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제든지 이별할 수 있다 [사람]

글 입력 2022.07.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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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구교환'의 생각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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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꿈의 제인’과 ‘메기’를 비롯하여 다양하고 독특한 작품을 연기한 배우 구교환의 소개를 빼놓을 수 없다.

 

첫인상은 트랜스젠더 제인이었다. 예민할 것 같은 마른 몸과 특이한 목소리. 단순히 탐미적 관심에서 그칠 것이라 생각했지만, 운이 좋게도 영화 '반도' 시사회에서 가까이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잇는 장난끼 가득한 웃음소리. 서대위의 강력한 아우라와 달리 수줍은 얼굴로 관객 앞에 서 있었다.

 

평소 그의 팬임을 자처 해온 나는 인터뷰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그의 사색 깊은 진중함에 뿌리내려 보았다.

 

 

내가 내년에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도 있지 않나. 함몰되지 않으려고 계속 스스로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 난 너무 영화를 사랑하지만 언제든지 우린 이별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상실감을 갖지 말자”라고 계속 나를 훈련시킨다.

(중간 생략)

내가 공부한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을 낭비한 걸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씨네 21> 발췌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꿈이 바뀌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대사를 빌려 구교환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상실로 이어지는 삶의 가치를 짚어주며 낭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에 죽고 영화에 사는 것 같았던 배우 역시 변화하는 미래에 대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자만하지 말되, 자신하기를.

 

그가 표현한 ‘함몰’이라는 단어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리는 감상을 받는다. 모래성처럼 쌓아올린 커리어들이 집채만 한 파도에 잡아먹혀 영영 묻혀버리는 상상을 했다.


나 역시 함몰되지 않으려 한다. 자괴감과 우울로 이어지는 결과론적 삶에서 벗어나 무너져내리지 않기 위해 탄탄한 지대를 만들고 있다. 함몰되는 것은 쌓아올린 커리어와 노력들이 아니다. 그것들이 흘러가도록 두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 기초공사를 탄탄히 해야 했다.

 

 

 

나는 언제든 마음이 바뀔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지난 2021년은 내게 시사하는 점이 많은 한 해였다. 오랫동안 종사 해온 직장을 그만두었고, 평생 해온 전공 공부를 포기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생계유지로서의 수단으로도 두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기 때문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연구소로 나아갔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항상 운이 좋았었다. 친구들은 노력이라는 말로 바꾸어 축하해 주었지만, 내게 노력은 마음 깊은 곳에 몰래 두고 혼자 보고 싶은 열정의 산물이었다. 겸손 보다 오만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던 거야,라고 이야기하면 내 노력은 한 번도 세상에 나와본 적 없는 것이 되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기에, 머리가 비상하여 모든 일이 술술 풀린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던 나는 어째서 다만 운이 좋았던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구교환의 영화는 짧은 보폭으로 쉼 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꿈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라고.


내게 꿈은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장기전 같다. 빠르게 변하는 요즘은 쉽게 무력감에 빠질 수 있기에 장기적 투자와 목표 설정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실패 확률을 차치하고 용기를 내기엔 현실은 버거운 것이다. 나 역시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안정적인 생활을 잃고 꿈만 좇는 것은 허황된 일이 아닐까 하는.

 

나는 어느새 꿈을 좇는 것이 부끄러운 나이가 된 것이다. 현실에 타협하여 살아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삶에 대한 유동적 태도는 자식의 철 없음으로 취급되기 마련이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느껴졌지만 이내 답을 찾아낼 것이다. 막연하게 꿈에 대해 떠드는 것보다 변화에 대응할 힘을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단계적 성장의 기반을 닦아주기도 할 테니.

 

여전히 꿈으로 가득한 내 모습을 뒤돌아보았다. 다른 일에 흥미를 품었던 날에는 남들은 다 해내는 끈기가 내게는 왜 없는지,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러나 나는 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넘쳐나는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깨달음의 끝에는 ‘후회하지 않을 결심’이 있었다. 도전은 무한하고 기회는 한 번 뿐이었으니, 단지 변화가 무서워서 평생의 후회로 남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놓아도 후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나의 결심이었다.

 

 

 

함몰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영화한테 대시한다는 생각으로 만든다는 배우 구교환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어느 정도의 휴식을 갖게 된 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원초적인 대시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경우는 글을 쓰는 것이다. 과학소녀에서 문학소녀가 되기까지 글자를 수시로 마주 보고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다. 한 주를 마무리하며 적어 내려갔던 일기 속에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불안은 접어 두고 긍정적인 마음만을 껴안은 채로, 지인들은 점차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내 모습을 대견해하며 응원했다. 용기를 낸 이후부터 나는 노력하고 있었다. 백팔십도 바뀐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보내주는 응원들을 자양분 삼아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내 꿈의 1호 팬은 나 뿐이라는 걸. 

 

꿈은 변화했다.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에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던 열정과 해내고야 말겠다는 욕심은 원동력이 되었다. 쉽게 변하는 마음이 아니지 않겠나. 나의 꿈은 마음의 방을 여러 곳 만들어 두었다.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도록, 무료 개방으로. 한 가지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면 함몰되어 휩쓸려 가게 될 것이다. 온전히 마음을 쏟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그물망을 펼쳐 꿈을 잡으려는 것 뿐이다.

 

닿지 않는 지평선을 향해 묵묵히 헤엄쳐 나가던 방향을 달리해도 나는 여전히 바다 안에 있었다. 내게 찾아온 숱한 기회와 노력들이 막대한 행운이라면, 파도에 몸을 맡기고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된 삶에서 가장 먼저 성취를 안겨주었던 일을 묻는다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일 테다. 나를 일으켜 주었던 꿈. 나는 만화 속 대사처럼 외치겠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슬램덩크 강백호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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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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