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세 안경 이야기 ​

글 입력 2021.08.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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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사람마다 다른 선천적 조건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을 알기보다 나 자신에만 관심 있지만, 점차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지닌 특징들과 비교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불규칙한 양치 습관이 있음에도 충치가 생기는 빈도가 낮고, 매일 복합적인 방법으로(기본 양치질과 더불어 치실과 가글 사용 등) 꼼꼼히 이를 닦아도 충치가 생기고 마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타고난 조건의 빈약함에 속상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며 위로를 찾고는 한다.


나는 고도의 근시안을 타고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어린 나이에 안경을 쓰면 사람들은 흔히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를 자주 봤구나' '책을 오래 보았구나' 등의 근시안이 된 '이유'를 생각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8살 이전 기억이 흐릿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는 나에게 없다. 하지만 과연 초등학교를 '입학하지 않은' 혹은 '갓 입학한' 어린아이가 얼마나 눈에 나쁜 환경에 놓였을까 생각하면 '이유'를 찾기보다는 '선천성'에서 원인을 찾는 게 더 합리적인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내 안경의 역사는 렌즈의 도수를 새로 맞추고, 안경테를 새것으로 바꾸면서 철 지난 안경들에 새 안경이 점차 쌓이는 방식으로 흔적을 남겼다. 아쉽게도 초등학생 때 썼던 투명 뿔테안경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지만, 성장한 나에게 더는 맞지 않더라도 보관 중인 안경이 여럿 있다. 그중 현재 내가 사용하는 안경은 세 개이다. 각각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2학년, 대학교 1학년 때 맞춘 것이다.


너무도 익숙한 세 안경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건 '김초엽'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면서였다. 책 속 단편소설 <관내분실>을 읽고 '나를 나타내는 고유의 물건'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살아온 시간을 요약해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안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경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평범한 공산품이지만, 나에게 맞는 도수의 렌즈를 만나고 긴 시간 나의 눈이 되어주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증명하는 안경들이 지닌 특별한 의미를 소개하고 싶다. 안경의 변화는 나에게 시간의 변화를 나타내는 대상이다. 안경 자체가 기억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해당 시점마다 나에게 중요한 고민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재가 생겨남을 나타낸다. 점점 흐릿해지는 옛 기억이지만 그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누리는 것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따금 생각한다. 그때 그 고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이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내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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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자주색 뿔테안경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교복을 입던 중학교 1학년 때 쓰기 시작했다. 현재 쓰는 안경 중에 가장 오래되었고 편해서 외출하고 돌아와서 시계를 풀 듯 안경을 이것으로 바꿔 착용한다. 요즘에는 밖에서 하던 활동들도 집 안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온라인 회의 화면 속에서 이 안경을 착용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유일하게 코 받침이 없는 안경이라 그런지 가끔 콧등을 따라 흘러내리기도 하지만 착용감이 좋아서 드물게 안경을 쓰고 잠드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공부'하면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대학 입시 수험생'일 것이다. 나도 가장 치열하게 공부했던 순간은 수험생 시절이지만, 중학교에 처음 들어온 신입생의 열정도 함께 떠오른다. 나에게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경험하는 중학교 생활은 이전보다 성장한 생활 태도를 요구하는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졌다. 그 생각에 맞춰서 공부를 열심히 한 기억이 있다. 인상적인 하나의 일화는 우동을 먹기 위해 냄비에 불을 올려놓고 수학 문제를 풀다가 우동을 모두 태운 것이다. '공부'라는 고민을 '성실함'으로 해결하려 했던 과거는 현재까지도 어려운 문제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안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향유하는 영상 자료 관람/탐색의 시작이 이때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 나는 하나의 드라마 시리즈를 좋아하는 열렬한 애청자였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시즌제로 방영한 미국 드라마였는데,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틀어주신 한 영상으로부터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해외 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배우가 생겼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영상을 찾다 보니 정보 탐색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던 것 같다.

 

 

둘.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철테안경


몹시 편한 안경을 두고 새로운 안경을 맞추게 된 건 당시의 유행과 나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듯 당시 학교에 둥근 철테안경을 쓴 친구들이 전보다 많아지고 있었고, 나도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껏 안경을 쓰면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디자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학교 앞 안경원에서 직접 고른 안경은 요즘도 외출할 때면 착용하는 나의 필수적인 물건이 되었다. 철테안경을 만났을 당시는 입시를 앞두었기 때문에 공부에도 열중했지만, 친구 관계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리하던 때였다.


전에는 친구를 '어떻게 사귈까' '어떻게 하면 친해질까'에 대한 탐구를 했다면, 이때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현재 나와 친한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이미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관계 때문이 아닌 물리적 거리가 생겨나면서 친했던 사이가 자연스레 멀어진 경험을 한 후였지만, 고등학교 졸업은 그 규모가 다르게 느껴졌다. 각자가 지원한 학교에 따라 진학할 학교가 달라지고, 선택한 전공에 따라 공부하는 분야가 달라진다. 한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경우 그나마 약속을 잡고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간혹 해외 대학에 입학하는 친구는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과 달리 멀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 관계에 대해 깊은 생각을 이어가던 때,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고 그 경험을 노래에 녹인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험을 앞두면 어떤 아티스트의 앨범 하나를 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었지만, 한 명의 아티스트가 활동하면서 쌓은 디스코그래피를 살피며 '좋아하는 가수'의 개념을 처음 도입되던 시기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확장되어 내 의지로 첫 티켓팅을 해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간 것도 이때이다. 과거부터 부모님을 따라 음악 페스티벌, 콘서트, 쇼케이스 등 생생한 음악을 경험해본 적은 있었으나 내가 원해서 간 콘서트는 당시가 처음이라 큰 의미가 있다.

 

 

셋.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검은색 뿔테안경


두 안경으로도 평안하던 나의 생활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수험 생활을 보내면서 눈앞에 놓인 책을 보느라 몰랐던 새에 나의 시력이 교수님의 판서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또렷한 시야를 얻기 위해 새 렌즈로 교체하면서 가장 대중적인 검은색 뿔테안경으로 안경테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날의 선택은 일부 실수였던 것 같다. 첫째는 중학생 때 쓰던 자주색 뿔테와는 달리 코 받침이 있는 상품이었는데 코 받침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둘째는 도수를 급격히 높였는지 두 시간 이상 착용하고 있으면 어지러움을 강하게 느껴서 오래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내가 선택한 전공 수업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미래에 대해 더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생겼다. 언젠가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고등학생 때까지는 '미래' 하면 먼저 대학이 떠올랐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일하게 될지의 문제는 대학 입학 이후로 미뤄두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대학에 왔으니 넓고 다양한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그러는 중에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공연 관람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것은 대학생이 되던 겨울이었다. 이전에도 관람한 극이 두어 번 있었지만 모두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20대가 되어서 처음 친구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소극장 극을 시작으로 어떤 특별한 사전 정보 없이 '줄거리'만 보고 작품을 선택해서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선 공연들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점차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연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새 안경은 도수가 높아 오래 쓰기에는 불편해도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을 한 번 놓치면 다시 볼 수 없는 순간의 미학이 담긴 연극/뮤지컬 공연을 볼 때는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사람마다 삶을 살며 이루고 싶은 목표가 다르다. 누군가는 풍요로운 삶의 여유를 원하고, 다른 누구는 명예로운 직업으로 사는 뿌듯한 삶을 원한다. 개인이 생각하는 만족스러운 삶, 성공한 삶의 모습은 다르다. 나의 경우는 일상에서 언제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고민을 안경 바꾸는 순간마다 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지식을 얻는 탐구,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 미래를 계획하고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고민하는 태도. 이것들을 적절한 시간대에 생각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삶을 위해 나에게 꼭 필요한 또 다른 조건은 바로 문화예술이다. 집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상 자료, 언제 어디서나 나의 기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음악,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공연을 순차적으로 내가 다룰 수 있는 영역에 채워 넣었다는 것이 기쁘다. 어떤 마음이 어려운 순간에도 나를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을 안다는 것은 행복을 찾는 일에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내가 언제까지 안경을 쓰는 삶을 살지 모르겠다.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안과 수술대에 오르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아마 안경을 쓸 것 같다. 지금은 필요에 따라 교체하면서 세 안경으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새 안경이 교체 대기 순서를 받을지도 모른다. 발생할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전 경우처럼 나에게 새로운 고민과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남은 시간 깨끗하게 착용해서 언젠가 이 안경으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인생을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분명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나의 안경이 내가 '관내분실'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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