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연극 '라스트 세션'

글 입력 2022.01.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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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과 골동품이 들어있는 장, 잠시 눈을 붙이기 좋아보이는 소파베드와 견고해보이는 책상, 시대를 암시하는 스타일의 전화기와 라디오, 옷걸이, 의자, 물컵과 주전자가 있는 고풍스러운 서재로 누군가 들어오기를 관객은 숨죽여 기다린다.

 

노년의 배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극이 시작되고, 뒤이어 젊은 배우가 문을 두드리면 남은 극은 오로지 이 두 배우의 설왕설래로 채워진다.

 

<라스트 세션>은 20세기 최고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의 대화로 이루어진 2인극이다. 이 둘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영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이 확정되던 1939년 9월 3일 런던, 프로이트의 서재에 루이스가 초대를 받아 만난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전개된다.

 

 

 

왜 프로이트와 루이스인가?


  

이 극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Mark St. Germain)이 아맨드 M. 니콜라이(Armand M. Nicholi, Jr.)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The Question of God'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둘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지점은 바로 기독교와 '신'이다.

 

신이 존재하는가? 신이 필요한가?

 

어쩌면 영원히 시간을 주어도 끝을 보지 못할 이 주제로 두 사람은 90분간 뜨거운 논쟁을 벌인다.

 

과학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 정신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일종의 '집단 강박신경증'이다. 그가 극에서 한 말을 인용하자면 "기독교는 모든 사람들을 유치원생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어딘가에 의존하는 것이고, "스스로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으면서도" 뒷좌석에 끌려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편 루이스는 한때 무신론자였지만 회심하여 다시 신앙을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변증론으로 수많은 기독교인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누구보다도 신의 존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인물로서 그는 프로이트에 팽팽히 맞선다. 그가 프로이트에게 했던 말 중에 이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과학에서는 모르는 것, '아직' 설명하지 못한 것에 관대하면서, 종교에 있어서는 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느냐'는 질문.

 

그들의 난해한 논쟁은 종교자유국가에서 비기독교인, 비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이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신, 혹은 자아와 인간을 넘어선 거대한 존재, 죽음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토론이다. 이 희곡의 원작자와 극작가가 왜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두 인물의 가상의 만남을 주선했을지 극을 보면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나 역시 이 둘의 치열한 토론을 관전하며 실시간으로 마음이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기울었고,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 좋은 두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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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텍스트를 무대 위로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같은 극


 

인물들의 대화로만 가득 채워진 극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그냥 텍스트로 읽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다. 극은 시간의 지배를 받기에 다시 되돌려볼 수 없고 때로 그 의미를 채 소화하기도 전에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스트 세션>은 이러한 형식의 공연이 텍스트를 육성으로 듣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쟁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들의 철학이 그저 탁상공론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들의 생각이며 살고자 하는 사람의 투쟁임이 생생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역시 배우와 연기의 힘이었다.

 

텍스트가 아닌 프로이트라는 사람의 실제 모습이 냉철하고 논리적인 스타일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과 달리, 극에서 프로이트는 약간은 괴팍하지만 농담도 잘 던지고 때로는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는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대본과 연출, 그리고 프로이트 역을 연기한 오영수 배우의 해석이 합쳐져 만들어진 캐릭터였을텐데,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오히려 차가워보이는 쪽은 루이스였다. 뿔테 안경을 쓰고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수트를 갖춘 그는 예의 바르지만 딱딱한 말투와 태도로 프로이트에게 패기 있게 덤빈다. 전박찬 배우는 자신이 존경하지만 저서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던 선배 거장에게 논리로 맞서는 젊은 교수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특히 논쟁에 지지 않으려 경계하고 때로 날을 세우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이트와 가까워지는 과정의 디테일한 묘사가 몰입감을 높였다.

 

두 사람의 대화 도중에도 구강암을 앓고 있는 프로이트는 고통에 힘겨워한다. 전투기가 날아오고 공습 경보가 울릴 때 두 사람은 모두 공포를 느끼고 우왕좌왕한다. 이처럼 사람은 결국 혼자이며 자신의 자아로 홀로 서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로이트도 노화와 질병, 전쟁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의지해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몇 차례 있었다. 두 인물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친밀해지며, 경직된 태도로 프로이트를 대하던 루이스도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돕게 된다. 지적 견해와 가치관의 차이와는 별개로 그들이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게 되는 과정은 결국 모든 사람은 타인 없이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일깨우며, 또 그럼에도 프로이트는 인간으로서 정신과 자아의 독립을 꾀했던 거장이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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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세트의 모든 소품들이 적절히 활용된 것, 그러니까 대사 외의 부분들이 극을 더욱 생생히 만들어주었던 것도 좋았다. 가장 중요했던 소품은 역시 라디오. 처칠 총리의 참전 연설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은 극의 틈을 파고 들며 이 둘의 대화가 전쟁을 목전에 두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둘의 대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부분도 이 라디오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라디오는 전쟁 소식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뉴스 사이에는 음악을 틀어주는데, 프로이트는 전쟁 소식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면서도 음악만 나오면 라디오를 급히 꺼버린다. 이를 이상히 여기는 루이스에게 프로이트는 음악을 싫어한다고 고백하며 그 이유는 음악에 감정이 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루이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불가해한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석과 분석이 가능한 것만을 믿으려 애쓰는 프로이트와 그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루이스의 입장 차이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상황이었다. 루이스가 떠나고 홀로 남은 프로이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끄지 않고 가만히 들어보는 장면까지, (하필 그 음악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둘의 입장 차이와 그의 화해 가능성을 동시에 시청각적으로 보여준, 오직 무대 위에서만 온전히 구현 가능한 소재였다.

 

그 외에도 신을 믿지 않는 프로이트가 전세계에서 수집한 고대 종교 유물과 같은 역설적인 소품을 극 중에서 언급하였던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작은 방 하나일 뿐이지만 인물들이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침대에서 문으로 활보하며 극에 생기를 넣었고, 그들의 움직임이 갈팡질팡 오가는 인물들과 관객의 머릿속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공연을 보고 나와서 함께 본 친구와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재밌는 점은 기독교인인 친구는 오히려 프로이트에 손을 들어주었고, 나는 루이스에게 더 마음이 기울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이유없이 끔찍한 고통, 예를 들면 질병이나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고 프로이트가 묻자 루이스는 고통을 통해 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답하는 부분이 있다. 친구는 고통에 대해 종교에서 설명하는 방식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는 행복할 때에는 신이 필요 없지만, 고통은 신을 더 명확히 느끼게 한다고 한 루이스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신이란 건 꽤 이기적인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극은 어렵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대화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신이라는 기댈 존재가 없을 때 회의주의에 빠지는데, 여기서 끌어내어 삶을 이끌게 하는 것이 바로 '유머'라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극은 논쟁이 한창 과열되어 있을 때 적절한 재치로 무거움을 한 스푼 덜어낸다. 특히나 여기서 '오징어게임' 오영수 배우의 노련하고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했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두 배우 모두 그 긴 대사를 암기한 것도 대단했는데 정확한 딕션과 발성으로 내용을 빈틈 없이 전달했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극이 끝나고 기립 박수를 받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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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떠나고 조명은 프로이트를 비추고 며칠 후 프로이트가 사망한다는 이야기를 화면에 띄우며 극은 막을 내린다. 제목이 '라스트 세션'인 이유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결국 마지막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린 셈이다.

 

결론이 나지 않는 긴 대화를 우리가 듣고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극은 프로이트의 입을 빌어, 답이 없는 질문이라 할지라도 논쟁조차 하지 않는 건 더 큰 문제라는 꽤 명료한 메시지를 전한다. 나와 친구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던 것처럼, 공연을 보고 나온 다른 사람들에게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쟁이 지속되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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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초연된 <라스트 세션>은 2년간 롱런 공연을 이어갔으며, 특히 2011년 오프브로드웨이 얼라이언스 최우수신작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대형 상업공연에 비해 보다 예술성 있는 작품을 상연하는 극장을 가리키며, 이곳에서의 인정은 곧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 받았다는 의미와 같다. 2020년에 한국에서 초연되었으며 뜨거운 관객 반응으로 2022년 프로이트 역에 신구, 오영수 배우, 루이스 역에 이상윤, 전박찬 배우로 다시 돌아왔다.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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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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