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이라는 정원

글 입력 2022.07.0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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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이론가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주장했다. 정보의 형식인 미디어와 정보의 내용인 메시지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 영향을 미치며 정보를 이룬다는 것, 그리하여 미디어의 형태가 곧 전달되는 메시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는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형식적 특징에서도 비롯한다. 같은 말이더라도 그것이 입으로 발화될 때와 글로 쓰일 때 각각 다르게 발신되고 수신된다. 마셜 맥루언은 이러한 이론을 기반으로 활자 중심의 인쇄 문화로부터 TV, 라디오 등 새로운 매체 문화로의 전환이 인간이 정보를 만들어내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변화하고 확장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전망하였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대 매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 중 하나가 된 이 주장에 상당히 공감한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도구를 활용하여 낙서 같은 글을 쓰면서도 같은 뿌리에서 난 생각이 다른 모양으로 표현되는 것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던 나는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의 배열을 만들었고 거기서 또 다른 생각으로 향할 수 있었다. 마침표를 찍으면 그다음에 자연히 올 새로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근거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또한 새로운 생각을 만났다. 내게 있어 글이란 바깥의 내용물을 안쪽으로 담는 그릇이라기보다 씨앗을 심으면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생명체가 자라나는 화분 같았다. 마셜 맥루언의 전망처럼 정말 미디어의 발달이 인간을 확장했는지는 몰라도, 나의 삶 저변은 글이라는 매체와의 만남을 통해 훨씬 드넓어졌다.

 

이곳에서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글을 쓴 것은 화분보다는 더 커다란, 말하자면 정원 같은 곳에서 나를 일구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씨앗을 심듯 글감과 그것을 서술할 맥락을 결정했고, 물을 주듯 그것을 뒷받침할 정보를 더해나갔으며,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글이 읽히고 가닿길 소망했다. 정원은 다양한 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거닐 수 있어 더욱 풍요로웠다. 자라나고 때로는 시들며 작열하는 태양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작은 숲이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글이라는 정원에서만 자라날 수 있는 나무들이 가득하다. 여태까지 그곳에 어떤 것을 심어왔고 어떤 열매를 기다리고 있는지, 정원을 밝혀준 나그네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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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언급했듯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이 취미였다. 처음 쓰고 싶은 글을 쓴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훈민워드’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공상과학 소설을 썼다. 재밌게 읽었던 소설과 만화를 이것저것 짜깁기한 엉터리 이야기였지만 조물주가 된 듯이 나만의 세계를 원하는 대로 구축하는 재미에 완전히 몰입하여 하교 후에 집에 도착하면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문장을 더해나갔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면 느껴지는 고요한 자유와 선명히 기록되는 궤적이 좋았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잠금을 걸어놓은 탓에 오류가 발생해 파일이 날아간 이후로 그 소설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글쓰기였다.

 

고학년이 되면 여러 작문 대회에 참가하고 감상문을 쓰는 등의 과정을 통해 긴 글을 논술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그 일환으로 쓰인 나의 글을 선생님이 학급 친구들에게 읽어준 경험은 지금까지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내 글이, 그것도 타인에 의해 여럿에게 읽힌 최초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한글을 폄하하고 신조어를 남용하는 세태를 지적하는, 온라인 하위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하던 당시 흔히 쓰이던 논조의 글이었다. 당시 방영했던 ‘상상플러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 또래의 흥미를 산 것을 좋게 평가하신 것 같았다. 친구들은 글을 읽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집중했고 몇몇은 끄덕였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읽히는 것을 두려워했던 내가 글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나의 영향력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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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반대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나는 아날로그에 더 가까워졌다. 대학 입시를 위해 논술 학원에 다니면서 컴퓨터가 아니라 수기로 긴 글을 적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조금 특이했다. 실제 논술 시험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모범 답안에 가깝도록 정석적인 답을 적어내기보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독창적인 글을 완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유독 손이 느린 나는 글을 완성하는데 더 오래 걸렸다. 오타를 금방 지울 수 있는 컴퓨터와 달리 한 획 한 획 신중해야 하는 수기의 특성상 더 그러했다. 흑연이 묻은 손과 마찰 때문에 뜨거워진 지우개 때문에 글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키보드가 아닌 연필이라는 매체로 글을 쓰는 것은 떠오르는 생각을 오랜 시간에 걸쳐 커다란 화폭에 그려나가는 것 같았다. 따라서 글의 내용뿐 아니라 글자의 모양, 운율, 전체적인 짜임새, 그리고 지우개 가루를 털어낸 시험지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 역시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생각을 더욱 정교한 형태로 표현하는 글쓰기라는 활동이 왠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배운 논술로 대학을 진학한 나는 자유롭게 글을 썼다. 어떤 수업을 듣든 주어지는 작문 과제에 신이 났고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의 감상을 SNS에 적으며 소소하게 따르는 반응에 즐거워했다. 글이라는 도구는 부유하는 생각을 활자의 형태로 새김으로써 그것을 들리거나 읽힐 수 있는 모습으로 완성한다. 그렇게 완성된 생각들이 더 넓은 공간으로 울려 퍼져 저 너머의 아득한 세계와도 소통하기를 바랐다. 그러던 중 이곳, 아트인사이트라는 정원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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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제한 없이, 성적도 매겨지지 않는 글을 쓰고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플랫폼을 대표하는 ‘문화는 소통이다’라는 슬로건이었다. 사실, 글을 쓰는 과정은 고립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글은 남들에게 읽히는 것보다 혼자 쓰고 묻어두는 편이 익숙했고, 작가란 어두컴컴한 독방에서 밤이야 낮이야 글을 쓰는 모습으로 상상되었다. 그러나 혼자 쓰는 글에는 필연적인 한계가 따랐다. 듣는 이가 없으니 방향을 잃기 마련이었고 쉽게 자가당착에 빠졌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글은 누군가와 연결되거나 충돌함으로써 그제야 생명력을 가졌다. 소통을 목표로 쓰이기 시작한 글은 닿아야 하는 곳이 있기에 보다 확실한 방향을 가지고 뻗어 나갔다.

 

아트인사이트에서는 가장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글을 쓴 것 같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든 소재를 고민하고 무엇이든 사용하여 기록해야 했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했고, 공책에는 문장의 형태로 쉽게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낙서처럼 적으며 시각화했다. 이렇게 바깥에 나온 생각의 파편들을 PC를 이용해 하나의 글로 종합하였다. 신기하게도 각각의 매체를 통해 적히는 글의 내용이 매우 달랐다. 휴대폰을 쓰는 나, 공책을 쓰는 나, PC를 쓰는 나는 각 매체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따라 다른 성격의 문장을 출력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글을 쓰는 것은 타인과의 소통뿐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나 자신과 소통하는 경험이기도 했으며, 그 사이 연속성을 파악하여 생각을 맥락화하고 구체화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도구도 그렇지만 아트인사이트라는 공간 자체가 중요한 매체처럼 여겨졌다. 여러 사람이 모여 정보의 교환과 순환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했다. 글이 단시간에 불특정 다수에게 읽히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바로 그 이유로 더욱 책임 있는 글을 쓰게 되었다.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도전과 지지 않았을 부담을 잔뜩 가지게 하는 매체였다. 가장 꼿꼿하고 긴장된 자세로 글을 썼다. 이력서처럼 단지 나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시작하여 결국에는 타인의 세계에 다가가는 글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명동 한복판에 떨어져도 부끄럽지 않은 글’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지 널리 퍼져 나가는 글이 아니라, 퍼져 나갈 모든 공간을 미리 인지하고 파악한 끝에 쓰인 떳떳한 글이었다. 마셜 맥루언이 예언한 인간의 확장이 정말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면, 이러한 맥락의 변화가 아닐까? 드넓은 공론장 한가운데서도 최대한 떳떳하게 쓰기 위해 고민하고 돌파하는 모든 과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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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용기를 주었다. 쓰고 나서 후회한 글도 있고 악성 댓글 세례를 받은 적도 있지만, 그것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공감과 위로의 반응은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중 자신이 위로를 받았다는 댓글을 보았을 땐 평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나먼 줄만 알았던 타인의 세계가 기꺼이 다가와 손을 잡아준 순간이었다. 작고 약한 목소리도 소통과 대화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음을 느꼈다. 혼자인 것, 잘 보이지 않는 것, 미약한 것을 바로 그 이유로 낙오시키는 어떤 흐름에 맞설 수 있다는 실증적인 믿음이 생겼다. 약자라는 틀에 갇혀 누락된 정체성을 호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를 연결하는 움직임은 나 역시도 연결되게 했다. 그렇게 세상에 수없이 참견하고 개입한 것이 어느새 4년이 되었다.

 

강산이 변하거나 엄청난 기술적 발달이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뉴스를 보면 한숨이 나오고 나 역시 상상했던 멋진 모습은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지만, 글을 쓰는 동안 아주 미세한 변화들을 포착하였고 그렇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는 내가 되었다. 예상치도 못한 만남으로 나와 세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여 불가능이 아닌 미지의 영역을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이 정원에서 마침내 맺은 열매이다. 나는 이제 쓰고 읽히는 데 두렵지 않다. 글이라는 매체가 이루어낸 수많은 매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들러줌으로써, 다듬어줌으로써, 때론 새로운 씨앗을 심어줌으로써 정원을 밝혀준 나그네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함께 가꾼 이 정원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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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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