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K-POP이 신화가 아닌 역사가 되려면

강일권 저 『K-POP 신화의 그림자』
글 입력 2021.10.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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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 없는 ‘음악 마니아’인 나는 음악에 관한 모든 콘텐츠를 즐겁게 향유하지만 단 하나, 음악 평론만은 잘 즐기지 못한다. 기분 좋게 들었던 음악이 저평가를 받아 속상했던 경험들 때문이다. 특히, 한 아티스트를 그의 음악적 역량과는 무관한 연예인으로서의 행보로 장문에 걸쳐 무참하게 힐난한 평론을 읽은 기억이 불쾌하게 남아 있다. 성차별적 표현으로 점철된 문장들은 평론의 본질인 해석과 전달이 아닌 불가역적인 공격과 폭력을 목표한 듯 보였다. 물론 좋은 평론을 읽은 기억도 있다. 뿌옇게 덩어리진 채 피어오르는 감상을 풍부한 지식을 덧대어 활자로 구체화해주는 평론가의 역할에 필요성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도 전문 평론가가 별점을 매기며 곡을 구석구석 해체하는 콘텐츠를 마주하면 여전히 호기심보다는 그것이 암시하는 위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럼에도 개성적인 주관과 문체로 음악을 풀어내고 이야기하는 텍스트는 가치 있고, 흥미롭다. 4분 남짓의 음악에 담긴 형식적 요소와 내용적 요소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음악의 배경에 있는 장대한 역사와 문화를 결부하여 더욱 풍부한 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평론은 그리하여 바람직한 형태를 모색하며 섬세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단순히 듣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음악이 양질의 문화로 자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K-POP이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지며 수많은 아티스트와 대중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방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이 거대한 흐름을 직시할 수 있는 비평의 본질적 기능에 대해 적극적인 고민과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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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신화의 그림자』는 음악 평론가이자 힙합/알앤비 미디어 ‘리드머’의 전 편집장인 강일권 평론가가 K-POP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현재, 맹목적인 찬사에 가려지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책이다. 저자가 일부 매체에 기고한 글과 새롭게 쓴 글을 엮은 이 책은 저자가 주로 다루는 힙합 장르에 관련한 비평과 더불어, K-POP 아이돌 시장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인디 신의 구축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도된 비판적 통찰로 이루어져 있다. 이뿐 아니라, 특정 의도 하에서 음악 용어를 오남용하고 역사를 곡해하는 등 음악의 본질을 흐리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를 교정하고 정확한 시각으로 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전체적으로 음악 비평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더 나아가 비판적 관점이 어떻게 수행되고 실현되어야 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평을 비평하는 ‘메타비평’적 텍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의 활동 영역이기도 한 힙합 비평은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시종 음악과 음악 비평 내부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적 사고를 해체하고자 하는 저자에게 있어 흔히 파격과 저항의 음악으로 일컬어지는 힙합의 본질을 찾는 것은 특히 중요한 작업이다. 논의는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혐오와 차별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국내 힙합 신의 현주소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여, 힙합이 올바른 지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에 대해 힙합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들어 폭넓게 모색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저자의 지적이 중심적으로 향하는 곳은 현재 국내 힙합 신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힙합은 자유’라는 제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제언이 종종 혐오 표현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힙합의 정체성을 궁리하고 새 시대에 발맞춰 진보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태만을 용인하는 데 활용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저자는 힙합이 사실 비흑인이나 성 소수자 등 특정 집단에게는 쉽게 용인되지 않는 폐쇄성과 구속성 속에서 태동하고 발전한 면이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는 본토인 미국에서부터도 변화하고 있다고 밝히며 오늘날 힙합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자유의 정신을 고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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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적은 국내 힙합 신을 주무르고 있는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향한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해당 프로그램은 자본에 종속된 미디어와 PD, 마땅한 기준 없이 방송국으로부터 선택받은 심사위원,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래퍼가 차례로 상하 위계를 이루며 정작 발굴되어야 할 무명 신예들은 가장 아래에서 도외시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표출되는 것은 결국 래퍼의 목소리가 아닌 방송국의 권력이다.

 

이토록 장르 자체가 미디어에 힘없이 흡수되고 있는 실태에 관하여, 저자는 미국 본토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자라 온 힙합이 한국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생기는 균열과 공백을 이유로 든다. 한국 힙합이 미디어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전술했듯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자유로 왜곡된 채 규정된다. 이에 저자는 배제의 대상이었던 퀴어 래퍼들이 단체를 이루어 목소리를 내고, 유명 아티스트가 적극적으로 차별과 소외를 비판하는 등 사회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면서도 힙합 고유의 능동적인 표현 방식으로 위계를 해체하는 해외 힙합의 사례를 통해 한국 힙합이 찾아 나가야 할 대안적 상황을 암묵적으로 제시한다.

 

결국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필요한 담론의 장을 잠식하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지적이다. 저자는 같은 맥락에서 논의를 확장하여 K-POP 아이돌 양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는다. 한국의 아이돌 양성 시스템은 당사자들이 토로하는 정신적·신체적 고통과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팀 내 불화 사건이 방증하듯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집단주의와 강압적인 위계질서에 의존하여 구축된다. 아이돌의 자격은 권위주의 속 완벽한 스테레오타입을 수행할 때 주어진다. 피해자만이 사라지고 문제의 원인은 위계에 의해 공고하게 유지되는 시스템 속에서 세계가 궁금해하는 K-POP의 문화적 정체성은 정작 자국에서도 건강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아이돌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폐단은 상업적인 성공이 쏘아 올린 폭죽 아래 지워지고 만다.…이 문제를 두고 찬양하는 동시에 비판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곧 그들이 비판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33p)
 

 

힙합이 대중화되었다는 이유로 여전히 미디어에 휘둘리는 힙합 신을 상찬할 수 없듯이, 아이돌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엄연히 존재하는 양성 시스템의 폐단을 모른 체할 수 없다. 그러나 권위주의를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체계를 또다시 국가와 언론이 성과주의적인 관점에서 조명하고 드높이는 지금의 형국은 그 폐단을 은폐하는 데 일조한다. 국가적인 대업이라는 명목은 권력이 되어 현재의 위계 구조를 답습하게 한다. 높아진 위상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K-POP이 내실을 다지려면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위계 구조에서 내려와 가려진 곳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성실하게 해결하여 올바른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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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한국의 대중음악에는 어떠한 권위가 필요하며 어떠한 권력이 사라져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서술한 장에서 함축적으로 논한다. 여기서 저자는 한 그룹이 박근혜 정권 탄핵 정국 당시 정권을 겨냥하며 신곡을 공개했을 때 일부 가사가 여성 혐오 표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공연이 취소된 사건을 사례로 든다. 당시 주어진 비판이 잘못된 검열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는 지적이 전문가와 언론 집단에서 제기된 것에 대해 저자는 반대하며, 대중의 주체적인 논의로 인해 음악의 행보가 결정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민주적인 과정의 일환이라고 밝힌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권위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나온다. 권력이 최대한 배제되고 대중의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는 토론장에서 나오는 권위가 다양성을 확보하고 영역을 확장하며 음악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반면, 왜곡된 정보로 대중의 이해를 흐리고 산업의 주도권을 전유하려는 권력은 음악의 발전을 해치기 마련이다. ‘음원 사재기’에 대한 정확한 팩트 체크 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로 섣불리 정보를 전달했던 언론들과 ‘인디’라는 용어를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디 신의 정체성을 곡해하는 관계자들, 정부 산하 심의위원회의 기준에 의해 콘텐츠의 향방이 결정되는 한국 대중음악의 실태 등을 향한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모두 대중적인 공론이 아닌 특정한 권력이 가요계를 이끄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권력의 영향이 줄어들고 대신 담론이 활성화될 때 음악이 전하는 파동은 더욱 넓게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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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의 해체를 강조하는 책의 논의는 평론 그 자체까지 아우른다. 평론의 역할을 ‘예술가의 위에서 그들의 작품에 값어치를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아티스트를 대신하여 좋은 작품에 대한 보증을 서주는 것(109p)’이라고 밝히는 저자는 평론가뿐 아니라 대중의 역할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한다. 평론가의 역할이 음악과 음악 산업의 동향을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면, 언어의 수신자인 대중의 역할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감상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위계에 종속되지 않은 수평적 관계 속에서 아티스트와 대중, 평론가가 역동적인 의사소통을 할 때 음악의 힘은 더욱 커진다.

 

어렸을 때부터 생활처럼 즐겨 듣던 한국 가요가 세계적인 콘텐츠가 된 현재의 상황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기적 같다. K-POP은 이제 각계각층이 주목하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K-POP이 이 책의 제목처럼 ‘신화’가 아니라 실존하는 ‘역사’로 남기 위해서는 정부나 방송국이 아닌 실제로 음악을 듣고 즐기는 청취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한다. 누구도 소외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치열한 대화 속에서 4분 남짓의 음악은 시대에 새겨진다.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K-POP의 파도가 시간이 흘러도 모두에게 실재하는 역사로 뚜렷이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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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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