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술가 - 예술가의 일 [도서]

글 입력 2021.09.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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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 예술가


 

‘예술가’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예술가를 떠올리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눈으로 일상의 순간, 꿈속의 장면을 포착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물론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고, 음악과 그림, 영상과 텍스트, 다양한 장르로 말한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마주치는 일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나 학생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로 느껴진다는 점이 독특하다. 즉,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예술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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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예술가의 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그들의 ‘일’로서 조명한다. 사무실에서, 혹은 업무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차근차근 수행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지닌 가치는 무엇인지, 나를 성장하게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예술가 또한 그만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수행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예술가의 일>은 데이비드 보위, 프리다 칼로, 장국영 등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33명의 예술가를 이야기한다. 그들 중에는 행복하고 순탄한 삶을 산 이도 있지만, 갖은 풍파에 시달리며 고되고 외로운 삶을 산 사람도 많았다. 세상의 방해에도 왜 자신의 일인 예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어갔는지, 일이 주는 기쁨과 괴로움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술의 의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일은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다.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찾지 말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세상이지만, 매일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단순히 생계의 수단으로만 만족하긴 어렵다. 일터에서 내가 기울인 노력의 과정과 결과에서 얻는 보람, 매일 조금씩 발전한다는 성취감이 중요할 것이다.


예술가들도 기본적인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했지만, 일의 목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일, 예술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보이는 일은 마음속에 응어리진 말을 표현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기쁨을 공유하는 매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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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에게 음악은 자유의 표현이자,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는 보헤미아에서 비주류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느끼며 살았다. 가족의 연이은 죽음과 불안정한 결혼생활로 그의 외로움은 깊어져만 갔다.


그럼에도 말러는 “언젠간 내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또 “나는 교향곡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러는 고전음악에서 굳건히 지켜온 규칙을 깨뜨렸다. 유명한 민요를 장송곡으로 편곡하기도 했고, 난해하고 복잡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이해하기 어렵고,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언뜻 들으면 세상을 향한 비뚤어진 마음, 분노와 절망만이 느껴지지만, 한 겹 벗겨내면 이 세상에 한 사람으로 소속되고 싶은 그의 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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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생일>, 1915

 

 

마르크 샤갈에게 그림은 사랑의 언어였다. 샤갈은 평생 벨라 로젠펠트, 한 여성을 사랑했다. 벨라가 샤갈의 생일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모습을 보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몸이 공중에 떠올라 벨라에게 입 맞추는 <생일>에서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 불운이 깃든다. 벨라가 지병으로 먼저 눈을 감았다. 샤갈은 벨라를 잃은 슬픔에 그렇게 사랑하던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슬픔 속에서도 시간은 흘렀고, 샤갈은 조금씩 마음을 회복한다. 벨라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을 회상하면서 사랑이 깃든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니스에 있는 샤갈 미술관에 갔을 때, 그의 그림이 가득한 실내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붉은빛 그림들 앞에 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A Vava, ma femme, ma joie et mon allégresse

나의 기쁨이자 나의 환희, 나의 사랑하는 아내, 바바를 위하여


그의 일, 예술은 아내와 세상에 대한 사랑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인생의 파도


 

책은 예술가들의 일과 함께 그들의 생애를 압축해 들려준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파도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생에 꼭 필요한 순간 적절한 파도를 만나고, 그 파도의 리듬에 맞춰 잘 올라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파도는 운 만으로도, 노력만으로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든든한 후원자는 분명 중요한 파도다. 후원자들은 신인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그들에게 내재된 가치를 발견하고, 마음껏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과 미술계 인맥을 동원한 홍보 활동을 통해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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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페기는 예술을 사랑했다. 다양한 작가의 예술 작품을 사 모았고, 작품이 주는 감동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갤러리를 열었다.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작품이 훼손되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운반될 수 있도록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실었고, 예술가들의 탈출 또한 도왔다. 그중엔 당시 빛을 보지 못했던 초현실주의 작품이 많이 있었고,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을 발견해 후원하기도 했다.


페기는 예술을 단순히 투자의 수단으로 생각한 컬렉터가 아니다. 예술을 대중과 함께 향유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 덕에 수많은 예술가와 작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예술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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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엘뢰서 박사에게 보내는 자화상, 1940

 

 

반대로 사는 내내 무수한 시련을 겪은 예술가들도 있었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프리다 칼로의 삶도 고통과 슬픔이 가득했다. 프리다는 소아마비가 있었고, 심각한 교통사고로 쇠 파이프가 몸을 관통했다. 이로 인한 후유증이 지속되었고, 아이를 바랐지만 세 번이나 유산을 했다. 유산으로 고통받는 중에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삶에 끊이지 않는 고통의 순간을 프리다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홀로 삼켜야 했던 고통을 상처 난 자신의 자화상으로 그려냈다. 그림을 통해 상처가 모두 아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고통을 세상에 드러내고 분명히 지켜봐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였다.


프리다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그럼에도 여성의 사회생활을 비롯한 예술 활동이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 탓에 프리다는 디에고의 아내로 더 유명했다. 오늘날 프리다의 그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기념비적인 작품인지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술가의 일>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의 일과 생애를 살펴보았다. 그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고, 나의 생애는 어떻게 회고될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아가 예술가에게 각자의 예술이 다른 의미를 지녔듯, 나에겐 예술이 어떤 존재인지 답을 찾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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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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