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 너 술 못 마셔...? 그럼 다음에 보자 [사람]

주류 문화를 빙자한 나의 한탄
글 입력 2021.07.0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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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한민국에서 음주 문화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대한 글임과 동시에 앞으로 몇 년간 어떤 상황에서도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나의 이야기이다. 올해 봄부터 치료 목적으로 복용하고 있는 약 때문에 알코올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음료수나 음식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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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까짓 거 안 마시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던 나는 평생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시간들이 망가지는 느낌마저 받으며 우리나라에서 주류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나는 모든 분야에서 굉장히 적극적인 사람이다. MBTI로 말하자면, '모임에 못 가는 것을 가장 슬퍼하는 사교계의 대장' ESFJ이다. 현재 내가 하는 활동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많으며, 따라서 그 안의 술자리는 코로나 시국만 아니었다면 일주일을 다 채우고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딱 세 번까지 술자리를 나간 후 바로 단체에 어울리기를 포기했다.

 

대학생들에게 술은 마치 인스타그램 아이디 같은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주량 얼마에요?', '마셔라!', '의리주' 등을 두어 번 하다 보면 어느새 절친과 다름없는 사이가 되어있다. 술자리 인연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말하지만, 다음 모임에서 술을 같이 나눠마신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극명한 차이가 있다.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최대의 텐션을 올려봐도 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제외하고 술값을 계산해야 했고, 나는 그저 웃으며 맞장구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부르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거듭 사과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도 내심 내가 불편했을 것을 이해한다. 술을 마실 수 있었던 스무 살 때의 나도 술 한 번 마신 동기와 선배들이랑은 바로 친해져 놀러 다녔기 때문이다. 술자리에 없었던 사람과는 어색한 사이였기에 굳이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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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술자리를 사랑했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취해서 속 이야기를 터놓고,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좋았다. 20대들에게 술은 사실상 특권이고 그 나이에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이다. 거기서 배제되는 사람은 다르게 말해서 수많은 인간관계와 공유한 추억을 잃는 것이다.

 

'염따빠끄', '진로 두꺼비' 등 주류 업계도 MZ 세대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억지로 끌려가 하게 되는 술자리보다 20대가 주류를 문화로 소비하는 세태가 증가한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내가 활동하고 있는 기업의 대외활동에서는 주류와 아티스트 간 콜라보를 내면서 2030 세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다들 직접 시음하고 후기를 올렸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또한 광고 동아리에서 주류 브랜드를 마케팅하며 술자리를 가질 때도 끼지 못했다.

 

왜 사람들은, 옛날의 나조차 포함하여, 술을 사랑하는 것일까. 쉽사리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서 술은 그 불편한 과정을 건너뛰게 해줄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술 취해서 그랬어'라고 하면 대부분의 실수가 용서되는 상황에서 술자리 한 번이면 사람들은 굳이 상대를 알아가는 데 깊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20대가 노는 방식은 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미성년자의 학창 시절 추억은 성인들의 술자리 기억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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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과 헤어졌을 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울고 싶은데 창피할 때,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어색할 때, '우리 술이나 먹을래?'. 모두 이렇게 물어보지 않는가.

 

오늘도 인스타그램을 넘겨보다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는 사진을 보았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모임의 팀원들이 첫 술자리를 가진 것도 스토리에 올라왔다. 만약 내가 술을 마실 수 있었다면, 새로운 사람들과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에 눈물이 났다. 낮에 만나도, 다른 목적으로 만나도, 결국 끝은 항상 '술'이었다. 이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단계, '술자리'.

 

사실 나와 같은 이유로 술을 먹지 못하게 된 사람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안녕하냐고, 당신들 곁에 있던 사람들은 떠나가지 않았느냐고. 나는 내 20대가 이렇게 저무는 것이 허망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술'의 의미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냥 수학여행이나 MT같이 20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교계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이 만나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모이면 사람들이 만난다.

 

언젠가 내가 술을 마실 수만 있게 된다면. 결론을 어떻게 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술을 마실 수 있는 당신이 부럽다. 왜냐하면 오늘도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친해지고 싶은데, 술 한잔 어때요?'라는 말이 나왔을 때, 혼자 '아, 저는 술 못 마셔요'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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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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