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맥시멀 리스트의 미니멀 짐싸기

생각과 마음을 덜어내는 방법
글 입력 2022.08.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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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캐리어에 짐을 쌌다. 여행이라기보단 일에 가까운 떠남이지만, 거의 3년 만에 캐리어를 꺼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24인치 캐리어를 골랐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여행 경험을 떠올려 봤을 때 일주일 동안 사용하기에 적당한 사이즈이기도 했고, 짐을 모두 쌌을 때 스스로 감당하기 알맞은 무게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행들과 함께 사용할 공동의 짐을 함께 나눠서 목적지로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기내 수화물은 7kg, 위탁 수화물을 13kg으로 짐을 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가능한 무게는 기내 수화물 7kg, 위탁 수화물 20kg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자칭 맥시멀 리스트(Maximalist)라고 여기며 살아온 나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굳이 내가 맥시멀 리스트가 된 이유를 변명해 보자면, 한번 마음을 준 것에 대한 미련이 남들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끼고 있는 은반지는 대학교 동기와 인사동 쌈지길에 갔다가 선물 받은 것이다. 그때부터 착용한 것이 이제는 거의 문신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또 다른 예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손글씨 편지들이 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주었던 편지들을 아직도 서랍 속에 가지고 있다. 물론 특별히 보존이 잘 될 만큼 정리를 해 둔 것은 아니지만, 가끔 꺼내서  읽어볼 수 있을 정도로 잘 모아서 서랍 속에 고이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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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한번 내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되면 아주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게 어떤 무엇이든 관계없이. 한번 좋다고 내뱉은 말에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어서 때로는 버려야 할 것들도 버리지 못한 채 혼자 끌어안고 낑낑대며 아파하고, 아쉬워하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싫은 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미련은 칼같이 끊어내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떠나보낼 때는 최소 두 배 이상의 시간과 체력 그리고 감정 소모가 필요하니 버리지 않는 방법을 택하며 더욱 맥시멀 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중한 것들은 늘어가고 추억이 쌓여가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캐리어에 짐을 쌀 때처럼 꼭 필요한 것들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울고불고 매달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헤어지고 버려야만 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는 일부러 갖은 의미 부여를 해가며 어떻게든 캐리어의 한구석에 꾸깃꾸깃 물건을 넣으려는 나를 보며 왠지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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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다가오고 이제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우선 여태까지 캐리어에 담았던 모든 물건들을 다 바닥에 쏟았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머릿속으로 여행 일정을 복기했다. 이후 다시 처음부터 짐을 싸면서 이번에는 '혹시 모르니까'하며 챙겼던 것들을 모두 제외했다. 그랬더니 드디어 원하던 무게를 맞출 수 있게 됐다.

 

확연하게 줄어든 짐을 바라보면서 과연 내 생각과 마음도 '혹시 모르니까' 하는 부분들을 정리하면 가벼워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MBTI 유형 속 'N 중의 N'으로써 가끔은 억지로라도 생각이 멈췄으면 할 때가 있는 나이기에 가벼워진 짐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도대체 잘 모르겠다. 생각과 마음을 덜어내는 좋은 방법을 말이다. 다만, 내가 찾은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것뿐이라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그저 내 생각과 마음이 이 글이 끝나면 미니멀해진 짐처럼 한결 가벼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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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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