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여기의 프레임 밖으로 나가는 일. [전시]

인천아트플랫폼 전시 <송출된 과거, 유산의 극장>
글 입력 2022.05.04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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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송출된 과거.jpg

 

 

전통을 논쟁의 장으로 설정한 이번 인천아트플랫폼의 전시는 아시아 근대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넓은 이해를 시도했다. 그로 하여금 여기 남아있는 전통을 채집하고 면밀히 살피며 시간의 수평축에 그것이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톺아볼 수 있었다.

 

근대성이 발명한 개념인 전통이(에릭 홉스봄) 당대의 시선에서 끊임없이 재정의 되는 것이라면, 시대마다 달라진 전통의 본령은 구성원들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소외시켰을 것이다. 전통이 격리시킨 사람과 시간 역시 그것이 남긴 유산이다. 아직 해석되지 않은 격리와 결집의 연관성을 이 많은 작가들은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우선 호 추 니엔은 <무의 목소리>에서 역사 서사 내부의 모순된 지점을 발화한다. 평면 스크린에서의 구성을 벗어난 가상현실은 모순된 서사를 육화된 언어로 만나게 한다.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 좌담 이후에 전개된 역사적 상황이 단순한 반전이 아닌 서사의 표층에 이미 잠복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대화를 개진하고 유보하며, 되묻고 답한다. 이 목소리들은 결국 어떻게 군국주의 전쟁의 정당화로 선회하게 됐는가?

 

이에 대한 단서를 호 추 니엔은 당시 큰 영향력을 지닌 [중앙공론], [가이조]와 같은 종합 잡지와 [일본 전시(戰時) 저항의 철학] 등에서 찾았다. 그는 시대사적 상황과 기록으로 남은 이야기들을 꼼꼼히 엮어내어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을 뚫어져라 바라보면 그 심연이 진정으로 나를 응시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남겼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자기 내부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실패한 교토학파의 일원들과, 그들의 대화에서 출현하는 모순의 뉘앙스를 관조(내지는 관음)의 차원에서 감각할 기회를 부여받은 우리. ‘무의 목소리’는 1930년~1940년대 일본의 사상과 이념의 큰 축이었던 자들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절멸, 즉 무無에 닿아있는 전쟁을 긍정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고, 더 이상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무화된) 그들의 대화 속에 가상으로 위치한 우리가 앞으로 여기 남겨진 목소리를 어떻게 청취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는 발화 자체에 대한 주목과 나아가 발화된 이야기의 층위를 성실히 세어보는 게 돌이킬 수 없는-전쟁, 차별 등 모든 것이 무화되는 선택을 정당화하는-후회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여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는 얘기로도 읽힌다.

 

이번 전시의 작품 대부분은 전통의 맥락을 깊게 파악하는 과정이 앞서 이뤄지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문헌을 조사하거나 그 문화 속에 직접 들어가기도 하고, 스스로가 전통의 일원이 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반면 이들이 나중에 그 경험을 작품으로 치환할 때는 그것과 완전히 거리를 둔 방식(호 추 니엔 – 무의 목소리)이 되기도 하고, 제작과 수행의 경계를 넘나들기도(정은영 –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한다. 어떤 작품은 대상을 프레임에 담기를 허락받기 전까지 긴 설득과 동질감 형성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왕 투오 – 퉁구스)으로 보인다. 심지어 존재의 유실된 움직임을 문헌과 작업 연구를 통해 다시 꿈꾸기도(남화연 – 반도의 무희) 한다.

 

그중에서 성별 관념과 역사의식의 한계라는 억압적 통념을 해체하고 여성국극의 실천적, 대안적 전승을 통해 민족지 연구를 새롭게 봉합한 정은영의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은 압도적이었다. 영상 속 모든 움직임이 뿌리 깊은 기존 관념에 대한 파괴를 추동하고, 그 파괴는 우리가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는 새로운 전통의 가능성을 파종한다. 전통과 역사에서 격리된 장애인과 레즈비언, 드랙킹의 정체성은 고유명사로서 전통에 삼투하고 개별 존재로서 역사 안에서 확장된다.

 

이 이야기 앞에서 비로소 우리가 할 일이 명확해졌다. 유산의 극장에서 새로운 필름을 영사하기 위해 지금 여기의 프레임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조원용 컬처리스트.jpg

 

 

[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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