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글 입력 2024.01.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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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지난 10월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으로, 주인공 마히토가 아버지와 함께 내려간 어머니의 고향에서 왜가리 한 마리를 만나 '이세계'의 문을 통과하며 겪는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봉 전부터 수많은 한국 팬의 기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난해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모르겠다’, ‘영상미만 좋다’와 같이 영화에 대한 혹평을 이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의 배경 등도 논란이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유년 시절을 전쟁이 진행되던 때 보냈고, 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자전적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 마히토의 아버지가 군수 공장에서 일한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군수 공장에서 일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감독은 실제로 비행체와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이는 감독 일생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탈리아 비행체 이름을 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에서 하늘을 떠다니는 성이 배경이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서는 상공을 가르는 전투기, 폭탄과 화염에 뒤덮인 도시와 전쟁이 배경이 된다.

 

하지만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큰 만큼, 비판이 거세기도 하다. 그의 작품 <바람이 분다(2013)>에서는 주인공이 하늘을 동경한다는 특징과 영화의 배경이 전쟁 배경인 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날 선 반응이 오고 간다. 이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도 그 여론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극 중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점과 부품을 보고 칭찬하는 대목이 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 논란과 비난이 혼란스럽게 이어지고 있으나, 영화는 그 속에서 분명한 것을 말하고자 한다. 뛰어난 영상미와 화려한 색감들, 다양한 등장인물 사이에서 주인공 ‘마히토’는 굳건하게 주인공으로서 중심을 지킨 채 영화의 스토리를 꽉 쥔 채 끌고 나간다. 소품으로 등장한 책, 그리고 그로 이어지는 영화의 메시지에 조금 더 집중해보고자 한다.

 

  

 

진리를 찾아서 -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에 잠깐 등장했던 책이 있다. 요시노 겐자부로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실제로 감독의 유년 시절을 함께 했다고 알려진 이 책에서는 15세 소년 혼다 준이치와 그 외삼촌이 정신적인 성장, 빈곤, 인간으로서의 종합적인 체험과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다.

 

소년이 ‘코페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그는 높은 빌딩 위에서 외삼촌과 함께 도쿄의 거리를 내려다보는데, 거리 위 사람들이 작은 분자처럼 느껴지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되어 이를 외삼촌에게 말한다. 외삼촌은 그런 소년에게 ‘코페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별명 ‘코페르’는 과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약자다. 코페르니쿠스는 모두가 천동설을 주장할 때 홀로 지동설을 주장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외삼촌은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어릴 때는 누구나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로 세상을 바라보지.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해. 전찻길은 우리 집 대문에서 왼쪽, 우체통은 오른쪽 ... (중략) ...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지동설이라는 사고방식을 갖추게 돼. 세상의 넓이를 알아 가면서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사물과 사람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는 거야. 어느 중학교의 교장이라고만 알려줘도 그 사람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사람도 이해하게 되는 거야.”

 

“그런데 나를 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성질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 있단다. ... (중략) ...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만 빠져 눈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바라보려고 한단다. 내 입장만 생각해서 사물을 판단한다면 세상의 참된 진실과는 끝내 마주할 수 없단다."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中

 


외삼촌은 소년에게 세상을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눈을 가지길 바랐다. 한걸음 뒤에서의 시선이란, 자기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넓은 우주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진리를 명확하게 비출 힘이 된다. 모두가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현상, 천동설을 믿을 때,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자로서 더 넓은 우주를 이해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진리를 밝힘으로써 세계를 환하게 비추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에서 마히토의 책상 위에 놓인, 이어서 그가 펼쳐 든 책을 본다. 그 지면에는 이 대목이 간접적으로 수록된 일러스트가 있다.

 

또 마히토의 이름에도 숨은 뜻이 있다. 한자 ‘참 진(眞)’, ‘사람 인(人)’. ‘참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보니 마히토는 탑 안에서의 모험을 통해 더 넓은 우주를 보고 그 안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책 속 ‘코페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진리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 끊임없이 충돌하는 아름다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다음과 같이 연출 의도를 밝혔다.

 

 

“소년 안에 담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물론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추한 감정과 또 갈등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힘차게 넘어갈 수 있을 때, 드디어 세상의 문제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

 

 

탑 속에서의 모험이 서서히 마무리될 때쯤, 마히토의 큰 할아버지는 그에게 13개의 ‘악의에 물들지 않은 돌’을 통해 자신의 탑을 세우라고 말한다. 그가 현재 이뤄낸 세계를 유지할 ‘악의에 물들지 않는 후계자’를 찾는 것이다. 이때 13이라는 숫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의 수와 일치하며 ‘지브리 스튜디오’ 와 그의 애니메이션 세계에 대한 미래 방향성과도 겹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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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히토는 거절한다. 그는 자해로 머리의 옆부분에 상처가 있는데, 이는 악의에 물든 것이라고 말하며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참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히토조차도 선의로만 가득한 사람은 아니라 ‘불완전함’을 가졌던 게 아닐까. 하지만 알 수 있다. 마히토가 비록 세계를 유지하기를 꺼려도, 그가 탑에서의 모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건설할 찬란한 세계는 분명하다는 것을. 그 불명확하면서도 명확한 사실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하고 있다.

 

이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선과 악, 옮음과 그름 그 사이에서 답이 정확하게 나지 않는 모호함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옳은 행동이, 누구에게는 비판받을 행동이 되기도 한다. 갈팡질팡 오가는 모순적이고 불명확한 우리의 모습이 영화 주인공 ‘마히토’에 그대로 담겼다. 정확히 어떤 결말을 내리지 않은 채 영화는 마히토가 도쿄로 다시 떠나는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에 의하면, 원래 문학작품이 아닌 윤리에 대한 책으로, 중학생을 위한 교양론으로 쓰였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교양과 윤리'라는 커다란 주제를 제시했다. 형체 없고 추상적인 주제인 만큼, 여전히 관객들은 작품 및 배경 논란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한 채 끝없이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의견이 대립하는 과정이 이어질수록, 우리 모두의 삶의 방향이 더 윤리적인 곳으로 향하는 듯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라는 장르는 서로 대립하며 정의되지 않는 진리를 찾아가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살라는 건데?”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은 영화의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떠올리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궁금해한다. 마히토가 관객에게 답을 맡겨두고 도쿄로 떠난 것처럼, 사실 정답은 없다. 그러니 저마다 숨어있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 사회에서 느끼는, 혹은 개인이 느끼는 모순적인 윤리 가치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을, 자신만의 낯선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책 속의 코페르와 탑 안에서의 모험을 마친 마히토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일의 더 찬란한 진리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있을 것이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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