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회의(懷疑)에 대한 고찰 [사람]

글 입력 2021.07.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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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자기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한 수많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확신의 태도 아래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믿음들이 깔려있다. '매일 아침에는 해가 뜬다'라는 믿음이 바로 그 예다. 해가 뜨고 지는 근거에 대해 우리는 태어난 이후 학습되었건, 아니면 이미 태초부터 알고 있었건 간에 '해가 뜨고 진다'라는 믿음을 갖고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확신에는 근거가 없다. 철학은 '의심해본 적이 없이 받아들인 믿음들이 과연 정당한 믿음인가?', 즉, '믿음들의 근거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렇게 간주하고 받아들일만한 단단한 근거가 실제로 있었던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필자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 창작의 토대가 되는 불씨를 피워낸다. '만일 내일 아침 해가 뜨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해가 아니라 다른 것이 떠오른다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해가 뜨지 않게 한 것이라면?'과 같은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예술가들은 사유를 확장시키고 자신만의 예술적 안목과 믿음으로 예술적 표현을 해낸다. 그 근간에는 '회의(懷疑)'가 있다. 이렇듯 예술과 철학은 의심하는 마음, 즉 회의를 통해 누구도 던지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많은 학문이다.


 

회의 (懷疑) [명사]

 

1. 의심을 품음. 또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의심.

2. 충분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하거나 중지하고 있는 상태.

3. 상식적으로 자명한 일이나 전통적인 권위를 긍정하지 아니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의심하여 보는 일.

 

출처 :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

 

 

다시 철학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믿음은 즉 의식의 태도이다. 우리는 주로 일상적인 의식의 근간을 둔다. 즉 해가 떠서 밝아진 아침에 일어나고,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차려 먹고,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서고, 일을 마친 뒤 다시 집으로 귀가하는 그 일상적 범위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믿음을 얻는다. 이러한 믿음의 기원은 '오감(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을 통해 전달받음으로써 갖게 되는 지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에서 오는 믿음과 지식을 제외하고도 사유와 논변을 통해 비로소 갖게 되는 믿음군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 바로 데카르트(René Descartes · 프랑스의 철학자)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론을 제시하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이러한 생각을 확장시켰다. 기존에는 '나는 어디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등과 같은 감각적 소여에 기초해서 믿어왔던 것을 데카르트는 반박한다. 나 - 존재 - 믿음은 감각적 경험에서 비롯될 수 없고, 비롯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며 감각에서 믿음을 얻었다면 정당하지 않은 믿음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그는 일반적인 것에 대한 지식 또한 의심하며 결국에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수학적인 진리마저도 의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데카르트의 회의론에 의거해 의심을 거듭하다 보면 이러한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우리가 감각에서 얻은 믿음이 만일 전부 거짓이라면?,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세계가 만약 다 거짓말로 꾸며진 것이라면?, 즉, 영화 <트루먼 쇼>에서처럼 세계는 하나의 조작된 가설무대였다면?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문명에서 쌓아둔 지식들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 우리의 모든 일상적 믿음과 학문적 믿음이 전부 허구일 경우, 그 믿음에 상응하는 것들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로 우리는 빈 깡통을 뒤집어쓴 무지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도서관에 쌓아둔 지식들은 한순간에 종이 쪼가리로 전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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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필자의 이야기를 하자면, 필자 본인은 스스로 굉장히 염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허무주의적이고, 회의적이고,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일렬의 이야기들에 끌림을 느끼고, 필자의 예술적 활동 또한 그러한 색채가 강렬하다.

 

한때 필자는 삶에 대한 회의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심리적,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가 있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듯 필자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은 종종 삶에 대한 의심과 답 없는 질문을 이어가며, 결국 너무나 극단적인 회의의 위험 속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예술가는 예술의 가치 따위와 예술가 본인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첩첩산중의 산속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메아리만 외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오늘날 필자에게는 변치 않을 믿음 한 가지가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목적 그리고 철학의 목적, 머지않아 예술의 목적, 결국 필자의 목적은, 이러한 극단적인 회의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학, 그리고 예술은 회의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보지 못했던, 혹은 보려 하지 않았던 믿음의 밑바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심연 속 도처에 널린 출처도 불분명하게 가득 찬 것들에 대해 사유하며 부조리함을 발견해낸다. 표면적인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근원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해방도, 자유도, 창의도, 혁신적인 그 무엇의 것도 이룰 수 없다. 껍데기같이 빈약한 인간 삶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철학과 예술을 통해서 '살을 찌우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예술가(철학가)에게 있어서, 더 나아가 삶을 살아가며 한 번쯤은 삶에 대한 의심을 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회의'하는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테카르트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의심하여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로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인 것이다. 사유의 내용은 의심할 수 있어도 사유한다는 사실과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존재는 틀림없이 있어야 한다.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가? 여기서 나는 발견한다.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만이 나와 분리될 수 없다. 나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얼마 동안? 내가 사유하는 동안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유하기를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정확히 말해 단지 하나의 사유하는 것, 즉 정신, 영혼, 지성 혹은 이성(REASON)이며, 나는 참된 것이며, 참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것일까? 나는 말했다. 사유하는 것(A THINKING THING)이라고.

 

르네 데카르트 <성찰> (1641)

 

I am, I exist -- That is certain. But for low long? For as long as I am thinking. I am, then, in the strict sense only a thing that thinks; That is I am a mind, or intelligence, intellect or REASON, but for all that I am a thing which is real and which truly exists, but what kind of a thing? As I have just said A THINKING THING.

 

 

어딘가에서 '시인이란 현대인이 바쁜 일상 속을 달리며 떨어뜨린 것들을 주워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필자는 이 말에서 왠지 모를 일종의 사명감 따위를 느낀다. 필자는 익숙한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유하고, 번민하는 것이 예술가(그리고 철학가)의 덕목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열하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회의'하며, 결국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

 

내일 아침에는 해가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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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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