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가는 지배와 해방 때문에 글을 씁니다 [도서/문학]

이청준의 「지배와 해방」
글 입력 2022.01.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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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성적으로 하는 것에 매몰되면서도, 내가 왜 매몰되는가를 물어야만 하는 존재다. 존재를 묻는 행위는 그 존재의 위협과도 직결될 만큼 위험하면서도, 동시에 해결해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몇몇은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느라 밤을 지샌다. 이 행위에 특히 기민한 존재가 예술가다. 작가는 왜 글을 써야 하는지 물으며 화가는 왜 그려야 하는지를 묻고 조각가는 왜 돌을 깎아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예민함을 선망한다. 마침표를 찍으면서도 쉼표를 고민하고 살아짐과 사라짐 그 사이를 갈등하는 것. 창작이 배설행위는 아닌지를 걱정하는 것. 몰입과 매몰을 구분지으려는 것. 센서라도 달린 양 보이는 모습들은 무턱대로 말을 뱉어내는 거만함과 거리가 멀다.

 

이청준은 그런 면에서 꽤나 선망될 인물이자, 예민하며 인간 존재의 섬뜩함을 그려내는 작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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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엔 고서가 많다. 요즘 언어와 말과 문학의 본질을 다루는 글을 즐겨 읽는데, 김애란 [침묵의 미래]를 읽고 싶어 찾았다가 여느 책들보다 많이 낡은, 종이가 삭아버린 책을 발견했다. 그렇게 읽게 된 것이 이청준의 단편집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이었다.

 

그 중 [지배와 해방]을 말해볼까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든지... 정반대의 개념을 제목에 배치한단 건 제법 대담한 행위다. 다소 거창한 어휘기도 하다. 글은 정훈의 강연과 지욱의 녹음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정훈의 강연 주제는 다름 아닌 '작가는 왜 글을 쓰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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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괄하자면 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지욱의 말 감금 행위이고, 둘째는 정훈의 소설 해방 행위다. 지욱은 말의 진실성을 믿는데,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하고 도무지 책임지질 않는 세상에서, 건 수 하나라도 잡아보자, 나라도 허황된 말을 감금하여 세계의 허구를 줄여보자, 하며 강연과 시위, 대회 등등 말이 있는 곳을 쏘다니며 녹음 테이프에 모조리 담는다.

 

그런 지욱이 정훈의 강연을 녹음하게 된 건, 정훈이오랜만에 만난 말의 진실성을 설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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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은 작가는 필연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도태된 존재라 말한다. 자신을 도태시킨 현실 세계에 복수하기 위해, 다른 세상을 창조하여 '지배'하는 것이 작가의 글 쓰기 행위라 정의한다. 핵심은 복수에서 지배로, 지배에서 해방으로의 확장이다.

 

독자도 읽을지, 즉 작가의 세계에 동조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동조를 얻기 위해서라도 삶의 진실이 담긴 세계를 창조해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세계에 동의한 독자들을 가짜 세계에서나마 지배하고, 이를 통해 다시 현실의 자유를 조망하며 독자뿐 아니라 작가 자신마저 해방시킨다고 이야기한다.

 

부조리로부터 모두를 해방해내는 존재. 혁명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며, 여느 시민운동가도 아니다. 단순히 현실세계에서 고립과 외로움을 느낀 사람이 삶의 진실을 설파하고 조명하게 되는 것, 그것이 글을 쓴다는 행위이며, 행위자가 곧 작가인 것이다.

 

글을 읽고 나면 모순되는 두 개념의 양립이 가능함을 이해할 수 있다. 지배와 해방.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순수한 지배욕이야말로 허위의 말이 가득한 세계에서 해방할 수 있는 힘이다. 물론 여전히 정훈이 뱉은 말을 수호하는 존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지욱은 또 정훈의 말을 감금하기에 이르렀다. 조금 다른 감상과 울림을 갖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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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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