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누나는 극단적 남성혐오주의자야, 라는 말을 들었다.

남동생으로부터.
글 입력 2022.03.1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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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Wayne Lee-Sing on Unsplash

 

 

나, 완전 케이장녀. 남동생을 위해 모든 할 수 있다. 고릿적처럼 누나들처럼 공장 이교대 돌아 번 돈으로 남동생 대학 보내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코 묻은 알바비로 동생 옷 사주고 밥해주긴 했다. 아들을 더 챙기는 엄마의 은근한 편애 속에, 아빠와 남동생의 밥을 수백 번 차려주며, 살림만 하다 하루가 끝나던 나날을 수도 없이 보냈던 딸이자 누나, 보편적인 케이장녀다.

 

군대를 다녀온 남동생이 부쩍 변했다. 그렇게나 싫어하던 집안일을 하고(예전엔 밥 차려줬으니 설거지 좀 하라 하면 딱 제가 먹은 밥그릇만 씻었었다) 가끔은 회사일로 허덕이는 나에게 밥까지 차려준다. 동생의 복학 전까지 매일 같이 점심 저녁을 먹었다.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날은 밥을 먹다 ‘여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훈련 중에 옆 소대에서 어떤 여자 간부가 힘들다고 탈영했었어.”

 

“그래? 내부에서 힘든 일이 있었나 보네. 차별 같은 게 있었나.”

 

“아니. 그냥 힘들다고. 남들은 다 버티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차별 같은 걸 많이 당하다 결국 못 버티고 나간 거 아냐?”

 

“아니야. 요즘은 말 한 마디 잘못해도 까딱하는 세상인데.”

 

“그렇다고 해도 남초 집단에 여자가 있는 한 그런 일이 없을 순 없지.”

 

“요즘은 진짜 빡세게 잡아.”

 

“대놓고 강간이 일어나진 않아도 일상적 성희롱은 충분히 남아있을 걸.”

 

“그럼 여자는 입대를 하지 말던지!”

 

“집단 문화를 바꿀 생각을 해야지 그런 식으로 아예 배제를 하면 어떡해?”

 

“애초에 그 간부는 여자라서 욕한 게 아니야. 뚱뚱하고 자기관리도 못하고 아빠 빽으로 들어왔던 사람이야.”

 

“남자들 중에도 뚱뚱하고 자기관리 못하고 아빠 빽으로 들어온 사람 많지 않아?”

 

“왜 한 명이 잘못해서 단체가 싸그리 욕먹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군대에서) 여자들을 어디까지 배려해 줘야 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거의 몇 년 만에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동생의 마지막 말에 말문이 막혀 너... 너무 심하다. 라고 했고, 동생은 이에 “누나처럼 극단적인 남성혐오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식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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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iego González on Unsplash


 

군대에 가기 전, 복무 중, 제대 후까지 동생의 감정에 깔린 기저는 ‘억울하다’였다. 왜 내가 타의적으로 그 고생을 했어야 했냐는 말이다. 엄마는 동생을 영웅처럼 대한다. 그 추운 곳에서 나라를 지키고 온 동생의 노고에 연신 갸륵해 한다. 그래서 나에게 동생을 더 돌보아 주라 말한다. “나라를 지키고 왔는데 누나가 이거라도 해줘야지!”


나는 가족으로서 동생의 생고생을 내 일처럼 여기며 아파할 순 있지만, 군인의 복무에 대한 보상을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 진 모르겠다. 대한민국 징병제는 여성을 이등시민으로 강등하며 남성에게 일등시민으로서의 사회적 권위를 선사했던 제도다. 보낸 것도 남자, 그걸 항의해서 없애줄 사람도 남자인데 왜 여자에게 자꾸 생색을 내냐는 것이다.



일민주의를 통해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선언한 이승만은 호주제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질서를 구축해, 남자들에게 사회적 권위를 부여하고 여성을 이등 시민화했다. 그리고 이 가부장적 질서는 징병제를 시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데, 군 복무는 사회적으로 권리가 주어지는 일등 시민의 조건이었으며, 동시에 '후방'에 있는 여성을 보호하는 자로서 '여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요한 정당성의 근원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 최태섭, 106p

 

 

그치만 이 대화가 남긴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것이었다. 성차별에 대한 지독한 소통불가를 느꼈고, 동생 또한 어쩔 수 없는 ‘한국 남자’라는 걸 확인 받았다.


페미니스트, 그리고 살아남고자 하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진정한 공포가 느껴질 땐 이럴 때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지켜줄 거라 확신했던 이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 첫 성추행이 여섯 살 즈음 지하철 옆자리 아저씨였다는 것에 위로 받지 못하는 것. 제발 대문 좀 닫고 다녀달라는 말에 예민하다며 묵살 당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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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복학을 하며 학교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전, 동생은 나에게 ‘나 졸업하고 하면 둘이서 같이 독립 할래’ 라고 물었다. 난 그 말에 꽤 감동했다. 룸메이트가 되어도 괜찮을 정도의 사람이란 걸 확인 받은 것 같아, ‘극단적 남성혐오주의자’인 날 그렇게 싫어하진 않는 구나 하는 생각에 이상하게 안심했다.


만약 둘이 독립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꽤 잘 살 것이다. 서로에 참견하는 일이 없고, (내 지도하에) 적절한 가사분담이 이뤄질 것이며, 실리 따질 것 없이 다 퍼줘도 괜찮은 상대라 돈 때문에 맘 상할 일도 없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룸메이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불안하다. 늦은 귀갓길 낯선 남자에게 위협을 느끼고 동생에게 전화했을 때 얘는 날 마중 나와 줄 수 있는 사람일까. 직장에서 당한 남녀 임금차별을 토로했을 때 함께 분개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


남성인 동생에게 절대적으로 안전을 의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난 보호 받을 수 있을까. 얘는 내 공포를 이해하고 날 보호해주고 싶어 할까? 여자란 이유로 누나를 어디까지 배려해줘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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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동생은 남녀 갈등이 정점에 이른 이 시대에도 양호한 축에 속하는 남성이다. 과격한 워딩을 사용하거나 페미해요? 따위의 질문을 던지고 다니진 않는다. 무관심에 가까운 입장을 보인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다. 착하고, 꾀피울 줄 모르고, 답답할 정도로 이타적이다. 동생이 좋은 사람인 걸 알기에 나는 이 애가, 혹은 이 애도 ‘한국남자’라는 것에 무력감과 속상함을 느낀다.


이분법적 남녀갈등, 지독한 혐오, 여성의 생존권을 위한 싸움 속에서 내가 부딪힌 가장 현실적이고 가까운 남성은 동생이었다. 우리 남매는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테지만, 그럼에도 ‘여자’누나와 ‘남자’동생은 어떻게 함께해야 할까?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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