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곳의 지구온난화 - 기후의 힘

기후의 힘은 어떻게 한반도의 문명에 영향을 미쳐왔는가
글 입력 2021.12.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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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에는 세상이 이렇게 무너지나 싶을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폭우가 내렸다. 비가 멈추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기억하냐면, 나는 여름동안 잠시 에어컨 상담원이 되어 일하고 있었다. 에어컨으로 유명한 그 회사는 여름이면 전화량이 폭발해 대학교와 연계해 ‘인턴십 수료증'을 명목으로 학생들을 값싸게 부렸다. 다년 간 학생들을 교육해 온 에어컨 강사님은 푹푹 찌는 날씨는 에어컨 수리 접수가 많은데 수리기사 인력이 부족해 고객에게 방문 일정 지연 양해를 구할 일이 많을 거라고 주의했다. 고객의 사정이 정 딱하면 수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을 바꿔줄 수 있냐고 묻는 방법이 있지만 수리팀장들은 일이 바쁘기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말하지 않으면 짜증을 들을 수도 있다고. 듣기만 해도 겁나고 싫은 갖가지 일들이 예고됐다. 약 2주간의 교육기간 동안에 상담우수사례로 녹음된 통화들을 들으며 상황별 응대방법을 익혔다.


그런데 정작 실전에 투입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6월이었다. 강사님은 이렇게 비가 내려 전화가 안 오는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전화가 빗발친 건 더운데 에어컨이 잘 안 나와서가 아니라 폭우가 내려서였다. 지금 인터넷에 2020년 장마를 검색했더니 ‘6월 24일부터 시작된 중부지역 장마는 8월 16일에서야 끝이나 54일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3년도의 49일을 넘어선 역대 최장 기록’이라고 한다. 부산에서 걸려온 전화에서는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에어컨이 전부 물에 잠겼다고 했다. 뉴스에서 어떤 마을은 둑이 붕괴되고 산사태가 일어나 아예 마을 전체가 잠겼다.


홀로세는 약 46억년 전 지구가 태어난 이후 마지막 빙기가 끝나고 간빙기에 들어서 지구가 따뜻해진 때를 뜻한다. 약 1만 1700년 전부터 현재를 포함하는 지질시대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제 ‘인류세'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여섯번 째 대멸종’이라는 말이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인간의 환경 교란 때문에 멸종된 동식물의 수가 과거 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으로 사라진 동식물의 수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는 백악기에 운석 충돌로 발생한 대형 파충류(공룡)의 멸종 또한 포함된다. 인간이 지구상의 동식물을 멸종시키는 속도가 운석 충돌로 인한 생태계 파괴 속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자연에 대한 인류의 무자비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p.136


에어컨 수리를 접수하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시켰는데 토마토가 들어있지 않았다. 전례 없는 긴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토마토 수급이 안됐기 때문이다. 토마토 없는 햄버거를 먹으면서 본 다큐멘터리(넷플릭스, our planet)에서는 빙하가 녹아 절벽으로 올라간 바다사자가 굴러 떨어져 다치거나 죽었다. 물 밖에선 시력이 좋지 않은 바다코끼리는 본거지인 바다를 바라보다가 끝내 절벽 아래로 낙하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2020년 한반도에 나타난 집중호우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본다. 북극의 이상고온으로 제트기류(상층의 강한 바람띠)의 흐름이 약해지고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남하하면서 우리나라에 장기간 머무르게 됐다. 여기에 우리나라에 머무르게 된 찬 공기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을 만나 장마전선을 형성하면서 장기간 비를 뿌렸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pmg 지식엔진연구소,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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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북극 저 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박정재 교수의 ⟪기후의 힘⟫은 외국의 사례를 차용하지 않고 한반도의 기후 변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지리학자로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 지식과 함께 기후 변화가 문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예컨대 한반도의 인류 거주 역사이다.

 

13만~11만 년 전 아프리카 밖으로 첫발을 내딛은 호모사피엔스는 기후변화로 인해 낮아진 해수면 덕에 아시아로 이동할 수 있었고 만주의 수렵채집민 일부가 3만~2만 5000년 전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또한 한반도 최초의 농경, 화산 활동으로 인한 전대미문의 대기근 등 기후 변화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인간의 문명을 바꿔왔는지 보여준다. 그래프와 생소한 용어로 인해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지만 지루하기만 한 책은 아니다. 한반도 왕조의 성쇠를 기후변화와 연관지어 설명한 부분은 꽤 흥미롭다.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의 재위 기간은 1800년에서 1834년까지였다. *달튼 극소기와 정확히 겹친다. 순조가 왕위에 있던 시기내내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득세로 삼정은 문란했으며 백성들은 곤궁했다. 부패한 관료에 실망하고 지주들의 과도한 수탈에 지친 백성들은 봉기하거나 도적의 무리에 합류했다. 수해와 전염병까지 겹쳐 사회는 크게 혼란스러웠다. 당시 조선 정치의 폐단은 1811년 서북 출신의 몰락양반 홍경래가 평안도에서 사회 개혁을 이유로 봉기하게 된 계기가 된다. 그 여파는 수 십 년간 지속되어 농민봉기나 모반이 끊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815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해 1816년 극심한 흉년으로 이어졌다. (...) 순조가 아버지 정조와 달리 무기력했던 군주로 평가받는 이면에는 기후 변화라는 피할 수 없는 저주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p. 253


*홀로세 후기의 기후 변화를 불러온 주요 요인은 태양 흑점 수의 변화와 화산 활동이다. 태양 흑점 수가 적은 시기를 극소기라고 한다. 달튼 극소기는 1790년부터 1830년까지.


그리고 다시 돌아와 지금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영향 아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뭄, 폭우, 태풍과 같은 이상 기상 현상이 빈번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터전까지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기온 관측상 1880년대 이후로 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다섯 해는 모두 2014년 이후에 몰려 있다. 해수면 상승은 많이들 들어본 몰디브같이 태평양의 작은 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인구의 40퍼센트가 해안으로부터 100킬로미터 이내 지역에 모여 산다. 또한 세계 인구의 10퍼센트가 해발고도 10미터 이하 해안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중국의 상하이와 톈진, 파키스탄의 카라치, 터키의 이스탄불, 일본의 도쿄부터 한국의 제주도까지. 바다사자의 삶을 지키는 건 곧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최근 30년(1987~2017년) 연평균 기온은 20세기 초의 30년(1912~1941년)과 비교할 때 1.4도나 높다. 지구 평균 증가치를 한참 상회하는 수치다. 2010년대는 지난 1900년 이래로 기온이 가장 높았던 순년(10년)이었다. 이 기간의 연평균 기온은 14.1도에 이르고 있다. 최근 30년의 연평균 강수량은 20세기 초의 30년보다 124밀리미터나 많다. 또한 20세기 초에 비해 현재 여름은 19일 길어진 반면 겨울은 18일 짧아지면서 진달래나 벚꽃 등 봄꽃의 개화시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여름 철새였던 왜가리나 백로는 기온 상승으로 텃새화되어 겨울철에도 우리나라 강가에서 쉽게 관찰된다.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등 우리나라 전통 과일들의 재배 적지 또한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아열대성 작물인 벼마저 한반도에서 생산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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