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어른을 사로잡는 그림책의 힘, 전은주 대표의 세계

그림책을 사랑하는 전은주 대표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글 입력 2022.05.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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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CHAPTER 1. 안녕하세요, 그림책을 사랑하는 전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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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은주입니다. 그림책 출판사 대표이자 그림책 전문 잡지의 발행인입니다. 그림책과 관련된 책들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책 협회 부회장을 하고 있고, 네이버 제이 그림책 포럼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반갑습니다!



- 그림책 잡지와 출판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그림책과 관련된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방송 작가였거든요. 그런데 딸이 유독 주의 집중을 안 하는 편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아이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재밌는 책을 읽어주거나 재미있는 놀이를 했고, 그 과정을 계속 블로그에 기록을 했었어요. 그렇게 기록하면서 그림책을 찾아 읽는 과정에서 그림책이 아이를 양육하는 기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 인생에 대한 질문들이 여기에 굉장히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더불어 블로그 기록들을 보고 출판사와 언론사들에서 연락이 많이 오고 강의를 시작하며 그림책과 연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 블루밍 제이 출판사에서 <파리의 작은 인어>가 출간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파리의 작은 인어>는 파리 분수대에서 사는 인어가 다른 아이의 소원을 훔쳐 바다로 가는 내용이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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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글 그림책 작가님께서 이 책에 대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주셨어요. 조영글 작가님께서는 이 책 속의 인어가 창작자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더라고요.하나의 목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그것을 잡고 끝까지 가는 힘이 이 그림책 속 인어에게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인어는 굉장히 크리에이터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또한, 여기에 동서양의 가치관이 두 개가 같이 들어간다고도 하셨죠.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휘어잡는 인어의 마인드는 굉장히 서양적인 가치관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이 동화책에서는 인어에게 소원을 뺏긴 이 아이를 불쌍하게 표현하지 않아요. 책을 읽는 독자는 ‘저 아이는 어떡하지? 저 아이는 소원을 빌 기회를 놓쳤네’ 이렇게 느낄 수 있지만, 이 책의 마지막 구절에는 “네가 그 동전을 던지고 나서 소원이 떠오르지 않아 소원의 기회를 놓치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왜냐면 그곳에는 너보다 더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라고 적혀있거든요.이건 소원 빌 기회를 가져간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응원하는 마인드잖아요. 이 마인드는 굉장히 동양적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동서양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저도 그 말에 굉장히 공감해요.



- 도서에 대표님의 편지가 담겨있는 것도 인상 깊어요. 편지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엽서 속 편지 내용이 제가 이 책을 내고 싶어 한 이유이기도 해요.

 

제가 20대 때 요르단 배낭여행을 하다가 이제 사막에서 노숙을 하는데 별똥별이 지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급하게 건강, 돈 등 제가 원하는 것을 계속 이야기했죠. 그런데, 소원 비는 연습까지도 충분히 했다고 느낄 정도로 별똥별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저 스스로가 욕심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렇게 별똥별이 많이 떨어지는 와중에, 나는 내 안에서 계속해서 또 다른 소원을 찾아서 빌고 싶어 하는구나, 이미 나는 충분히 이 사막의 밤을 겪은 것만 해도 너무 아름답고 좋은데도 끊임없이 소원을 찾아서 빌려고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그 순간 제 별똥별에 비는 제 소원이 바뀌었어요. 저의 소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이 별똥별을 보고 빌고 있는 다른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세요’로 저의 소원이 바뀌었죠. 그 이후로 떨어지는 별똥별에 계속 그렇게 소원을 계속 빌었어요. 그 순간 제 인생관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어요. 내가 기꺼이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구나, 나는 스스로가 굉장히 이기적인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런 마음이 진심으로 가능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그 이후로 한참 동안 이 경험을 잊고 지내다가 이 책을 보는데 그 순간 그날 요르단에서의 밤이 생각이 났어요.


제가 네이버 제이 그림책 포럼의 대표이기도 해요. 제이 그림책 포럼같은 커뮤니티의 역할이 이런 저의 경험과, 이 그림책에서 이야기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네 소원을 내가 빌어줄게, 내가 응원할게, 기꺼이 내 소원의 기회를 스틸 당해줄게, 이러한 연대의 힘이요. 그리고 이 연대는 강한 사람들끼리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지금 보태주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끼리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사실들을 그림책을 통해서 되게 많이 배웠어요. 왜냐면 그림책은 힘없는 것들의 이야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분들께, 이런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저의 경험과 함께 담아 편지를 써서 엽서에 담아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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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님께서 발행인으로 계시는 그림책 매거진 라키비움J에서 소개해 주고 싶은 코너가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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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안을 보면, 매 호마다 종이에 이렇게 색이 다르게 표시된 부분이 있어요. 이 코너는 아르고스라는 코너로, 이 코너 전체가 그림책 한 권에 대해 분석해요. 아르고스는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 안에서 눈이 100개 달린 괴물 이름이거든요. 그런데 눈이 100개가 달려서 한꺼번에 잠이 안 들고, 돌아가면서 잠이 들기 때문에 늘 깨어 있는 언론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해요. 우리 잡지에서는 한 가지 그림책을 보는 수많은 시선의 의미로 지은 이름이에요. 그림책 하나를 선정해서 그 그림책의 작가 인터뷰도 하고, 제목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그림책 속 건물이 나오면 건축학자의 시선에서 분석해 보기도 하고, 그림책이 연결된 단편 영화들을 소개도 하기도 하는 등 그림책 하나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CHAPTER 2.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림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 그림책은 어떤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림책은 그림이 아름답기도 하고, 글이 아름답기도 하고, 글과 그림이 합쳐져서 내는 시너지도 있고, 정말 종합 예술에 가까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에게 ‘그림책은 문학인가요? 회화인가요?’ 질문을 많이 해요. 저는 구태여 따지자면 연극에 가까운 것 같아요. 예술 장르가 주는 힘을 찾을 때, 그림책은 정말 입체적이거든요. 그림책 속 공간으로 확 몰입해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소설처럼 글만 읽고 이해를 하고 내 머릿속에서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연극 무대나 영화처럼 시각적 정보들까지 전부 제시를 해준단 말이에요. 시각 정보와 문자 정보, 언어 정보를 동시에 주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림책을 봤을 때 느끼는 기쁨은 미술관에서 미술을 봤을 때보다 오히려 연극에서 느끼는 기쁨에 더 가까워요.

 

글자 없는 그림책도 많아요. 이번에 안데르센상을 받고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같은 경우는 대부분 글자가 없어요. 그렇다고 이 그림책을 회화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책이라는 어떤 물성을 갖고 있는 존재니까요. 그렇다면 일러스트 화집일까요? 아뇨, 일러스트 화집은 서사가 없잖아요. 그럼 이야기를 갖고 있는 화첩에 가까울까요? 그래서 동양에서는 화첩을 그림책의 시초로 보기도 해요. 하지만 서양에서는 화첩이 있기 보다는 커다란 그림 하나에 이야기를 전부 넣어둬요. 종교적인 그림을 봤을 때에도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그림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니 동화책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죠.


또, 동화책이 페이지를 넘길 때의 구성과 파워, 이 과정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미적 체험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이 어떤 예술인가를 정의해 나가는 과정들이 지금, 오히려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연극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세세히 따져봤을 때 기존에 있는 예술 장르에 편입시키고 비유하기에는 너무 새로운 장르니까요.

 

 

- 그림책과 동화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둘 다 아동문학 안에 들어 있지만 동화는 글 서사에요. 그림이 있다 하더라도 이 그림은 이 글자를 읽을 때의 상상을 도와주고 서포트해 주는 역할이죠. 그런데 그림책은 달라요. 페리 노들먼이라는 그림책 이론가가 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림책에는 세 가지 서사가 있다, 하나는 글의 서사, 하나는 그림의 서사,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둘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서사이다”라고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파리의 작은 인어로 예시를 들었을 때 이 그림책 안에 글로 한 아이의 엄마가 “뱅자맹, 너의 소원을 빌어봐”라고 적혀있어요. 그리고 그 옆에 뱅자맹의 표정은 얼떨떨하게 그려져있죠. 그런데 사실 이 뱅자맹의 이야기가 글로는 안 나왔잖아요. 이 아이가 어떤 기분일지 글만 읽었을 때는 전혀 모르죠. 그런데 그림만 봤을 때는 이 두 모자의 현재 기분과 표정이 추측이 가능해요. 얼떨떨한 아이과,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딱 눈에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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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장으로 갔을 때 똑같은 상황이 나와요. 다른 아이가 엄마와 함께 분수대에 있어요. 그리고 뱅자맹처럼 소원을 빌지 못하죠. 그런데 이때 아이의 표정은 초반의 뱅자맹의 표정과는 달라요. 뱅자맹은 스틸 당한 아이의 표정이었다면 이 여자아이는 기부한 아이의 표정이라고 해석이 되죠. 그런데 이건 글만 읽었을 때는 전혀 모를 이야기예요. 그림을 읽어내야 알 수 있는 변화죠. 이렇게 그림책에는 글의 서사와 그림의 서사가 각각 따로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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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둘이 같이 있을 때 또 새로운 서사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동화책 삽화들의 역할을 그림이 해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그림이랑 글이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이라는 책이 있어요. 가족이 다 같이 미술관에 가서 미술 작품을 보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그림을 보면 이 가족이 전혀 안 행복해 보여요. 엄마 생일이라서 엄마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미술관에 갔을 때, 그림을 보니 엄마 빼고 아이와 아빠는 정말 행복하지 않은 표정으로 있는 거죠. 그러니까 글이랑 그림이 전혀 다른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족이 모두 다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어요. 글에서는 이 가족의 감정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데, 미술관에서 나누는 글의 내용과 이 그림을 보며 이 가족은 처음에는 지루하게 갔다가 마지막에는 모두 행복해졌다는 감정의 변화를 독자들이 함께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글과 그림이 합쳐지니 새로운 서사가 생긴 거예요.

 

 

- 이렇게 그림작가와 글 작가가 의도하는 이야기가 다르면 거기에 대한 충돌은 없나요?


그래서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글과 그림을 한 작가가 같이 하는 것이 진짜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물론 한 작가가 그림과 글을 같이 해서 혼자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면 정말 좋기는 하지만, 둘 다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에 기꺼이 서로의 작품을 보완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과정은 이제 그들에게 맡겨져 있는 거죠. 대부분의 경우에는 편집자가 이 둘의 사이에서 중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글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 그림 작가에게 한정을 지어줄 수도 있기 때문에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둘은 서로 잘 만나지 않고, 편집자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요. 예를 들어 데이비드 스몰 작가와 사라 스튜어트 작가는 부부예요. 그런데 같이 한 집에서 살면서도 작품을 할 때는 둘이 작품 얘기는 일절 안 하고 편집자 통해서만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또는, 맥 바넷과 존 클라센 같은 관계도 있어요. 존 클라센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기도 하고 그림만 하기도 해요. 맥 바네스 글만 쓰는 작가인데, 둘 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이에요. 그런데 이 둘은 동네 친구들이거든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작품을 만든다고도 하더라고요.


1960년도에 나온 <곰 사냥을 떠나자>(= We're Going On a Bear Hunt)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그 책은 전 세계에서 1천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해요. 이 책 같은 경우에는 마이클 로젠이 글 작가인데, 처음에는 용맹하게 곰 사냥을 하러 나가는 모습들이 나오고, 맨 마지막에 곰을 진짜 만나요. 지금까지는 계속 무섭지 않다고 이야기하다가 곰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온 거리를 도망쳐서 집으로 들어간 다음에 곰이 쫓아온 코앞에서 문을 쾅 닫고 “다시는 곰 사냥 안 갈 거야!” 이야기하고 끝나죠. 

 

그런데 나중에 마이클 로젠이 이야기하길, 자신은 이 글을 쓸 때 페스티벌에서 분장을 한 퍼레이드를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글도 자위적인 가사가 계속 반복이 되는 형식이고요. 그러니까 퍼레이드 분장을 한 사람들이 축제 행진하는 것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그런 그림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원고를 준 2년 후에 그림이 완성이 됐대요. 완성된 헬린 옥스버리의 그림을 봤는데, 퍼레이드에 대한 그림이 아닌 한 가족 이야기가 들어있더라는 거예요. 글 작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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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클 로젠이 이야기하길, 자신의 글로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는 오롯이 그림 작가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그 그림을 받아들이고 고쳐달라고 얘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책이 큰 성공을 거둔 거죠.



- 그림책은 만드는 사람도 어른이고 이걸 구매하는 사람도 어른이잖아요. 하지만 타깃층은 어린아이죠. 이 아이러니에서 오는 괴리감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이 그림책의 괴리감이고 한계이지만, 동시에 매력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 출판사 이름이 제이 포럼 출판사예요. 포럼이라는 것이 다 같이 둘러앉아서 한자리에서 의논을 하는 거잖아요. 예술 장르 중에 창작자가 둘인 동업을 하는 게 아니라면 창작자가 공식적으로 둘인 예술 장르는 그림책 말고는 거의 없어요. 물론 옛날 다빈치 시절에 다빈치가 공방을 갖고 있고 있을 때나 영화 같은 집단 창작도 있지만, 그 외에는 그림책처럼 다양하게 창작자와 독자가 존재하는 예술은 없는 것 같아요. 그림책은 만드는 사람도 글 작가 그림 작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고, 독자도 어른 독자 어린이 독자, 이렇게 이중의 독자가 같이 있으니까요. 정말 독특하죠.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를 위해서 만들어요. 그렇다 보니 어른 독자들은 묘하게 평가를 받을 때가 있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들어 놓으면 엄마들이 안 사준다, 엄마들은 공부시키는 책만 좋아한다, 이런 식으로요. 제가 포럼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그 부분 때문이에요. 진정으로 그림책을 좋아하는 다양한 독자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가 다 같이 이야기하고 다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해보자는 의미죠.

 

 

 

CHAPTER 3. 그림책에 담겨있는 힘없는 것들의 가치


 

- 앞서 그림책은 힘없는 것들의 이야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림책은 주인공이 대부분 아기거나 약한 동물이에요. 아기들도, 형제가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막내가 주인공이죠. 이렇게 힘없고 제일 약한 존재들 이런 존재들이 이야기가 그림책에 많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응원을 이야기해 주는 측면도 있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계속 노출이 되면서,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약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에서 막내 아이가 힘을 발휘하는 데 혼자 이뤄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어요.


예를 들면, 어떤 공주님을 구하러 세 형제가 간다고 할 때, 보통 첫째부터 출발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이 모험에서 다른 이들이 어떤 위기에 처한 상황이 나오죠. 가령 물에 빠진 개미가 살려주세요,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첫째는 중요한 일을 하러 가니까 바쁘다고 하면서 외면하거나, 오히려 괴롭히는 모습이 나와요. 그리고 첫째는 공주를 구하는 데에 실패하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막내가 갈 때 막내는 주변 사람들의 무시를 당하면서도 도전하고, 그렇게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에서 작은 동물이 도와달라고 그러면 도와줘요. 그러면 그 동물이 나중에 공주를 구하러 갔을 때 난관 속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로 나오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동물들 또한 힘세고 파워에 있는 사자나 독수리가 도와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예요. 개미나 작은 참새처럼 다 작고 힘없는 것들이죠. 이렇게 힘없고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그리고 그 존재들이 연대해서 무언가를 이뤄내는 모습이 동화책에서는 계속해서 나와요.


그런데 이런 그림책 속 모습이 스스로를 자꾸만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양육 책임자들의 모습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분들이 그림책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파워를 받게 되는 거죠.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는 모른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야기에 익숙해지고 힘을 얻는 것, 이것도 그림책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 사회적인 면모들이 그림책에 녹아들어있다는 것도 너무 흥미롭네요.

 

<이파라파냐무냐무>라는 그림책 케어해주는 존재들의 이야기예요.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작은 마시멜롱들이 어느 날 나타나서 울부짖는 털숭숭이를 발견하고 일어나는 일이죠. 처음, 마시멜롱들은 거부감과 두려움으로 털숭숭이를 대해요. 쟤는 커다란 크기이고, 검은색이고, 울부 짖고 있으니까, 화가 났을지도 모르니까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막상 털숭숭이가 표현한 건 하나도 없는데도요. 이 두 존재가 어떻게 화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 언어도 안 통하는 두 개의 충돌 지점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의 과정에서 ‘케어’하는 과정이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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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시멜롱들이 털숭숭이를 보고 ‘아프구나’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털숭숭이가 아프지 않도록 케어해줘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누군가를 케어해 주는 돌봄 노동은 사회에서 제일 천대받는 것 중 하나예요. 가사 노동은 하나도 인정받지도 못하고, 경제적인 가치로 치환되기 굉장히 힘든 거고, 사회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에게 가사 노동을 맡기니까요. 그와 동시에 사람이 사회적인 약자가 되는 것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가는 거예요. 늙고 힘들고 병든 사람들은 돌봄을 필요로 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마들이 혹은 여성들이 행하는 돌봄의 경력들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죠. 돌봄의 경험에서 나오는 포용력과 이해력, 그곳에서 오는 화합이 <이파라파냐무냐무>에 담겨있는 거예요.



- 이번 잡지 속 아르고스 코너에 담긴 그림책 <키오스크>도 이러한 사회적인 면모를 담고 있겠네요.


물론이죠. <키오스크>의 내용을 조금 설명드릴게요. <키오스크>의 주인공인 여자는 바다로 가는 게 꿈이에요. 그런데 키오스크 안에서만 살다 보니 뚱뚱해졌어요. 어느 순간 문이 좁아서 키오스크 밖으로 나갈 수도 없게 되고, 키오스크 안에서만 살 수밖에 없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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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키오스크 밖에 놓여 있던 물건을 어떤 아이들이 훔쳐 가는 바람에 그 아이들을 잡으려다가 키오스크에 몸이 낀 채로 넘어져 버렸어요. 그런데 그 순간 키오스크가 넘어지면서 깨달은 거예요. ‘내가 움직일 수 있네? 걸어 다닐 수 있네?’ 그래서 바깥을 구경하며 걸어 다니다 강물에 빠져요.


그런데, 중요한 점은 키오스크 안에서 이 여자는 행복했다는 거예요. 키오스크에 갇혀서 답답한 것이 아닌, 여행에 대한 꿈은 여행 잡지를 읽고 여행 그림을 벽에 붙여 놓는 걸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거죠.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넘어지면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강물에 떠내려가게 된 거죠. 그런데요, 하루 종일 키오스크에 껴서 움직이는데도 여자는 굉장히 편안해하는 거예요. 움직일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요. 제가 이 책에서 정말 좋았던 점이, 여자가 키오스크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키오스크가 낀 상태로 움직였다는 거예요.


몇몇 사람들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을 깨고 나와야 진정한 성숙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네가 키오스크 안에 있어도 돼, 그 상태 그대로 떠내려가서, 키오스크에 있는 상태로 바다를 봐도 괜찮아, 이야기하죠.


이건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른들의 이야기와도 굉장히 닮아있어요. 어른들도 내가 혹시 나만의 키오스크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 키오스크 밖을 나가고 싶지 않은데, 생각할 수 있거든요.

 

가령 나는 전업주부라는 이름으로 가정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이건 너무 나를 억누르고 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이곳을 너무 사랑해, 내 자유를 찾으려면 꼭 이혼하고 자식 버리고 나가야 할까, 그렇게 내 인생 찾아야 되나, 생각할 수 있거든요. 혹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키오스크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선생님이기 때문에 나는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고 생각은 굉장히 고루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직업도 너무 사랑해, 그러면 나는 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사는 바보인 걸까, 이렇게 고민할 수 있죠. 이 책은 그게 아니라고 말해준다는 거예요.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걸어 다니고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거죠.

 

 

 

CHAPTER 4. 아이뿐만이 아닌 어른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책의 힘


 

-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어필되는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림책은 정말 짧아요. 3분이면 다 읽을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또, 장르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나의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찾기가 정말 쉬워요.


그리고 그림책은 정말 신기하게도 가지치기가 잘 돼요.

 

<파리의 작은 인어>로 예를 들어보자면, 이 책을 읽고 줄거리에 대해서도 뜯어볼 수 있지만 이 그림책 속에서 나타나있는 파리에 있는 분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이 분수가 있는 광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죠. 파리 사람들에게 광장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 그림책 속 분수가 어떤 식으로 형태를 갖게 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 뜯어볼 수 있죠. 분수대에 앉아있는 인어가 그려진 그림 속 에펠탑을 자세히 보면, 에펠탑이 덜 지어져있는 상태로 그려져있어요. 에펠탑이 지어지던 시기가 1980년대쯤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인어는 그때부터 그 소원을 빌기 시작했으며, 당시 에펠탑이 지어지던 때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여기에, 이 그림 속에 그려진 다양한 옷차림들도 오랜 시간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어요. 그러면 이 속에서 이 인어의 나이를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가 있으면서, 패션의 변화도 알아볼 수 있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틈들이 그림책은 굉장히 많아요. 그림책에는 그림이 들어갈 수 있는 여백이 많으니까요.


노인이나 중장년을 위하여 그림책이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일단 글자 크잖아요. 글자 크고 얘기 짧잖아요. 책을 읽으니 인류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단 8초라고 하더라고요. 특히나 집중력이 짧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정말 좋은 책이에요.


또한, 그림책이 단순히 양육을 위해 읽는 책이 아니며 인생에 대한 질문들이 이 짧은 그림책 속에서 굉장히 많이 있어요. 정말 신기하게도, 그림책이 사람의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요. 그림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하게 되거든요. 청소년들, 그리고 어른들은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안 하잖아요. 그런데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림책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하게 되어요.



- 그렇다면 그림책이 어른들의 속마음을 꺼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질문이 달라서 그래요. 제가 <파리의 작은 인어>를 내고 정말 많이 질문 중 하나가, ‘지금 동전을 던진 사람이 있고 내가 인어라면, 빨리 누군가의 소원의 기회를 스틸 할 정도로 나한테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가요’예요. 이렇게 동화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하게 되는 거예요. 동전이 던져지고 나는 뭘 빌어야 하지? 그만큼 내가 간절히 생각하는 것은 뭐지? 고민하게 되는 거죠. 그림책은 정말 간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들춰보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또한, 상황을 만들어주기도 하죠. 우리가 빠른 순간 소원을 빌자고 분수에 동전을 던질 기회가 사실 잘 없어요. 그런데 이 그림책에서 이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독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나는 뭘 빌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 빨리 대답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가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이건 내 소원이 아니잖아. 왜 그게 내 소원이 되지?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지? 나는 아이가 공부 잘해서 사회생활을 잘하고 하는 이런 것을 위해서 바라나? 아니면 공부 잘하는 아이를 내 자식으로 갖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걸까?’ 이렇게 꼬리가 꼬리를 물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림책은 이렇게 상황과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림책의 장점은, 진지하지 않다는 거예요. 두꺼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진지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머리 아프다고 생각하기 싫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림책은 무신경하게 읽을 수 있다 보니 더 마음 깊은 곳으로 훅 들어오는 부분들이 있어요.


 

 

CHAPTER 5. 그림책이 흘러왔던 길과 앞으로의 방향


 

- 요즘 그림책에는 성차별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다고 얘기를 했어요.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예술은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림책은 어떤 방향으로 주로 바뀌는지 궁금해요.


그림책은 옛날 작품이 동시에 소비되고 있어요. 드라마는 나온 지 10년 됐으니까 안 보거나, 혹은 보는 사람이 이건 10년 전 거야라고 생각하고 보잖아요. 그런데 그림책은 그렇지 않고 수십 년 전의 작품이 아직까지 그대로 보이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가치관들이 혼재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강의를 할 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좋은 그림책이라는 것을 고르는 법은 없다는 거예요. 다만 그림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의 문제인 거죠.똑같은 책을 읽어도 과거에 읽히는 거랑 지금 읽히는 것이 다르고,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서 책의 해석 방향이 정말 달라질 수 있는 것이 그림책 장르의 특징이니까요.


그래도 요즘 나오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젠더 감수성이 가장 급진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일상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성인의 드래그 퀸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거부감이 있을 수 잖아요. 그런데 어린아이가 신나게 뛰어다니며 엄마 옷을 입고 노는 것은 거부감이 훨씬 덜해요. <프레드가 옷을 입어요>라는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시죠. 그림책은 이런 식으로 거부감 적게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많고,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많이 나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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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래된 젠더 감수성을 가진 작품들도 여전히 있고 그런 작품을 내는 작가들도 있죠.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그림책은 길어도 36쪽 안에 많은 내용을 표현해야 하다 보니까 여자들은 다 속눈썹이 길어요. 여자라고 다 속눈썹이 긴 건 아닌데도, 이렇게 전형적인 여성 스테레오의 모습이 보일 때도 있죠. 그런데 그림책 작가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들을 정말 많이 해요.


최근 그림책의 흔한 주제 중에 하나가 ‘나는 내 마음대로 옷을 입어요’인 것 같아요. 복장 도착자들에 대한 이야기요.

 

<인어를 믿나요?> (= Julian Is a Mermaid)라는 작품이 있어요. 꼬마 남자애 줄리앙이 할머니의 수영 교실에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인어 분장을 한 멋진 여자들을 봐요. 그러고는 할머니한테 집에 가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할머니 아까 그 인어 봤어?” 할머니가 “응, 봤지” 대답하니 줄리앙이 집 앞에서 할머니 사실은 나도 인어라고 얘기를 해요. 할머니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에 줄리앙이 커튼을 뜯어서 꼬리를 만들고 혼자 인어인척해요. 그걸 보고 할머니가 줄리앙이 인어 복장을 한 채로 퍼레이드로 데리고 가요. 아까 전에 그 인어들은 퍼레이드에 참석하러 가는 인어들이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여기 네 친구들이 있구나 같이 행진을 하자고 하죠. 줄리앙은 막상 그곳에 가니 숨어 있어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 줘요.

 

그런데 그전에는 할머니가 긍정적인 표정을 짓지 않았어요. 줄리앙이 인어복을 입고 나올 때 떨떠름한 표정이거든요. 그런데 샤워를 끝내고 할머니가 옷 갈아입고 나온 뒤 줄리앙을 받아들여준 거죠. 그러고 나서, 줄리앙을 퍼레이드에 데려가서 오히려 숨어 있는 줄리앙한테 가자고 함께 손을 잡고 퍼레이드를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요. 그날 우리는 너무 신나게 퍼레이드를 했어요. 이렇게 끝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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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걸 처음 읽었을 때 독자들이 다 받아들이는 게 달라요. 어떤 독자는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해석하기도 해요. 외계인을 믿고 산타클로스를 믿고 인어를 믿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존재에 대해서 믿는 이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할머니의 노력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트랜스젠더구나, 자신의 젠더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 받아들여주는 얘기구나, 이렇게 되게 다양하게 읽어요.


<인어를 믿나요?>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 이야기해 주는 책이 아니에요.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만큼 읽으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이게 영어 그림책으로 읽을 때는 조금 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해요. 영어 제목은 < Julian Is a Mermaid >거든요. Mermaid는 여성형이고 Merman이 남성형이에요. 영어에서는 줄리앙은 남자인데 왜 여기에서는 머메이드라고 하는지에 대해 책을 읽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이야기하거든요. 또, 인어라는 존재가 트랜스젠더들, 성소수자 LGBT의 상징이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는 제목이 인어를 믿나요로 바뀌었어요. 느낌이 다르죠. 그러니까 그림책들이 그 사회의 젠더 감수성 등 사회적 분위기의 굉장한 민감한 지표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LGBT에 대해서 고민을 할 기회는 사실 거의 없어요.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요.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성 정체성은 내 아이가 세상 누군가에게는 다 얘기하더라도 자신의 엄마 아빠한테는 이야기하기 가장 힘들어하는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이 그림책을 보며 ‘혹시 우리 아이가 이렇게 행동한다면’이라는 가능성, 그리고 그때 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되는가 이런 질문들을 그림책을 보면서 하는 거예요.



- 그림책이 이토록 진보적이라니, 저는 오히려 그림책은 굉장히 보수적일 줄 알았는데 놀랍네요.


미국에는 스톤월상이라고,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낸 책들에게 주는 상이 있어요. <인어를 믿나요?>도 스톤월상을 받았죠. 그림책은 되게 진보적인 얘기들을 많이 담고 있어요. 그림책은 꼭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더라도 난민 문제나 여성 문제, 사회의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교육 교재이자 투쟁의 장소가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의 생각이 말랑말랑할 때 가르칠 수 있잖아요. 이러한 이야기와 주제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성인들도 그림책 속 캐릭터의 이야기로 읽음으로써 더욱 몰입시키고 설득하기 좋죠. 그러니까 사실 그림책에서 갖고 있는 진보적인 부분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해요. 정치적인 부분, 혹은 젠더 감수성의 부분, 사회의 모순들, 전부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랑에 빠진 토끼>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펜스 부통령이 굉장히 동성애 반대론자로 유명하거든요. 이 그림책은 펜스 부통령의 부통령 그 관사 뒷마당에 사는 토끼 이야기예요. 토끼가 자신이 수컷인데도 다른 수컷 토끼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죠. 정말 재미있는 점이, 이 그림책에 펜스 부통령은 나오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첫 문장이 ‘펜스 부통령 집 뒷마당에 살고 있는 갈색 토끼 이야기’로 시작을 하거든요. 그리고 뉴욕 베스트셀러가 되었죠. 하하. 이렇게 그림은 때로는 풍자를 담고 있고, 공격적이고, 그만큼 다루는 주제도 무궁무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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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까지 그림책학이 없어요. 지금까지는 대부분 유아교육학과의 하부 카테고리에 있었어요. 아이들한테 교육을 하는 과정에 그림책이 많이 있으니까요. 불문학이나 국문학에 가기에 동화책의 언어도 자유롭죠. 회화 미대로 가야 하나 생각해 보면, 또 그림책에 회화적인 측면도 담겨있을 때가 많죠. 그러니까 사실은 그림책이 모든 과에서 가능한 동시에,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 학과가 새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그림책은 OSMU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측면도 강해요. 영화로도 쓰일 수 있고,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같은 경우는 심지어 빵도 나왔어요. 그림책은 콜라보 하기도 굉장히 쉬워요. 그래서 그림책 학과가 이제는 정말 나오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학자들이 그림책에 대해서 슬슬 정의를 내려줘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해주고 있어요. 이번에 네이버에 처음으로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이 등재가 됐을 정도니까요.

 

 

 

마지막으로, 2030세대를 위해 그림책 한 권을 추천해 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파리의 작은 인어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정말요. 하하. 현재의 2030 분들이 스스로가 그 짧은 순간에서 간절히 빌 정도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으면 싶어요. 분수에 던지고 별똥별이 떨어질 때 비는 소원이 왜 이루어진다고 하는지 아세요? 찰나잖아요. 찰나의 순간에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수축돼 있고 핵심적인 소원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내 마음속으로 많이 생각했던 소원은 그만큼 간절하고, 내가 거기에 맞춰서 노력하게 되니 이뤄진다는 거죠. 물론 안나 카레니나가 동일한 질문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는 그 질문을 600쪽에 걸쳐서 하잖아요. 동화책은 30초면 다 봐요. 바쁜 2030 분들에게 최고죠. 그러니 이 책을 읽고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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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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