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오나 배너 aka 더 배니티 프레스: 프라나야마 타이푼展 [미술/전시]

‘허영의 출판사’ 피오나 배너
글 입력 2021.08.20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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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배너(Fiona Banner)(1966)는 영국에서 조각, 드로잉, 설치 및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여 작업하는 예술가이다.

 

작가의 이름 뒤에는 더 배니티 프레스(The Vanity Press)라는 호칭이 붙여져 있다. 이 뜻은 ‘허영의 출판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럼 출판사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그의 작품을 통해 확연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텍스트들과 출판물이다. 즉 그는 텍스트를 다루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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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기 작품은 Top Gun과 Apocalypse Now를 포함한 할리우드 전쟁 영화의 프레임 단위 동작을 텍스트로 풀어 쓴 `단어풍경(wordscapes)`, 정물(stil film)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텍스트들은 장편 영화나 일련의 사건을 자신의 언어로 나타낸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영국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는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와 같은 국제적인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동시대 작가이다.


대표적으로 Top Gun(1994)을 살펴보면 캔버스 종이에 흑연으로 쓴 무수히 많은 텍스트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1994년 영화 Top Gun의 영감을 받아 시작된 배너의 필사본이다. 이러한 작품은 실제와 상상의 사건이 허구화, 신화화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베트남 전쟁 영화를 기반으로 한 작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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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기획된 전시 《프라나야마 타이푼(Pranayama Typhoon)》는 동시대에 다뤄야 할 인간의 갈등, 욕망, 소통의 실패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파괴적인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 내부는 마치 전쟁터에 온 것 같은 소리와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전쟁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 세대도 간접적으로 그 전쟁의 공포를 느끼게끔 해준다. 이번 전시는 배너의 아시아 첫 개인전인 만큼영상, 회화, 설치 작품 등 총 14점의 신작을 최초로 선보였다.


전시 제목은 프리나야마(Pranayama) + 타이푼(Typhoon)이 결합한 단어이다. 여기서 프리나야마는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호흡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이푼은 자연의 대재앙 현상이자 전투기 이름이다. 호흡법과 전투기의 이름의 합성어는 결국 예측 불가하고 파괴적인 자연의 힘과 인간의 호흡 사이의 충돌을 의미한다.


필자는 전시장에 들어서 가장 먼저 보인 작품인 마치 거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듯한 거대한 전투기 설치물이 자리 잡고 있다. Palcon(2021)은 새의 부리와 날개의 형태 그리고 조류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매’의 이름을 모방했다고 한다.


매는 적을 재빠르게 공격하고 날렵한 동물이다. 이 작품은 ‘매’의 이미지에 비해 천천히 부풀고 가라앉는다. 이러한 동작들은 마치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미끼 전투기는 공포를 주기보단 오히려 코로나 시대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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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오른편엔 ISBN 978-1-913983-05-5이란 알 수 없는 암호로 된 <항문을 가진 신들 GODS WITH ANUSES (ISBN 978-1-913983-05-5)>(2021) 작품이 있다. 작품의 위치도 흥미롭지만, 제목도 흥미가 있게 한다.

 

작가는 ISBN 978-1-913983-05-5 하에 출판물로 등록했다. 이 번호는 출판물로 등록되면 부여되는 번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죽음에 저항하지만 결국 소멸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엔트로피의 자아이며, 인간과 동물 모두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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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간과 전투기의 신체를 지시하는 작품 제목을 통해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인간의 집착과 허영심이 내재한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며 언어를 잘 활용한 배너의 생각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있었다. 제목에서 ‘Auses(항문)’라는 단어이다. 라틴어로는 질병, 전쟁 따위가 일어난 ‘그 해 사건’을 뜻한다.


질병이나 전쟁은 모두 인간의 작은 이기심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그 예시이다. 산업사회가 도래하며 우린 편리함을 얻었지만, 지구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우리의 이기심이 언젠가 이 묘비명 같은 작품처럼 다가올 날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각심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바로 옆에 <프라나야마 오르간Pranayama Organ>(2021) 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바닷가에 전투기 두 대가 이동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두 사람의 제의적 퍼포먼스이다.

 

이 작품은 불길하고 엄숙한 오르간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쳐 흘러나온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이 생명체들이 가져올 종말론적 징조를 예언하는 작품이다. 앞서 본 작품들과 연계해 관람자에게 지구의 종말, 전쟁 등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무거운 느낌을 더 가중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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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2층에는 배너의 <마침표 Full Stop>(2021) 회화 시리즈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검은 표류물이 그려졌다. 보통 작품을 서서 관람하는 형태였다면 이 공간에서는 편히 앉아서 회화작품들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허영의 출판사' 피오나 배너의 작품들과 호흡을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갈등,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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