에는 그리움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시간이 흐른 뒤에 꿈쟁이가 앉았던 자리에는 그를 닮은 돌연변이 단풍잎이 자라면서 동화는 마무리가 된다.

 

나의 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겼고, 또 남기고 있다. 그곳엔 기쁘고 감사한 흔적도 있고, 원망스럽고 미운 흔적도 있다. 그립고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흔적도 있다. 비단 사람들만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다. 꿈쟁이의 이야기도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흔히 '인생작'이라고 표현하는 음반이나 영화들 모두 삶에 있어서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흔적을 남겼다.

 

내 마음속의 흔적들은 곧 나도 타인에게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세상을 향해 흔적을 남기려던 꿈쟁이의 태도보다, 고목나무의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는 두 생명체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세상을 복잡하게만 만드는 흔적을 남기는 데 열중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에 뚜렷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삶을 살아가고 싶다. 동시에 뚜렷한 흔적이 반드시 선한 흔적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타인의 마음에 고의적으로 생채기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겠다는 다짐에서다.

 

내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들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글들 중 하나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쓰는 걸 지양하고자 한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져, 언젠가 무럭무럭 자라날지도 모를 거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로 세심하게 글을 써야지 싶다.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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