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대한 그리움

영화 <리코리쉬 피자>와 데이비드 보위로 연상하는 낭만과 향수
글 입력 2022.02.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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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기억중에 사람, 존재, 시간, 공간이 어떻게든 모여서 남겨진 장면들이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과거에 존재했던 때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 특정 연도에 그 나이로 살았던 자신과 시간이 지난 후에 마주한 스스로와의 차이나 연속성이 깊이를 만든다. 당시에 보았던 영화, 들었던 음악, 만났던 사람 그리고 그 중에서 발전했던 연인들이 떠오른다. 현재라는 뚜렷한 시점이 있어야 만 존립하는 추억에 대한 감정은 어느새 미화가 되어 아름답기 만 한 낭만으로 가득차기도 한다. 푹 빠져들었던 가수나 예술가에 대한 향수는 그만큼 다른 것보다 그 사람에게 만 쏟았던 열정의 순간들이 모여있는 기념적 집합이 된다. 이러한 정서의 향연, 바람이 불면 떠오르는 그리움은 멜로드라마를 통해 재현되고 오늘날에도 모두의 계절에 상영된다.

 

 

 

리코리쉬 피자의 멜로 드라마는 맛이 다르다



멜로드라마는 음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melos와 움직임을 의미하는 drama의 합성어다. 보편적 장르 개념이 되기 전 19세기에 연극에서 먼저 빈번하게 사용되던 형식이었다. 연극을 진행하는 와중에 결정적인 장면에서 음악의 힘에 강조해서 극의 흐름을 구성했다. 배우고 습득해야 이해할 수 있는 고전 비극은 귀족 계급의 것이었다. 반면 일반 대중이 손쉽게 관람할 수 있는 문화는 멜로드라마였던 것이다. 19세기 연극부터 21세기 초반 영화까지 멜로드라마는 일련의 특징을 공유한다. 감정의 과잉으로 극에 몰입하게 되고 또 하나는 역경과 고난에서 살아남아 승리하는 주인공의 면모가 있다. 늘 익숙한 구조였던 멜로드라마는 1970-1980년에 이르러서 가벼운 유희 거리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탐구할 만한 연구자료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를 연구한다는 것은 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 함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되었다. 남녀 간의 사랑과 가족 간의 갈등이 있는 드라마는 사사로운 이야기에서 공적인 현실과 본질적인 인식을 드러낸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리코리쉬 피자>는 흥미로운 사랑이야기도 하면서 202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장르 연구 보고서가 될 수 있다.


행복하게 사랑만 하다가 마지막까지 순탄하게 사랑하는 사이로 남는 이야기는 관객의 관심을 유발하기 어렵다. 두 사람이 쉽게 사랑을 이루지 못할수록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분, 계급, 신체, 질병, 가족, 시대적 배경이 모두 합심하여 두 사이를 갈라놓을 때 비로소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장애물과 반대가 심할수록 정서의 깊이와 폭 모두 늘어난다. 관객은 비련의 사건과 우연적 희생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고 몰입하며 연민이나 응원하는 정서를 갖게 된다. 실제로 연기하는 배우들은 질투, 분노, 집착에 대한 감정들을 묘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다. 영상화가 자유로워진 시점부터 감독들은 흥미의 배를 증가시키기 위해 스릴 있는 액션과 과도한 폭력을 첨가했다. 가슴 떨리는 광경에서 마침내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멜로드라마와 하나가 된다. 그런데 어느새 뻔한 멜로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시들해지고 관객수는 줄기 시작했다. 멜로드라마 형식을 빌린 슈퍼히어로 영화나 블록버스터 영화는 액션과 웅장한 스케일로 버티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메인으로 삼은 드라마는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지독하고 강렬한 영화들을 통해 인간의 민낯과 캐릭터의 모순을 탐구하던 연출자였다. 그가 갑자기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10대 청소년과 20대 방황하는 청춘들을 통해 멜로드라마로 복귀한 건 지나간 실패작들을 답습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리코리쉬 피자>에서는 2010년대 들어서 한물 열기가 식은 멜로드라마 형식의 러브스토리를 비틀고 차별점을 두는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한다. 첫 번째로 주인공들은 관객들에게 연민을 유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과 귀엽게 집착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전통적인 시련을 겪는 서사보다는 본인이 자초한 방황과 오리무중에 빠진 미성숙한 존재들로 비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선과 악의 대립을 상징하지 않는다. 특별히 외부 격 인물들보다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우연적으로 만나는 조연들과 관계가 생기고 사랑으로부터 위기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더욱 신뢰하는 방법보다는 경험적으로 자신의 결함을 메꾸면서 다른 선택지들을 소거하는 방식이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의 여자 주인공은 미성년인 남자 주인공보다 10살이 많지만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자존감이 낮은 것을 처음부터 드러낸다. 그럼에도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처음 본 순간을 우연이 아닌 필연적 운명으로 확신한다. 직업, 가족, 연애 모든 것에 있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확신이 부족한 여자 주인공은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재력가 남성이나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남자 배우 등은 사랑을 위협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 주인공을 경험을 통해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과거의 여자 주인공과 미래의 당사자가 성장 전후를 통해 서로의 주장을 대립힌다. 부당한 도덕적 시련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아니라 내면에서 정립해야 했던 숙제였다. 세상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나이차에 대한 편견이나 시선도 없었다. 다만 각자가 스스로를 의심할 뿐이었다.


멜로드라마의 틀을 하고 그 안에서 형식을 비틀어 변화를 준다는 것은 의도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많은 요소를 결합하여 추억과 현재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깨닫는 자신의 사랑이야기다. 그때 그 소중함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진정으로 소중했는지 지금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는 주문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다. 영화 외적으로 둘러싸인 그리움의 배경이 있다.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쿠퍼 호프먼'은 배우 생활을 하다가 48세에 숨진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친 아들이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폴 토마스 앤더슨과 여려 차례 작품을 함께 했던 사이였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개인적으로는 2003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코미디 멜로드라마가 있다. 이 작품과 <리코리쉬 피자>의 유사한 부분들을 팬들이 발견하고 있다. 이처럼 감독 자신이 영화 외적 세계인 현실에서 가지고 있는 그리움과 관련된 정서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73년은 가장 사적이면서 공적인 추억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3년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풍성한 그리움의 테마파크다.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였던 실존 인물인 '윌리엄 홀든'과 성공한 영화 제작자인 '존 피터스'를 연기하는 현재의 할리우드 유명 배우 '숀 펜'과 '브래들리 쿠퍼'가 있다. <리코리쉬 피자>라는 제목 역시 1970년대에 있었던 LP로 운영하는 레코드샵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또 LA의 '산 페르난도 밸리'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이기도 하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에 쓰인 OST는 이번에 작곡한 수록곡의 수보다 당시 유행했던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등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추억에 대한 범벅이자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작정하고 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3년은 왜 이 영화 속에 시공간을 구축하는 주요 무대로 쓰여야 했는지 추측을 해보고자 한다.


영화 속에 1973년에 벌어진 석유파동이나 핀볼 게임 법 개정이 등장은 하지만 이러한 배경이 주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10대 시절 10살 정도 연상의 여자를 사랑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할리우드의 프로듀서 '게리 고츠먼'의 편집된 실화와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을 결합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번에 캐스팅된 남녀 주인공들은 생애 첫 스크린 데뷔를 한 인물들이 연기한다. 아마도 영화의 제작진이 그리움을 가지고 있을 만한 연도가 우연히 1973년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정한 정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3년의 호주 '시드니'나 2022년의 'LA'는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직접 말하기에는 어색하고 꾸며내야 하는 이야기가 되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직접 나서서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그 대상이 주는 노스탤지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중에서 감독이나 그의 동료들이 전해 준 실화를 겪지 않은 관객이 쉽게 영화에 스며들 수 있게 도와주는 핵심 장치는 역시 당시의 유행하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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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

 

 

1970년대는 1960년대의 왕성했던 팝의 기운이 한층 꺾이는 시점이었다고 대중음악 역사가 들은 말하고 있다. 1970년 4월 10일 '폴 매카트니'는 '비틀스'의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했다. 1970년대의 팝은 새로운 '비틀스', 새로운 팝 자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그 대안을 제시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리코리쉬 피자>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를 영화의 중심에서 재생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1969년 달 착륙 사건을 자신의 예술적 영감으로 삼아서 혼란과 변화를 구체화한 음악을 발표했다. 스스로를 록스타와 외계인과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인처럼 묘사한 앨범 컨셉은 성공적이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이 보여줬던 이미지 변신의 모델이 '데이비드 보위'에게서 출발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시대와 팝의 흐름이 미치는 영향과 '데이비드 보위'라는 아티스트가 만나 탄생한 1973년의 분위기가 <리코리쉬 피자>를 보며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리코리쉬 피자>의 1973년 속에 살고 있는 1950년대 생인 여자 주인공은 왠지 모르게 2022년의 청춘을 닮아 있다. 현재에는 얇게 펴진 선택지들이 주의를 분산시키고 쉴 새 없이 시간과 관심을 요구하는 그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매 순간 해야만 한다. 운명적 사랑을 할 단 한 명의 사람은 위험부담이 큰 대상이다. 더 나은 후보와 라이프스타일이 가까운 미래에 생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을 상징하는 사랑이나 낭만은 사치이거나 허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이 없이는 '미래'로 가기 어렵다. '지금'을 만들었던 '과거', 행복하고 단순하고 순진했던 평온한 시절로 회귀하는 감정은 '현재'에 충실하고 싶은 욕망을 대변할 수 있다. 1960년대의 '비틀스' 스스로와 그에 열광했던 세대는 그 이전 역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재에 충실하면 되었다. 당대 음악에 온몸을 던지는 마음, 청소년기나 사랑에 빠지는 감정, 비틀스 이후에 새로움을 제시했던 '데이비드 보위'의 1973년은 몰입을 상징한다. 주어진 선택지가 다양했던 여자 주인공은 경험을 통해서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후보를 소거했다. 그리고 끊어진 시간에 스스로 다리를 놓아 현재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전승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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