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섹스하는 사이만 같이 살 수 있나요?" [사람]

글 입력 2021.04.03 13:3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pregnancy-644071_1280.jpg


 

친구와 같이 살 결심이 들었다고 하자. 우선 집이 필요하다. 둘이 살만한 15~24평 주택은 보통 큰방과 작은방으로 구성됐다. 한국의 주택 모델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혼인 가족을 상정하고 설립된 게 대부분이다. 발품 파는 일이 계속된다.

 

알맞은 규모의 집을 구했다고 치자. 돈이 문제다.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려 한다. LH대학생 전세임대주택대출, 중소기업청년 전세자금대출, 버팀목 전세대출, 한국주택금융공사 행복전세대출 등 많다. 공동명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창구 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주택복지정책은 1인 가구를 위한 것들뿐이라서다.


어떻게 집까지 구했다. 집만 구하면 순조로울 줄 알았는데 계속 난항이다. 동거인은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고, 자동차보험료도 부부로 내는 것보다 비싸다. 주민등록초본이나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을 때,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해야 할 때, 병원에서 입원수속을 밟고 수술 동의를 얻어야 할 때, 같이 사는 사람은 이를 처리할 수 없다. ‘혈연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모두’를 위한 법


법·제도·사회복지혜택 등 시스템의 대부분이 ‘혼인-혈연 가족’을 상정하고 설계됐다. 그러나 ‘가족’ 테두리 바깥의 개인은 늘어난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00년 222만 이었던 1인 가구는 2017년 562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28.6%가 됐다.

 

중년 1인가구 증가율은 더 가파르다. 45~54세 1인 가구는 2000년 24만 6000가구에서 2017년 89만 가구까지 상승했다. 황두영 작가는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 이들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혈연, 혼인 관계 이외의 성인 둘이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고, 국가에 등록하면 가족에게만 허용됐던 사회복지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둘 사이 자산 분쟁을 해결하는 틀 역시 제공한다.


법은 2014년 진선미 의원실에서 발의 시도됐다. 비혼·사별·노년 동거 등 급증하는 가족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황두영 작가는 진선미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생활동반자법 개발에 참여했다.


곧바로 반대에 부딪혔다. 무책임한 동거 관계를 조장하고 동성애자를 위한다는 오해 때문이다. 황 작가는 초점이 안 맞는 비판이라고 말한다. “생활동반자법은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포괄할 수 있는 법이지만, 그들만을 위한 법은 아니다. 모두를 위한 법이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위한 대안


노인 1인 가구의 다수는 여성이다. 통계청의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여성 1인 가구의 45.3%가 60대 이상이다. 남성 1인 가구가 20~50대까지 20%내외로 고르게 분포된 것과 대비된다.

 

황 작가는 “노인 여성들은 이미 복지센터, 경로당, 콜라텍, 종교모임 등을 통한 자기 네트워크가 있다. 이미 경로당 중심으로 같이 사는 노인 동거 관계도 있다”고 밝혔다. 즉, 노년 여성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식들도, 재혼 상대도 아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다. 이들이 같이 살기를 희망하면 그렇게 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일까.


‘재혼하는 방법도 있지 않냐’는 지적이 나온다. 황 작가는 실제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실혼 노인 동거 커플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결혼을 쉽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자녀와의 관계, 상속 문제, 남사스럽다는 사회적 편견까지 다양하다. 가령 재혼하고 한 쪽이 사망하면 그 자산의 상당 부분이 배우자에게 상속된다. 황 작가는 “이런 문제를 두고 자녀와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구태여 결혼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언급했다.


사회적 ‘선언’이 없는 동거 관계를 지속해도 문제다. 남성의 평균 수명이 짧으니 여성이 남성을 돌보는 관계가 많은데, 배우자가 죽으면 수년간 부양한 대가를 받을 수 없다. 법적으로는 남남이기 때문이다. 장례 절차에서도 밀려난다. 장례식은 고인과 연결된 모든 가족, 인맥이 모여드는 행사다. 고인의 동거인을 소개하고 싶은 유가족은 별로 없다.

 


‘탈시설’의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은 특별히 돌봄이 필요한 집단이다. 90년대까지 ‘특별히’ 혼자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설에 가둬 방치됐다. 장애인 인권이 신장되고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생기며 탈시설을 외치는 이들이 많아졌다.


탈시설을 해도 선택지는 마땅치 않다. 장애인 중에는 가족과 단절된 이들이 많다. 관계를 유지하지만, 장애인을 부양하는 부담이 상당하기에 탈시설을 꺼리는 가족도 있다. 황 작가는 책에서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함께 생활한 친구에게 의지하며 자립을 준비한다.

 

그러나 사회복지제도의 제약으로 같이 사는 일은 버겁다”고 말한다. 지금의 제도는 혈연과 결혼만으로 가족을 꾸리는 일이 당연하다고 간주한다, 어떤 이들에게 이는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황 작가가 생활동반자법을 ‘모두’를 위한 법이라고 말한 건 이런 맥락이다.

 


생활동반자법을 남용할수도 있지 않을까.


혹자는 청약가점을 위해 생활동반자를 가짜로 맺을 수 있지 않냐고 지적한다. 주택청약 가점을 위해 허위로 임신을 꾸며내거나 입양 후 파양하는 사례까지 나와서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돼)사회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갖는 사람이 늘어나면 ‘내 몫’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마음도 생길거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 사회가 충분한 사회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있느냐를 걱정해야 한다.


황작가가 책에서 한 말이다. 즉, 생활동반자법 제정만큼 그런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맥락이다. 복지는 한 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손실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황 작가는 “국가는 모든 국민의 안정된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 아래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밝힌다.

 


돌봄은 ‘친밀한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


정부와 지자체는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이돌봄서비스, 돌봄SOS센터, 커뮤니티케어, 사회서비스원 개소 등 여러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1인가구 증가, 늘어나는 고독사·자살률은 정부의 대처가 부족하다는 증명이다. 지금의 정부 정책은 수행기관이 돌봄 종사자를 파견하면 비용을 지원하는 식이다.

 

돌봄종사자가 많은 일을 할 수도 없다. 수요는 많고, 이를 충족하려면 인원당 주 몇 회 방문이 최대다. 시장에서 제공되는 돌봄도 있지만, 정책과 시장의 돌봄에는 틈이 있다. 황 작가는 “돌봄을 바라는 마음은 누군가와 친밀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라며 “정부는 이를 너무 어렵게 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밤이면 차오르는 불안, 언제 올지 모르는 심장마비, 저녁 메뉴를 상의하는 일, 힘들고 피곤한 날 맥주 한 캔 건네는 일, 직장상사를 죽이지 않도록 다독이는 일을 어떤 사회서비스 노동자에게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생활동반자법은 보수적인 법이다” 황 작가의 말이다. 가족을 만드는 일은, 그의 말을 빌리면 “장기적인 전망과 정착을 하게 하는 것”이라서다. 가족을 만드는 조건이 반드시 혼인이나 혈연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흔들리고 있다. 그의 말처럼 이제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8994973613_1.jpg

 

 

[박성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95512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