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형사Duelist(2005) [영화]

글 입력 2021.04.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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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기반이 되는 요소에는 점과 선 그리고 면이 있을 것이다. 점들이 움직이면서 선이 되고 선이 움직이면 면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모두 움직임으로 인한 것이다. 움직임이 멈춘다면 다시 본래의 형태로 돌아갈 것이며 생동감 있는 변화의 과정은 움직이는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는 모든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극 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춤을 추고 달리고 움직이며 비, 안개와 눈 같은 날씨의 요소들은 점이 선으로 변해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영화의 장면 전환 기법과 외재적 음악의 삽입 등은 이러한 움직임을 극대화해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영화의 주제와 같은 검무는 여러 번 등장해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을 움직임 자체만으로 집약해 보여주는데, 이들은 마치 프레임 자체라는 면을 장식하고 있는 선들과 같아 보인다.

 

이명세 감독은 영화의 장면 전환을 두고 기교라기보다 칼의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시도였음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 자체가 칼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칼의 움직임을 모든 방식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이며 시각적 장치를 동원해 선적으로 움직이며 면과 같은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칼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 낙엽, 눈과 비와 같은 계절적 요소, 화면을 수직으로 가로질러 등장하는 인물들, 만화와 같은 쇼트 구성 등의 영화적 장치는 영화 전체가 마치 칼춤을 추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며 역동성, 생동감 등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다.

 

<형사>는 좌포청의 안 포교와 남순이 가짜 상평통보를 불법적으로 유통시키는 배후를 쫓는 간결한 서사로 서사 전개의 긴밀함보다 시각적 장치들을 전면에 내세워 칼의 움직임과 활기를 프레임 속에 담고자 한다.

 

 

 

선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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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에서는 선적 방향의 대립이 드러나는 장면이 많다. 사람이 꺼지면 위로 돈이 솟아오르고 눈송이가 흩날리면 칼의 움직임이 수직으로 위를 향해 뻗친다. 무언가는 땅으로 내리고 무언가는 계속 위로 솟으며 무언가는 옆으로 지나가는 등 동시다발적인 상이한 움직임들이 <형사>에서는 반복되어 등장하며 단조로운 프레임 안을 다양한 운동성으로 채워내고 있다.

 

남순과 슬픈 눈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터는 쉴 새 없이 흙먼지가 일고 있다. 흙먼지는 프레임의 옆으로 가로지르며 지나가고 화폐를 실은 수레의 바퀴가 빠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바닥으로 넘어지고 물건들은 그 반동으로 하늘로 튀어 오른다. 방향성이 각기 다른 움직임들이 프레임 안을 가득 장식하며 생동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선들의 대립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된다. 좌포청의 안 포교 일당이 장부를 가지고 가짜 화폐 유통의 배후로 드러난 병판대감의 집으로 쳐들어가 수색하는 과정에서 수세에 몰린 병판대감과 슬픈 눈이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장면은 모든 움직임들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프레임의 바닥에서는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며 눈은 바닥을 향해 흩날린다. 좌포청 사람들이 창을 든 모습은 부감의 시점으로는 원형의 형태로, 정면에서는 수직으로 뻗어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창들의 기다란 선 끝에 궁지에 몰린 슬픈 눈이 칼을 휘둘러 원을 그리며 도는 장면은 조형적인 미와 동시에 대립적인 움직임이 극대화되는 장면이다.

 

 

 

지속시간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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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에서는 고속촬영과 저속촬영이 빈번하게 등장해 인물을 희화화하기도 하며 등장인물의 비극적 정서를 부각하기도 한다. 영화 초반부, 장터를 달리던 마차에서 쏟긴 돈을 들고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고속촬영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움직임들이 분해된다. 움직임들은 잔상을 남기며 돈을 들고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풍자된다.

 

남순과 슬픈 눈의 칼싸움 장면에서의 움직임들 또한 느리며 마치 정지화면처럼 끊겨진 컷들로 나열된다. 멀어지다 다가가고 춤을 추듯 서로를 탐색하는 남순과 슬픈 눈의 칼싸움 장면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관계를 암시하는 듯 비극적인 정서를 짙게 형상화하고 있다. 움직임의 의도적인 속도 조절과 끊김은 인물들의 움직임을 아주 세부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며 이는 영화의 형식이 서사를 뒷받침하고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리듬을 가지고 살아있음을 관객이 감각하길 바라는 뚜렷한 의지가 나타나는 장면들이 된다.


슬랩스틱과 스텝 프린팅 기법 또한 인물들의 움직임과 쇼트의 속도를 조절해 보여주는데 자주 쓰이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움직임은 슬랩스틱으로 표현되어 유머러스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 이용된다. 남순이 슬픈 눈을 쫓다 들어간 홍등가에서 슬픈 눈을 찾는 남순에게 가두치가 돌아가라고 몰아붙이자 남순은 그를 바닥으로 때려눕히고 주먹으로 내리친다. 그러자 가두치는 남순의 주먹질에 다시 위로 튀어 오른다.

 

곧이어, 안 포교가 등장해 남순의 성질을 죽이라고 면박을 주는 장면에서 슬랩스틱과 같이 안 포교가 프레임 양옆, 아래위를 분주히 오가며 등장해 독특한 방식으로 대사를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한 프레임 안에서 슬랩스틱과 같은 과잉의 움직임은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빛을 이용한 인물의 그림자의 움직임으로 마치 인형극과 같이 장면이 연출되는 등 수많은 운동성을 지닌 움직임으로 화면의 깊이를 채우다가도 그림자놀이와 같은 장면들로 깊이를 아주 단순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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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주제는 마지막 장면의 남순과 슬픈 눈의 사랑을 대변하고 있는 칼춤에 있을 것이다. 칼로 춤을 추는 검무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말에 앞서 움직임으로 각자의 사랑을 분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싸우면서 다가가고 멀어지는 몸의 움직임 자체에서, 그리고 수직 수평을 가로지르는 칼의 움직임에서, 땅으로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눈송이의 움직임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움직임은 살아있음을 감각하게 하고 진실한 언어의 기호를 이용하기 이전에 솔직한 감정 자체를 표현하게 하는 수단이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자 하며 영화 자체도 마치 칼춤과 같은 움직임으로 찍어냈다.


무엇이 가장 영화적인 것이 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이명세 감독의 대답은 ‘움직임’ 일 것이다. 활동사진(motion pictures, moving images)으로 시작한 영화사적 자취를 따라 영화라는 매체는 끈질기게 움직임의 활기를 포착하고자 노력해왔다. 영화만이 도달할 수 있는 시각적 쾌락을 위해 <형사>는 다양한 형식적 장치들을 통해 영화의 주제와 같은 검무를 두드러지게 강조하며 칼춤을 시각화하고 있다.

 

칼춤을 추면서 반사되는 빛, 마치 점이 선이 되는 움직임, 살아있음을 전면에 드러내는 생동감 등은 이 영화의 목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움직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춤을 추듯 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이들과 마치 춤을 추듯 자체적인 리듬을 갖는 역동적인 쇼트들의 나열에서 우리는 활기를 느낄 수 있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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