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명과 죽음 사이 - 당신이 살았던 날들 [도서]

Life is like an intricately woven basket.
글 입력 2022.02.2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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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델핀 오르빌뢰르는 프랑스의 여자 랍비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매 챕터마다 자신이 배웅한 일련의 죽음들에 결부된 각각의 사연들을 덤덤하게 읊조린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죽음’이 마냥 무겁고 어두운 주제가 아니기에 그녀는 유대 유머 특유의 분위기를 한결같이 유지하면서도, 프랑스 사회 안에서 반유대주의가 낳은 아픔을 현대성, 페미니즘, 세속주의 등의 이슈와 함께 담백하게 풀어낸다.

 

유대인에게 삶은 운동체적인 개념에 가깝다. 그들에게 삶이란 안정과 움직임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균형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 역시 그 자체보다는 물리적으로 사망하였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직전까지 유유히 빛나며 이어지던 누군가의 생동하던 역사와 그 궤적이 더 중요하다. 죽음의 본질에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누군가 사망하였다고 해서 슬픔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총 11개의 챕터 중에 내가 특히 인상 깊게 읽은 파트는 ‘사라와 사라: 바구니를 짜다’이다. 오르빌뢰르는 어느 날 한 아들로부터 어머니인 사라의 장례를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스스로가 ‘좋은 유대인’은 아닐지라도 가능한 전통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요약하여 들려준 그녀의 전반적인 인생사는 다음과 같다.

 

사라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인근 마을에서 장사를 하던 유대인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 부모가 살해당하면서 그녀는 친척 아주머니의 손에서 궁핍하게 성장한다. 또한 결혼을 하지만 남편이 병중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딸인 리브카까지 전쟁 중에 강제수용소에서 잃고 만다. 전쟁이 끝나고 혼자만 살아남게 된 그녀는 억지로라도 자신의 삶을 재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생존자인 미샤와 가정을 꾸리지만 성격 차이로 인해 끝내 이별한다.

 

결국 아들이 스스로를 ‘못난 유대인’이라 자책하는 까닭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않고 홀로 내버려 뒀다는 미안함에서 연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은 사라를 정말 완고한 분이셨다고 표현하였는데, 그녀의 삶에 끊임없이 찾아온 수많은 불행들을 생각해 보면 반대의 성향을 타고났었다 하더라도 완고한 성향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인간의 삶을 하나의 바구니에 은유하자면, 전쟁은 사라 본인은 물론 주변인들의 바구니에 공통적으로 메꿔지지 않는 구멍을 야기하였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틈이 불행들로 잇따라 치환되면서 그들의 바구니에는 올이 풀린 실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외관상이라도 바구니의 형태를 유지해 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라의 아들 역시 이 과정에서 상처투성이인 삶의 바구니를 억지로라도 이어 붙여 보려 뜯긴 실들에 힘없이 매달린 연약한 존재였을 뿐이다.

 

아들에게 어머니인 사라를 유대인의 방식으로 보내주는 것은 용기를 내서 자신의 바구니 형상에 오롯이 눈을 맞추고, 흩어진 조각들의 애틋한 생김새를 천천히 마음에 새기는 행위이다. 어머니의 인생이 새삼 비극적이라 느껴질지라도, 이제는 냉정함을 되찾고 자신의 삶과 어머니의 삶을 분리해서 바라봐야 하는 시기가 오고 말았다. 자신의 바구니 파편들이 사실은 다시 연결되기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음을 아들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나는 완전무결한 바구니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누구나 사는 동안 나름의 굴곡들을 경험하기 마련이며, 바구니를 이루는 조직들은 필연적으로 이따금씩 느슨해지거나 엉성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왕 행복과 불행으로 점철되는 삶이라면, 나의 바구니는 대단히 견고하지는 않더라도 부디 풀린 올들이 자유롭게 흩날리는 삶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실이 풀려나갈 때마다 내 삶의 무게가 줄어들기를 잠시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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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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