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는 것은 [문화 전반]

아네모이아(Anemoia)
글 입력 2024.01.2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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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댓글 중에 ‘Nostalgia is the most beautiful form of pain’이라는 인상적인 댓글을 봤다. 노스탤지어(Nostalgia), 즉 향수병이 여러 통증 중 가장 아름다운 통증이라는 의미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간혹 가슴 깊숙한 곳에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을 일으키고 이것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댓글이 달린 영상은 기억 저편에 쌓인 오래된 노래들을 모아 놓은 플레이리스트였다. 해당 댓글 이외에도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Good Old Days'라는 댓글들이 줄이었다.


생생했던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 서서히 풍화되며 잊힌다. 행복했던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모든 기억은 시간의 흐름 앞에 공평하게 희미해지다 깊숙한 곳에 추억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묻힌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기억들을 바탕으로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아픔을 느끼며 살아간다.


뉴스를 보다가 ‘아네모이아(Anemoia)’라는 신기한 개념을 알게 되었다.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뉴스의 내용은 이랬다. 요즘 청소년들이 천만화소 미만의 성능을 가진 구형 디지털카메라를 구매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청소년들이 겪어보지 못한 윗 세대에 대한 동경과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아이돌 그룹 뉴진스(Newjeans)의 디토(Ditto) 뮤직비디오가 소개되었다. 해당 뮤직비디오를 보면 요즘 뮤직비디오보다 확연히 화질이 안 좋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치 80~90년대 뮤직비디오 질감을 느낄 수 있다. 4K, 8K로 촬영된 영상이 송출되는 시대에 다소 역행하는 뮤직비디오이다. 마치 고음질의 음원에서는 들을 수 없는 LP판 특유의 잡음들을 시각화한 뮤직비디오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디토 뮤직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질감은 촌스럽거나 낮은 퀄리티가 아닌 경험하지 못한 세대를 동경하게 되는 주요한 요소로 보이는 것이다.


SG워너비 이석훈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인 <썰플리>에서도 비슷한 예시를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구형 아이폰 공기계를 구해서 들고 다니는 학생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굳이 구형 아이폰을 구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최신 아이폰들은 자동으로 사진 보정이 들어가지만 과거 구형 모델에는 자동 보정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즉 구형 모델이 나온 시대의 사진들에서 볼 수 있는 감성과 아련함을 담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이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필터를 입힌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의 부모님 세대가 보기에는 이해하기가 힘든 현상이다. 실제로 해당 뉴스를 본 부모님조차 굳이 구형 디지털카메라를 구매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은 당시를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님 세대가 느낀 촌스러움은 그 시절의 낭만으로 포장되어 동경과 아련함의 대상이 되었다. 그 당시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역으로 아련함과 향수를 느끼는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아네모이아(Anemoia)


 

아네모이아, 특정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그리움, 아련함에 기반한 동경을 느끼는 감정상태를 의미한다. 감정 상태를 의미하기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네모이아의 핵심 키워드는 ‘경험하지 못한’과 ‘향수’이다. 전제 조건은 해당 시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전무해야 한다. 이런 전제 조건 하에서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다룬 드라마, 영화, 음악 등에 아련함과 그리움을 느낀다.


대표적 예시로 응답하라 시리즈, 20세기 홍콩 영화, 1980년대 일본 버블 시대를 대표하는 시티팝(City Pop)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콘텐츠들을 보고 들으며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느끼고 그리워하고 동경한다.

 

* 시티팝: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유행했던 음악 스타일로 이름 그대로 도회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공통적으로 도회적인 분위기에 세련된 편곡, 깔끔한 연주가 담겨있으며 1980년대 일본 버블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이다.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가슴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나도 부모님 세대가 학창 시절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기억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감정들이 찬찬히 떠오른다. 분명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시대를 반영한 영화나 드라마, 뮤직비디오의 장면들이 조합되어 나도 모르는 없던 추억이 생긴다.


 

 

없는 추억도 만들어내는, 영원한 가객 김광석


 

아네모이아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른 것은 부모님의 대학생 시절에서 볼 수 있는 청춘과 낭만을 담은 영화 <클래식>, <그해 여름>, <시월애>,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이 떠올랐다. 이외에도 그 시절의 낭만과 청춘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담은 산문시와 같은 유재하, 이문세, 김광석, 산울림 등의 노래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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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영화 클립이나 노래와 관련된 댓글들을 보면 ‘없는 추억도 만들어낸다.’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튜브 댓글을 작성하는 대다수가 지금의 청년들이기에 없는 추억도 만들어낸다는 뜻은 결국 아네모이아 개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와 같은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당시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스토리 전개 방식, 말투, 억양, 촬영 장비와 기법, OST 등이 혼합되어 없는 추억을 만들어 내는 그리움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노래와 같은 경우에도 녹음 기술의 차이로 인한 발생하는 특유의 음질과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산문 시와 같은 서정적인 가사 등이 당시 태어나지 않은 청년 세대에게 그 시대의 낭만을 생생히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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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네모이아를 느낄 수 있는 영화와 노래는 차고 넘치지만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기에 대표적으로 영원한 가객, 싱어송라이터 故김광석을 꼽아보았다. 김광석은 진정성 있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로 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싱어송라이터로, 대한민국에 포크송 붐을 일으킨 전설적인 가수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노래해 시공간을 초월하며 한국인들의 인생과 감성을 감미롭게 노래한 가수이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사실에도 대충 익숙해져 버리려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한 번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제 노래 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 김광석, 1995년 9월 『월간 샘터』인터뷰 中


김광석은 요즘 청년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싱어송라이터이다. 어쿠스틱 기반의 싱어송라이터 '예빛'은 유튜브에서 'Z세대 김광석'으로 불린다. 최근 엠넷 음악 경연 프로그램인 'VS'(브이에스)에서 우승한 박종민은 '대구에서 온 스무 살 김광석'으로 불렸다. 요즘 세대의 아티스트들에게도 김광석과 관련된 수식어가 붙으면 모두 영광으로 생각한다. 말 그대로 김광석은 10대부터 80대 노인까지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보유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여쭤봤다. 두 분이 제일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가 무엇이냐고. 아버지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어머니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꼽으셨다. 나는 ‘사랑했지만’을 제일 좋아한다. 각자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비슷비슷하다. 김광석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 울림, 감동과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수수한 멜로디를 따라 곱게 뻗어나가는 그의 가사들은 어느 세대가 들어도 그리움과 아련함을 느끼게 만든다. 태어나지도 않은 80년대를 그리워하고 동경하게 되는 노래들이다.


 

 

제2회 김광석 노래 경연 대회


 

김광석이 남긴 명곡들과 정신, 유산을 추모하기 위해 작년부터 김광석 기일에 특별한 경연 대회가 열린다. 바로 김민기 학전 대표가 이끄는 김광석 추모사업회에서 주관하는 ‘김광석 노래 경연 대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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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부터 시작하여 올해 2회를 맞고 있는 김광석 노래 경연 대회는 본선에 올라온 총 7팀이 김광석 노래와 함께 각자의 창작곡을 선보이며 경연을 펼친다. 김광석의 노래뿐만 아니라 창작곡도 불러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어 신진 아티스트들의 등용문 역할까지 수행한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소위 말하는 Z세대 참가자들로 김광석이 활동하던 시기와 겹치지 않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그 당시를 추억하듯이 온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며 시대를 초월한 공연을 선사했다.


대회의 대상 격인 창작지원금 200만 원과 마틴기타가 주어지는 김광석 상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창작곡 '청춘예찬'을 노래한 이상웅·정지윤 팀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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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수상자 중 한 명인 싱어송라이터 이상웅은 요즘시기에 보기 힘든 정통 싱어송라이터를 표방하며 시원시원한 음색과 함께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진솔하게 녹여낸 가사들로 꽉 찬 노래들을 들려준다. 작년에는 총 6곡으로 구성된 첫 EP인 <50%>를 발매하며 본격적으로 싱어송라이터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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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음악시장을 보면 3분 이하의 단발성 싱글만 발매하거나 고작 3곡 정도만 수록한 EP가 발매되는 등 다소 실망스러운 추세 속에서 6곡 꽉 채운 EP를 발매했다는 점이 참으로 멋있는 싱어송라이터이다.


EP <50%>은 사계절을 담아 구성한 듯한 6개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음색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본인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그가 들인 정성과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그가 보여주고 싶은 음악에 대한 진솔함이 한껏 묻어 나오는 앨범이다.

 

이번 경연 대회 이전에도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대표적으로 ‘2022 리멤버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대회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며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대회에서 선보인 창작곡 ‘청춘 예찬’은 싱어송라이터 이상웅의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들을 수 있다. 전매특허인 시원시원한 음색과 함께 아스라지는 청춘을 노래한 무려 5분짜리의 노래이다. 우선 길이부터 너무 마음에 든다. 5분이라는 길이에 그가 전달하고 싶은 청춘을 충분히 녹여냈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이상웅은 96년생으로 역시 김광석이 주로 활동하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들으면 김광석이 청춘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멜로디가 묻어나있다. 그가 김광석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납득할 수 있는 김광석상에 가장 어울리는 창작곡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며 먼 미래에 신예 아티스트들에게 김광석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머리로는 이해 못 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는


 

경험하지 않았는데 아련함을 느낄 수 있을까? 미디어로만 접했던 80년대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는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영상과 노래에 반응하는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연스럽게 아네모이아라는 감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경험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리 힘들었어도 어느 한 구석에는 따뜻함과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따뜻함과 희망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특정 시대의 미디어와 음악들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불분명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과 차가움, 냉정한 현실 속에서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따뜻하게 솟아오르는 희망들을 생산해 내는 아네모이아를 담은 드라마, 영화, 음악 등.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더욱 따뜻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을 연료로 힘들고 지쳐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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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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